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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듀만 있는 게 아니다

[타국의 주방] (10) 스위스
스위스산 치즈로 본토 맛 내는 알트 스위스 샬레
  • 라끌렛
음식 문화와 경제 수준이 꼭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나라가 몇 있다. 대표적인 곳이 빈약한 음식 문화로 악명 높은 영국, 그리고 그 빈약한 영국 음식의 영향을 받은 호주.

스위스도 그 안에 포함시켜야 할까?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가 만들어지는 곳, 아름다운 융프라 호, 평화로운 중립국, 국가 브랜드 지수를 조사하면 반드시 10위권 안에 드는 이 작고 아름다운 나라는 음식에 있어서는 의외로 별로 할 말이 없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퐁듀를 제외하면 스위스 음식을 파는 곳도, 즐기는 이도, 그리워하는 이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에도 퐁듀 전문점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치즈에 대한 애정과 '찍어 먹기'라는 놀이 문화가 결합돼 인기를 끌 뿐 스위스의 식문화가 인정과 공감을 얻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치즈로 시작해 치즈로 끝나다

"스위스 음식이 국내에 별로 없는 이유는 치즈 때문이에요."

  • 로스티 포테이토
이태원의 알트 스위스 샬레는 28년 된 스위스 식당이다. 최초이자 유일인 셈. 1983년 당시 '된장 아저씨'로 유명했던 칼 밀러 씨와 요들송 가수인 김홍철 씨가 만든 이 식당에는 퐁듀뿐만 아니라 다른 스위스 전통 음식들을 판매한다. 현 대표이자 조리장인 신홍철 씨는 초기의 인테리어와 레시피를 거의 손보지 않고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위스 산 치즈를 써야 본토의 맛이 나는데 들여오는 것도 힘들고, 일단 수입한다 하더라도 너무 비싸서 손님들이 원하는 가격과 양에 맞출 수가 없거든요. 저희는 워낙 오래 되다 보니까 양이 적고 좀 비싸더라도 손님들이 받아들이게 된 거죠."

스위스 음식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동유럽의 영향을 조금씩 받았는데 뚜렷한 국민색으로 이들을 녹여내 제 3의 문화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각 나라의 음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워낙에 주 단위로 뭉쳐서 따로 노는 편이라 북쪽과 남쪽의 맛이 다르고 동쪽과 서쪽의 맛이 다르다.

이들을 스위스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치즈로, 스위스의 식탁은 치즈로 시작해 치즈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알트 스위스 샬레에서 사용하는 6종의 치즈는 모두 스위스 산으로, 다만 대단히 짠 치즈를 즐기는 현지에 비해 염도를 살짝 조정했다.

그 유명한 퐁듀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먹어 봐야 할 것은 라끌렛이다. 라끌렛은 치즈의 일종이자 각종 야채와 라끌렛 치즈를 버무려 먹는 요리의 명칭이다. 치즈 중에서도 짠 맛이 강하면서 향이 아주 풍부한 편으로, 퐁듀가 여러 가지 치즈를 섞고 거기에 와인 등을 첨가한 복잡한 맛이라면, 라끌렛은 좀 더 치즈 본연의 원시적인 맛을 즐기기에 좋다.

  • 노샬레 뚜아즈 퐁듀
라끌렛 치즈는 퐁듀에 쓰는 치즈처럼 죽죽 늘어지면서 녹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전용 그릴에 만들어 먹어야 한다. 일단 그릴 위쪽에 버섯, 피망, 야채, 소시지, 토마토 등 각종 재료를 올린 뒤 여러 칸으로 나뉘어진 치즈 그릴에 라끌렛 치즈를 넣는다. 불을 올리면 위쪽에선 재료가 지글지글 익고 아래에선 치즈가 녹아 내린다.

