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의 옷] (1) 시댁복밝고 소박하고 조신하게… 며느리들의 설움과 한국의 가족문화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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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한국 스타일로 입으셨네요."
이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떠신가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오늘 당신이 고른 옷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유니폼입니다. 순응, 반항, 또는 극렬한 반항, 어느 한 지점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 땅에 최초의 패션쇼가 열린 것이 1956년입니다. 반 세기를 넘는 세월, 단일민족의 요란뻐적지근한 국민성, 전통과 유행, 급변하는 정치경제문화 환경이 짬뽕돼 빚어낸 오늘날 한국의 옷, 코리안 컨템포러리 코스튬(Korean contemporary costume)에 대해 연재를 시작합니다.

'국민 며느리'라 불리는 가수 장윤정이 오락 프로그램 <세바퀴>에 나와 장래의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소처럼 일할께요~"라고 외치자 그 자리에 있던 '아줌마' 연예인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한국의 시어머니는 귀찮을 만큼 자주 버전업되는 아이폰처럼 격변의 아이콘이다. 옛날에는 시어머니의 위상이 아예 문서화되어 빼도박도 못하게 지켜졌다. 기독교의 칠거지악이 인간이 빠지지 말아야 할 7가지 죄악이라면, 유교의 칠거지악은 아내가 남편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 7가지 이유다. 그 중 첫 번째가 불순구고거(不順舅姑去) 시부모에 순종하지 않을 경우로, 칠거지악을 면죄받을 수 있는 조건 역시 시부모의 삼년상을 같이 치렀을 때다.

탄탄했던 시어머니의 파워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 급격히 허물어졌다. 바쁘고 피곤하고 심지어 당신 아들보다 돈도 잘 버는 며느리들 앞에서 버림받는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 되었다. '시집살이'라는 말 대신 '며느리살이'라는 말이 생겼고, 결혼 후 합가는 물론이고 명절마다 방문을 요구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도 버거워하는 요즘 여자들에게 시어머니로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오로지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뿐이다. 관습의 근거는 약해지고 껍데기만 남아 불편하게 부대끼는 지금, 젊고 늙고를 떠나 한국의 여자들은 날마다 관계의 선을 새로 긋느라 각자 수고가 많다.

귀머거리 삼 년은 옛말?

그래도 한 발 떨어져 본다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전통이 지배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말, 그리고 케이블 TV에서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외국 드라마들을 통해 좀 더 선연하게 드러난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에피소드 중 남자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캐리는 베란다의 베드 체어에 누워 남자 친구 어머니의 '시중'을 받는다.

수영복 차림의 캐리에게 쿠키와 음료수를 가져다 준 어머니가 "저녁도 먹고 갈래요?"라고 묻자 캐리는 잘 빠진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아하!'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흐르는 내레이션은 "부모와 함께 사는 남자와의 데이트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 돈도 절약하고 하녀도 한 명 있으니까." 한국인들에게는 가히 사만다의 '섹스제일주의'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TV 쇼 <미녀들의 수다> 패널 출신 독일인 베라가 펴낸 서울 견문록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주워 들은 서울 이야기'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만큼 속단과 오류가 많지만 종종 객관화된 시선을 발견하는 수확도 있다. 그녀가 다닌 이화여대 어학당 쉬는 시간의 단골 주제는 한국의 시어머니다.

한 중국인 급우는 한국인 시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한식과 살림을 배우려고 학원까지 다니지만 어떻게 해도 환심을 사지 못해 나날이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베라는 시어머니의 고집은 물론이고, 잘 보여야 한다는 사실, 한국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그 강요된 긴밀함 자체에 놀라움을 표했다.

'한국에서 여자가 시집을 가면 그냥 친정집을 떠나 시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 집안의 가족 구성원이 된다. 시집 온 며느리는 남편의 부모를 봉양하고 그들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내 아들 돈 함부로 쓰고 있는 건 아니지?"

아직까지 며느리들은 불편하다. 한국이 남초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도 여전히 사위는 장모의 귀한 손님이요,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가장 나중에 배려해도 되는 사람이다. '내 아들 밥은 잘 먹이고 있는지, 내 아들 돈은 함부로 쓰고 있지 않는지, 내 아들 자식은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속을 뒤집는 말들에도 며느리는 여전히 스마일을 유지해야 하는 가족문화 속에서 탄생한 코스튬이 있으니 이른바 '시댁복'이다.

명절 철이 되면 각종 매체에서 똑똑한 시댁 패션을 소개하지만 시댁복의 핵심은 미의 과시나 패션의 자기 표현적 성격과는 정반대에 있다. 아니, 정반대에 있어야 한다. 시댁복이 전하는 메시지는 오직 '오늘 농땡이 부리지 않고 부엌의 전방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또는 '저는 비싼 옷을 수시로 구입하는 행위로 당신 아들을 벗겨 먹는 악처가 아닙니다' 정도다.

크로커다일 레이디
시댁복에 대한 고민이 구체화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출산을 경험하게 되는 결혼 2~3년 차다. 아이를 낳기 전 새댁들은 한복을 곱게 입고 시댁에 가다가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한복을 챙겨 입을 이유도, 정신적 여유도 사라진다. 그때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도대체 무엇을 입고 갈 것인가. 일단 비싼 브랜드의 옷은 빵점이다.

"저희 어머니는 옷 사는 데 돈 쓰지 말라며 갈 때마다 아주 오래된 옷들을 싸주세요. 10년은 된 블라우스랑 뽕 달린 재킷, 다 늘어난 니트가 벌써 다용도실 한가득이에요."

이런 불미스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 가계의 소득 수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최대한 저렴할수록 좋다. 그렇다고 마냥 저렴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내 집이려니 생각하라'는 말은 머리 속에서 빨리 지울수록 좋다. 시댁복의 상한선을 가격이 결정한다면 하한선은 격식이 좌우한다.

"저희 시댁은 여자는 집에서 바지 입으면 안 되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으면 안 되고, 화장 안 하고 있으면 난리 납니다. 하루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더니 시어머니가 시장에 가셔서 치렁치렁 오색찬란한 아줌마 드레스를 사주시더라고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일가친척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싸지만 어느 정도 갖춰 입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활동성에 있어서는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전을 부쳐도 거치적거리지 않아야 하며, 그러면서도 세배를 드릴 때 따로 갈아 입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긴장감, 여기에 노출 수위에 있어서는 당연히 조신함의 최고치를 경신해야 하며, 컬러로 보자면 세련된 톤다운 컬러가 본인의 취향이라 해도 일단 어르신들의 눈을 기쁘게 해드리는 화사한 색깔이 낫다.

샤트렌
A(여, 29)씨는 대구가 고향이다. 어릴 적 희미한 기억에 A씨의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시댁에 갈 때마다 늘 같은 옷을 꺼내 입었다. 주황색과 살구색의 중간색 코듀로이 원피스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이었다. 당연히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통 실루엣에 서든지, 앉든지, 쭈그리든지 어떤 자세를 취해도 편안한 마법의 드레스였다. 추울 때는 위에 검은색 코트나 점퍼를 껴 입는 정도. 그녀는 이 옷을 입고 세배도 드리고, 전도 부치고, 음식을 나르고, 주저 앉아 고스톱도 쳤다.

복스럽고 조신하고 기능적이고 깨끗하고 소박하고 밝고 긍정적이며 애살스러워야 하는 시댁복. 며느리들의 설움과, 지혜, 그리고 한국의 끈끈한 가족문화가 모두 담겨 있는 시댁복을 우리는 먼 훗날 교과서 삽화에서만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