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선호 증가 반영 '라궁' 시작 한국적 인테리어 바람

경주밀레니엄파크 내 한옥호텔 '라궁'
고급호텔에 한옥바람이 불고 있다. 3년 전, 경주시 보문단지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생긴 라궁을 시작으로 서서히 고급호텔 가에 퍼지고 있다.

전통한옥을 현대적인 내부시설과 접목시킨 라궁은 전 객실이 궁궐 같은 느낌을 주는 침실과 온돌방, 편안하게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거실, 노천탕으로 구성돼 있다.

신라호텔 영빈관은 G20 개최를 대비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영빈관을 리뉴얼해 5월 새로 문을 열었다. 메이필드 호텔은 5월에 전통혼례식장 초례청을 개장했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이번 달 한국을 콘센트로 디자인한 스위트룸 3개를 선보였다.

현대성과 서구문화의 상징인 고급호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일부 호텔의 이 같은 변화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한옥에 대한 선호도를 반영한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2008년 조사한 '주택형태 수요 조사'에서 한옥에 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41.9%로 절반 가까이 됐다. 같은 조사에서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29.3%로, 한옥의 선호도에 크게 못 미쳤다.

경주밀레니엄파크 '라궁'
또한, 한옥의 가치가 럭셔리함으로 환원되는 있음을 말해준다. 일부 부유층이 가회동과 안국동, 계동 일대의 한옥을 구입해 별장으로 사용하는 등 한옥 선호도는 부유층으로 갈수록 높아진다는 게 건축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리뉴얼 공사 마친 신라호텔 영빈관

서울신라호텔은 영빈관의 내부공사를 마치고 5월 1일 다시 문을 열었다. 외형은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인테리어를 현대적인 분위기로 바꿨다. 주로 국빈맞이 연회장으로 사용되어 온 영빈관은 한국의 전통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건축물로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신라호텔이 영빈관의 리뉴얼 공사를 한 이유는 2010년 한국방문의 해와 G20 정상회의를 전통적인 건축물에서 치르기 위해서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으면서도 대형 행사를 치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연회장비를 새로 설치하고, 과학적인 조리시스템 등을 추가한 것이다.

연회 홀의 사용 면적도 넓히고, 우천시에도 실외 행사를 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영빈관 내에 700명, 영빈관 정원에 7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또 전통 스타일을 살려 카펫 등에 전통 도자기 문양을 썼고, 한국 기와의 선이나 창살 패턴 등의 요소도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에 활용했다.

신라호텔 '영빈관'
신라호텔 관계자는 "리뉴얼한 영빈관은 국제 행사 시 한국의 전통미를 알리기 위한 장소로서 역할을 다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메이필드 호텔 전통혼례식장 초례청 오픈

특급호텔에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는 예식장이 생겨났다. 메이필드 호텔은 5월 1일 전통혼례식장 초례청을 새로 개장하고 본격적으로 전통 예식을 진행하고 있다.

초례청은 8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정자로,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오채(청, 적, 황, 백, 흑)와 금장 모로단청을 입힌 외관이 화려하고 기품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경복궁의 복원에 참여했던 문화재 기능자 이일구 대목수가 참여해 철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옛 방식 그대로 지은 것도 특징이다.

외관뿐 아니라 예식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풍물패 또는 춘무의 축하공연으로 시작해 사인교(네 사람이 메는 가마)와 꽃가마를 탄 신랑, 신부의 입장이 이어진다. 기러기를 전달하는 전안례와 신랑신부 맞절인 고배례 등의 의식이 차례로 거행된다.

메이필드호텔 전통혼례예식장 초례청 전경
메이필드 호텔 관계자는 "전통혼례를 선호하는 부유층이 많아짐에 따라 특급호텔에서 처음으로 전통혼례식장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선호텔 한국 스타일 스위트룸 오픈

편리성을 강조하는 호텔 객실을 최근 한옥으로 개조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한국'이라는 콘셉트로 디자인한 스위트룸 3개를 새로 선보인다. 역시 G20 등 해외 방문객들에게 한국적인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리뉴얼 작업을 통해 재탄생한 3개의 객실은 온돌과 툇마루, 디딤돌 같은 한국 전통 건축물의 디자인요소를 현대적으로 형상화했다. 객실 리뉴얼에 참여한 디자이너는 심정주, 최시영, 엄주언 등 3명. 이들은 한국 전통가옥, 한국 주상복합 건물, 호텔 인테리어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적이면서, '한국 최초의 호텔인 조선호텔'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고객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실용적인 면도 살리는 게 관건이었다.

조선호텔 한식스타일 스위트룸 리뉴얼
세 개의 객실을 각각 살펴보자. 타워팰리스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최시영 씨는 디딤돌과 한지 창, 쇳대, 나인스게이트를 객실 속에 풀어냈다. 한지로 만든 접이식 슬라이딩 창호와 문자를 형상화한 파티션, 한국 전통 가구를 마무리하는 쇳대에서 이미지를 얻어 서랍 손잡이와 거실 벽을 브론즈로 마감했다. 휴식 공간은 한옥의 툇마루에 오르듯 디딤돌을 올라가 나무 마루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나인스게이트는 침대 위 벽면에 부조로 형상화했다.

호텔 디자인 전문가 엄주언 씨는 대청 마루의 패턴과 자연친화적인 나무와 대리석, 성곽의 둥근선 등 패턴과 재료, 형태에서 한국적인 디자인 모티브를 찾아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바닥에 대청마루를 형상화한 러그를 깔고, 대리석으로 벽면을 마감했다.

한옥 인테리어 전문가 심정주 씨는 '온돌', '한글'을 콘셉트로 리뉴얼 작업을 진행했다. 창 밑으로 길게 벤치를 만들어 온돌 장판으로 마감하고, 그 위에 작은 상을 놓아 차 마실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커튼 대신 두꺼운 나무 창을 만들고 창에는 한글 꼴을 디자인해서 붙였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