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증가로 노인암·우울증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도 증가나이는 숫자일 뿐 당당하게 늙는 '웰 에이징' 마인드 필요

1.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후에는 매년 정기검진을 받는 등 관리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2.SBS 특집 다큐멘터리 - 고령화 충격 3.최고령 모델 최선혜 할머니, 98세 할머니 CF모델
지난 달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10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519만 3,000명으로 10년 전인 1999년 322만 4,000명보다 61%나 증가했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급증한 이유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 살게 됐다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의료비 지출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2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에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인 의료비 지출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는 사상 처음 10조원을 돌파해 65세 미만이 지출한 의료비보다 4배 이상에 달했다. 암,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치매 등 노화로 인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노인도 계속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4년~2008년 우울증 환자 항우울증 진료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70세 이상 환자의 항우울제 투여횟수가 2004년 12.7%에서 지난해에는 17.9%로 껑충 뛰었다.

1.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 캐리포니아대학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 2. 세계 최고령 할머니였던 에드나 파커. 세계 최고령으로 기네스에 등재됐던 미국의 에드나 파커 할머니가 11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3. 존스홉킨스 대학 캐롤 그라이더 교수 4. 하버드대학 잭 조스택 교수.
이런 통계를 보고 있으면 오래 사는 것이 재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무병장수하는 행복한 노년기는 꿈에 불과한 것일까?

##노화로 인한 질병의 고통, 해방구 찾나##

숫자뿐인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건강하고 당당하게 늙는 '웰 에이징(well-aging)'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질병, 그 중에서도 암을 빼놓을 수 없다.

국립암센터 등 6개 병원에서 지난 10년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 3만 여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대장항문학회는 고령 환자들의 발병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현재 상태라면 10년 후에는 노인인구의 '대장암 쓰나미'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대장암뿐만이 아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암 발병률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공단의 건강보험 암 진료환자 분석발표를 보면, 지난해 신규 암환자 수가 전년대비 6.1% 증가한 14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매년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08년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10년 전인 1998년에 비해 28.4%나 증가했다.

암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노년기를 보낼 수는 없을까. 지금으로선 정기검진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평소 운동,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하는 식이요법 같은 꾸준한 건강관리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노화로 인한 암 치료에도 새로운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세포노화 기전을 규명해 노화와 암 치료법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 명의 미국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블랙번, 그라이더, 조스택 교수는 80년대 말, 텔로미어 세포노화 기전을 규명해 노화와 암세포의 성장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토대를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세포 내 염색체 끝에 텔로미어(telomere)와 텔로미어를 만들어내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telomerase)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세포는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열하는데, 그럴 때마다 텔로미어는 조금씩 짧아진다.

텔로미어 길이가 어느 단계까지 짧아지면 세포분열이 정지하고, 노화돼 죽게 된다. 암과 각종 성인병은 각 기관에서 세포의 노화로 일어나는 질병들이다.

그러나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게 만들어주는 텔로머라이제가 유난히 활성화 돼 있어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지 않으면, 세포는 늙지 않고 계속 분열해 암세포가 되기도 한다.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정인권(생물학) 학장은 "이러한 텔로미어 가설은 정상적인 체세포의 텔로미어 길이를 최대한 유지시켜 세포의 노화를 늦추는 반면, 암 세포는 텔로머라이제의 활성을 억제해 텔로미어 길이가 노화점까지 짧아지게 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실의 세포 수준에선 굉장히 잘 작동하고 있지만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음은 나이 아닌 태도의 문제, 우울증 조기치료 등 강조##

신체적 건강 못지 않게 노년기 삶의 질을 위협하는 것이 정신건강 문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전국 단위의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이 연령층에서 10명 중 1명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이 들어 좋으면 그게 이상하다'는 속된 말이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로 우울증을 노화의 일환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노인자살의 원인 중 80%는 우울증 때문일 정도로 노인우울증은 무서운 마음의 병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김기웅 교수는 "노인우울증은 자살뿐 아니라 치매의 위험성을 2배로 증가시키고, 당뇨 등의 내분비질환과 심장질환, 뇌졸중 같은 질환들의 치료회복이나 치료효과를 저해시키는 주된 요인이며, 관절염 등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질환의 통증강도를 증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은 면역력을 저하시켜 암과 같은 자기 면역능력이 중요한 질환의 치료효과를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이다. 또, 불면증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위장장애 등의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규칙적인 운동을 하거나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는 등 몸 관리에도 소홀하게 된다. 우울증은 신체적인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는 주범인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 김 교수는 "모든 질환이 그렇지만 특히 노인질환은 몸과 마음의 질환이 분리가 안 된다"며 "자살을 예방하고 각종 질환을 잘 치료하려면 노인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라"고 조언했다.

더구나 노인들은 3~5개의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아 우울증이 동반되기 쉽다. 김 교수는 "이렇게 동반된 우울증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가 노년기의 정신건강과 신체 건강 모두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또, 역류성 식도염을 앓으면 기침을 하거나,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상이 아닌 엉뚱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등 노인성 질환은 전반적으로 증상의 발현이 비정형적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규칙적인 생활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노인 건강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면 늙어서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내 몸 젊게 만들기>의 저자 마이클 로이젠 교수도 "여든 살이 넘으면 육신의 고통을 감당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 당장 내 몸에 유리한 것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백살 이상까지 살 수 있고, 더 나아가 양질의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화연구의 권위자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소장(서울대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도 노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