익은 야채와 녹은 치즈를 개인 접시에 옮겨 버무려 먹기만 하면 끝. 간단하면서 재료 맛을 그대로 즐긴다는 점에서 샤브샤브의 치즈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짜디짠 라끌렛 치즈는 신선한 야채, 고기의 맛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압도해 열 가지 양념 역할을 대신한다.

"라끌렛은 삼겹살처럼 구워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이에요. 야채와 치즈가 익는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다 익으면 남자가 치즈와 야채들을 버무려 여자 친구에게 건네줄 수도 있죠."

로스티 포테이토 역시 스위스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채 썬 감자로 부쳐낸 일종의 감자전인데, 안에는 토마토와 햄을 넣고 위에는 녹인 치즈와 달걀 프라이를 얹어 나온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음식은 아니지만 담백한 감자와 죽죽 늘어지는 고소한 치즈가 우리 입맛에 무난하게 잘 맞는다. 이 외에도 치즈로 맛을 낸 양갈비 구이와 치즈와 햄으로 속을 채운 포크로인 꼬르동 블뢰가 스위스의 향취를 느끼기에 알맞은 메뉴다.

10가지 치즈로 즐기는 퐁듀

물론 퐁듀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아는 치즈 퐁듀 외에 오일 퐁듀도 있는데, 의외로 덜 알려진 오일 퐁듀가 반응이 좋은 편이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느끼한 치즈 속에 빠져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깔끔한 오일 퐁듀가 더 적합하다. 오일로는 콩기름이 제공되며 안에 넣어 익혀 먹는 재료는 왕새우와 각종 해산물, 쇠고기, 3가지 중 선택할 수 있다.

치즈 퐁듀는 반대로 재료는 고정된 상태에서 10가지 치즈 중 하나를 선택한다. 에멘탈 치즈와 그뤼에르 치즈를 섞고 여기에 와인, 마늘, 통후추, 넛맥, 그리고 약간의 물을 넣어 제조한 노샬레뚜아즈가 가장 기본으로 마늘 향이 살짝 강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자칭 치즈 마니아로 평범한 맛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주방장이 추천하는 것은 고르곤졸라 치즈와 라끌렛 치즈. 고르곤졸라는 시퍼런 곰팡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블루 치즈로, 짭조롬한 맛 외에도 형용하기 힘든 시큼털털한 맛이 나 마니아들이 즐겨 먹는다.

버섯이나 토마토를 찍어 먹는 것도 좋지만 퐁듀를 제대로 즐기는 법은 역시 빵을 찍어 먹는 것이다. 퐁듀에 찍어 먹는 빵은 보통 입 천장이 홀랑 벗겨지도록 딱딱하고 작은 게 정석이다. 눈 속에 갇혔을 때 굳은 치즈를 화이트 와인에 녹여 거기에 단단하게 굳은 빵 쪼가리를 불려 먹었다는 퐁듀의 유래가 그대로 내려온 것.

스위스인들은 퐁듀에 곁들여지는 빵이 조금이라도 무르면 질기지 않은 함흥냉면 면발을 만난 한국인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알트 스위스 샬레에서는 본토의 맛을 내는 것도 좋지만 입 천장이 까져 항의가 들어오는 것에 대비해 스위스 현지에서 먹는 빵보다는 좀 더 크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바게트보다 살짝 단단한 빵을 날카로운 픽으로 찍어서 치즈를 감아 올려 먹으면 치즈의 염도와 빵의 담백함이 어우러지며 소박하고 건강한 스위스의 식탁을 음미할 수 있다.

이탈리안 음식을 전문으로 한 조리장 덕에 파스타와 그릴 요리도 상당히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치즈가 메인으로 나오는 음식은 전반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편에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라끌렛이나 퐁듀를 시키고 부족한 부분은 파스타 등으로 채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이태원 역에서 골목으로 죽 올라가 주택가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한적한 데다가 전망 좋은 테라스가 있어서 날씨만 좋으면 그야말로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퐁듀를 먹을 수 있다. 매일 정오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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