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대개의 중년 부부는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동안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서너 번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20년 정도를 함께 살아왔고 이제는 그다지 크게 싸울 일도 없게 되면 자신들이 과연 위기를 잘 넘어온 것인지 아닌지, 또 배우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고사하고 자신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인지 그저 마지못해 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나이에 누가 사랑으로 사나, 그저 의무감으로 사는 거지’하며 얼버무린다. 하지만 조금만 돌이켜보면 이런 씁쓸한 마음 한 켠에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위로해줄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이 마지막 남은 정열을 쏟아 부을만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얼마 전 대중매체에서 유행했던 ‘애인 신드롬’은 이런 심리에 대한 대리충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런 그리움을 끝내 포기하고 의무감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중년기 우울’에 빠지기 쉽고, 가정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그리움을 채우려는 사람은 ‘중년의 일탈’에 빠지기 쉽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중년의 부부는 가정에 대한 의무감을 검토하는 동시에 그 동안 자신이 외면해왔던 그리움을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기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은 당연히 부부가 각자의 의무감과 그리움을 가정 안에서 함께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정에 대한 의무감은 삶의 동력과 보람이 되고, 마음 속의 그리움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바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믿기 어려워하는 점은 부부가, 그것도 20년 정도 함께 사느라 지겨워진 배우자와 새로운 연애감정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 있으며, 사실 많은 부부들이 이미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이는 부부가족치료를 받아서 이룰 수도 있고, 종교나 여러 사회단체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또 더 간단하게는 부부와 가정의 행복을 위한 지침들을 소개하는 책들도 많이 출판되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나 책들을 통해서 인생의 위기를 넘기고 가정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하고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각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결심하는 것 정도일 텐데, 실제로는 이것조차 쉽지 않은 부부들이 적지 않다. 그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자신의 배우자가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조차 못하는 경우,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쉽사리 화해를 하고 싶지 않은 경우, 배우자와 잘 지내고 싶기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포기하거나 노력해야 할 부분이 너무 클 것이라서 엄두가 나지 않은 경우, 자신은 노력할 마음이 있지만 배우자의 성격이 바뀔 것 같지 않은 경우, 그 동안 자신이 조금 해보았는데 배우자의 반응이 영 탐탁하지 않아서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들이 명심할 점은 앞에서 말한 중년기의 과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주어진 기회이며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할 몫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배우자나 환경을 탓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과연 그렇게 살려는 의지가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인생에서 중년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소홀했던 점들을 보완하여 새로운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생을 정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