국회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8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목표치가 2018년 배출량보다 40% 감소로 돼 있어 기존 26.3%에서 크게 늘어났다. 이는 지난달 국회가 통과시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명시된 감축 목표치 35%보다도 높은 것이다.

확정된 NDC는 다음 달 영국에서 개최되는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에서 발표된 뒤 최종적으로 오는 12월 유엔(UN)에 제출된다. 파리협정에 따르면 일단 제출한 감축 목표는 물릴 수 없다. 모든 당사국은 5년마다 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이행상황을 점검받아야 하는데, 이때 감축 목표는 오르면 올랐지 내려갈 수는 없다.

그러자 산업계는 비명을 지르며 거칠게 항의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환경단체는 이 목표치가 통상적인 국제 기준치인 5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가운데 끼여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경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5년 통과된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2016년 박근혜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전망치를 추정하고 그것의 37%를 줄여 최종적으로 5억 3600만 톤을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국내와 해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데 당시 감축목표치의 30.4%를 해외에서 잡았다가 국제사회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방법을 바꾼다. 2030년 5억 3600만 톤을 배출한다는 목표는 동일하게 잡고 2018년 배출량보다 26.3%를 줄이되, 이 중 해외 감축 비율을 전체 목표 감축량의 8.5%로 대폭 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안은 전체 감축량 목표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유엔에서 퇴짜를 맞았다.

이번에 정부가 궁여지책 끝에 내놓은 안은 2030년 배출량을 4억 3600만 톤으로 대폭 줄임으로써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2018년 배출량보다 40%를 줄이도록 하되, 다만 해외 감축 비율이 12%로 다시 늘어났다. 어떻게 하든 국내 감축 비율을 낮춰 국내 산업계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하는 정부의 고충이 느껴진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태도는 크게 엇갈린다. 오래 전 산업화를 통해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킨 선진국들은 대부분 서비스 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재편됐기 때문에 탄소중립에 적극적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우에는 전기자동차·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을 통해 경제를 재편하고 부흥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각국이 목표를 산출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한국환경연구원에서 2018년을 기준으로 계산한 각국 감축 목표 비율은 독일 50%, 영국 45.9%, 미국 45.9%로 대부분 한국보다 높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정작 40% 감축이라는 목표는 세웠으나 그것을 실현할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고 전체적인 이행비용에 대한 추정도 없다. 그에 반해 산업계가 감당해야 할 비용과 부담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제조업 전반에 걸쳐 타격이 예상되지만 특히 부담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들 업종의 탄소중립 비용만 최소 400조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철강의 경우에는 수소환원제철이라는 신기술을 적용해야 하는데, 비용도 문제지만 아직 상용화할 만큼 기술이 개발돼 있지도 않다.

석유화학의 경우에는 설비뿐 아니라 원료도 석유에서 바이오와 수소로 전환해야 하는데 한국석유화학협회 추산에 따르면 2050년까지 218조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시멘트 업체들도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화학공정을 바꾸며 대체 물질을 사용하는 등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계획’에 따르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전원의 70.8%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는 태양이 잘 비추고 바람이 잘 불어야만 제대로 작동하는 간헐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기를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대량으로 구축돼 있어야 한다. 탄소중립위원회 추산에 따르면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이 장치 구축에 최대 1248조 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6.1%), 연료전지(1.4%), 그리고 ‘무탄소 신전원’이라는 새로운 기술(21.4%)을 제시하고 있다. 무탄소 신전원은 수소를 산소와 함께 연소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이지만 수소를 어디서 가져올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직 실현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정부는 아직 확실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할 때 40%라는 탄소감축 목표는 상당한 어려움을 예고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아 우리가 물러설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EU에서는 지난 7월 탄소국경세(CBAM)를 도입한 바 있다.

이는 EU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수입제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다. 2023년부터 철강·시멘트·비료·전력·알루미늄 등 5대 품목을 대상으로 시범 시행하고 2026년 본격 시행하면서 품목을 확대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 압력은 앞으로 심해지면 심해졌지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적극적인 대응만이 살 길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산업 구조를 선진적으로 재편하고 신재생에너지·전기자동차·수소산업 등 미래산업에서 앞서나간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가 일단 NDC를 확정하고 유엔에 제출하면 물러설 수 없게 된다. 남은 기간 동안 실현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되 동시에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 작성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공정개선과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제도 정비와 실행전략 수립이 시급히 이뤄져야만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