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속옷에 대한 이중적 시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의 정열적인 키스신? 스칼렛 오하라가 붉은 저녁노을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면? 아니다. 당신이 여자라면 단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칠 것이다. 스칼렛 오하라가 침대의 기둥을 잡고 흑인 하녀의 힘을 빌려 코르셋을 입는 장면이다.

깡 말라 보이는 스칼렛이지만 더 허리를 조이기 위해서 육중한 하녀의 도움이 절실하다. 코르셋 뒤로 길게 늘어진 끈을 힘껏 잡아당길 때 '휙 휙'하는 소리가 귀를 요동친다. 그래도 스칼렛의 자태는 흔들림이 없다.

여기에 또 하나의 장면을 추가해 보자. 바로 이 흑인 하녀가 선물을 받을 때다. 레트 버틀러가 내민 빨간 페티코트는 충성심은 높지만 종일 인상만 쓰던 하녀를 웃게 만들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그 하녀의 얼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과연 그 하녀는 화려한 페티코트를 입을 수 있었을까?

조이는 아픔을 감수하는 사람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팽스가 몸매를 날씬하게 보이게 하는 비결!"

영화로도 재탄생했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자들의 '시크릿 코드'가 남발한다. 속옷만 걸치고 처진 뱃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탄력 없는 얼굴에 보톡스를 주사하며 예찬론을 열거한다. 미(美)의 비밀 병기들이 남자들에게 들키고 마는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나 보정속옷 입어!"를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극중 미란다는 친구들과의 브런치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비밀을 풀어놓는다.

지난 2009년 '할리우드 배우들의 몸매 비결'이라는 충격적(?)인 수식어를 달고 국내에 상륙한 브랜드가 있다. 미국의 보정속옷 브랜드 스팽스(SPANX)다. 미란다가 극찬했던 그 브랜드이기도 하다. 스타킹처럼 투명해 마치 속살 같고, 조이고 당기는 코르셋처럼 복잡하지 않고 매끈하다.

오프라 윈프리, 기네스 팰트로, 비욘세가 입었다며 입소문이 난 스팽스는 국내에 들어와 홈쇼핑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가볍고 태나지 않는 새로운 보정속옷에 대한민국 여성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숨막히게 꽉 조이는 코르셋과 거들에 신물이 난 여성들은 스팽스의 조임을 느껴보기 위해 그 매진행렬에 동참했을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면 망설일 필요가 있겠는가.

속옷브랜드 에블린은 "오랫동안 지나치게 꽉 조이는 보정속옷을 착용하면 장기나 근육 모양 등에 변형을 가져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한 번 빠진 늪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몸매 미인 만들기>의 저자 박명복은 보정속옷에 대한 몇 가지 장점을 꼽았다. 첫 번째로 꼽은 바디라인과 옷맵시의 아름다움은 제외하고, 피트니스 효과와 심리적 효과가 눈에 들어온다.

근육에 적당한 긴장감을 주어 마치 운동을 한 탄력감을 얻을 수 있다는 피트니스 효과와 몸에 긴장감을 줌으로써 정신적으로도 알맞은 긴장감을 유지해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심리적 효과다. 더 나아가 자신의 몸매에 대한 자신감의 효과까지 더해져 대인관계나 비즈니스 업무에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단 몸을 무리하게 압박하는 보정속옷은 제외다.

그랜드성형외과의 서일범 원장은 "자신의 체형에 맞지 않은 보정속옷, 특히 지나치게 작은 사이즈의 속옷은 신체의 불편함은 물론 신체 활동을 방해해 장기간 착용하면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다"며 "미용적으로도 오히려 군살을 더 돋보이게 해 옷맵시를 망치게 되기도 한다. 특히 뼈와 근육이 약해져 있는 출산 직후에는 착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베이글녀', '잼벅지녀'가 몸매를 다 망쳤다

보정속옷은 어디서 왔을까? 3세기 초 고대 그리스 여성들이 '몸매보정용 속옷'을 발명해 몸매의 곡선미를 살렸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르네상스시대 유럽 여성들을 강타했고,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은 당시 유럽 여성들의 기본 속옷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 국왕 앙리 3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금속으로 된 코르셋을 처음 발명해 입었다는데 그녀의 허리둘레는 15인치 정도였다고. 그때고 지금이고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았다. 17~19세기 유럽 여성들을 허리를 뽐내기 위해 코르셋을 조이다가 호흡곤란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위험도 감수했다.

그런데 이 코르셋을 해방시킨 주인공이 전쟁이었다고 하니 웃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이 모자라 코르셋에 들어가는 금속성 재료를 아끼자는 운동까지 일어나면서 여성들이 코르셋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 이제 우리 여성들은 허리 20인치의 가냘픈 몸매의 틀에서 벗어났는가, 해방됐느냐는 말이다. 역시 'NO'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생각으로 코르셋류의 보정속옷을 즐겨 입어요. 일단 입으면 날씬해 보이는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식사량도 조절할 수 있거든요. 입은 지 얼마나 됐냐고요? (손가락을 꼽으며) 3년이 다 되어가네요."

여대를 다니는 한수정(21)양은 고등학교 때 보정속옷을 처음 만났다. 고3 시절에는 스트레스와 폭식으로 살이 올라 70kg까지 몸무게가 올라갔을 정도. 이때 보정속옷과 인연을 맺고 코르셋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3년째 코르셋과 사랑에 빠져있다. 여대를 다니기 때문에 마른 체형의 친구들을 보면 경쟁심리가 더 생긴다고. 한수정 양은 신장 162cm에 49kg이다.

그런데도 한 양은 코르셋을 벗을 수 없다고 한다. 보정속옷 없이 옷을 입으면 "라인이 살지 않은" 여자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 또 3년째 가슴과 배를 한껏 조여 주던 코르셋의 상실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겁을 냈다. 한 양은 조이지 않으면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보정속옷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베이글녀', '잼벅지녀' 등이 인터넷을 장악하며 여성들의 심리를 또 한 번 자극하고 있다. '베이글녀'는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들을, '잼벅지녀'는 잼을 발라놓은 듯 매끈한 허벅지를 뜻한다.

사태가 이쯤 되다 보니 인터넷에는 신인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해 '베이글녀'나 '꿀벅지녀', '잼벅지녀' 등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배우나 가수가 연기력이나 가창력이 아닌 오로지 몸매만 좋으면 각광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에게 "보정속옷을 꼭 착용하시오"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건 아닌지 씁쓸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에선 20대 젊은 여성들이 보정속옷의 판매율을 더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불고 있는 '몸짱' 열풍은 이런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그 열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다이어트나 운동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늘고, 가슴성형이나 지방흡입을 이용해 아름다운 바디라인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서일범 원장은 "젊은 20대 여성들이 보정속옷을 찾는 것은 자신의 몸매 콤플렉스를 감추고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작용된 것이기도 하지만, 젊음은 젊을 때 지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현재 젊기는 하지만 더 어려 보이고 싶고, 노화를 예방하기 위해 젊을 때부터 꾸준히 피부관리를 받거나 성형수술을 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고 말했다.

참고서적 : <란제리 스타일북>(이영미 저·브렌즈) , <자신감 넘치는 몸매 미인 만들기>(박명복 저·김&정), <에디터 T의 스타일 사전>(김태경 저·삼성출판사), <프랑스 여성>(궈허빙 저·시그마북스)

도움말 : 그랜드성형외과 서일범 원장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