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메트 풍자 만화 일파만파 분노한 무슬림, 피의 보복 선언… 중동·유럽간 경제·외교 관계도 흔들

이슬람 선지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평이 전 세계를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성난 무슬림들이 불붙인 분노의 도화선은 중동에서 아시아로, 그리고 미국까지 타들어가 마호메트 만평 사태는 ‘지구적 위기’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마호메트 만평 사태는 천년 가까이 계속된 서구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존엄성간의 가치 충돌의 재연으로 평가되고 있다. 9ㆍ11테러, 런던테러 등 이슬람이 연루된 테러와 이에 맞선 서방 국가들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형성된 대립구도는 더욱 골이 깊어지고 있다.

마호메트 시한폭탄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9월 덴마크 최대 일간지 ‘율란츠 포스텐’이 게재한 만평 12컷이다.

마호메트가 심지에 불붙은 폭탄 터번을 두른 모습이라든가 자폭테러범에게 천국에는 처녀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모습이라든가 모두 이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율란츠 포스텐이 예술인들의 자기 검열을 점검하기 위해 실은 만평의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문제의 만평이 지난달 노르웨이의 기독교 신문에 전재된 데 이어 이달 들어 ‘르몽드’‘프랑스 수와르’(프랑스) ‘디 벨트’(독일) ‘코리에르 델라 세라’‘라 스탐파’(이탈리아) ‘엘 페리오디코’(스페인) 등 유럽 언론에 소개되면서 4개월 간 잠복해 있던 이슬람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젠 세계 전역으로 퍼져 매일같이 계속되는 항의 시위에서 덴마크 국기는 이슬람 신도들의 손에서 불타거나 짓밟히는 수모를 겪고 있다. 과잉반응 우려를 낳을 정도로 이슬람 국가들의 대응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시리아와 레바논, 인도네시아에서는 덴마크 대사관이 무슬림 폭력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불타거나 포위되는 등 이슬람 국가에 있는 유럽 외교 공관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슬림 시위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평화유지군 사이에 충돌이 발생, 시위대가 숨지는 유혈 사태로 확대됐다.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테러조직 탈레반은 만평 작가의 죽음에 금 100㎏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이번 만평 사태는 무슬림의 보복성 무장 공격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중동 국가의 교역 중단 선언으로 중동과 유럽의 경제 협력과 외교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중동에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상품 불매 운동이 시작됐다.

이라크 교통부는 재건 지원 자금까지 거부하면서 덴마크 노르웨이 정부 및 기업과의 모든 계약을 취소했고, 이란도 덴마크와의 무역 중단을 선언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은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 정부 간의 마찰로 비화했다.

제2의 '악마의 시'

이란 의회의원 등 이슬람에서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사건을 기억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1988년 루시디가 마호메트를 풍자하고 코란을 악마의 계시로 비유한 ‘악마의 시’를 펴냈을 때와 이번 마호메트 만평 사태는 상당히 닮아 있다.

당시 이슬람권에서는 소설의 판매와 번역을 금지했다. 유럽의 서점과 루시디를 지지하는 사설을 실은 뉴욕의 신문사에는 폭탄이 터졌고 일본인 번역자는 살해됐다.

악마의 시 사건은 정치ㆍ외교문제로도 번졌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루시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의 죽음에 현상금 100만 달러를 내걸었고, 영국과 이란은 단교했다.

이번 마호메트 만평 사태도 ‘악마의 시’사건처럼 서구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로 해석된다. 특히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온 서유럽과 종교의 신성을 목숨보다도 중요시하는 이슬람 간의 가치 대립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신성 모독을 바라보는 시각이 판이하다. 서구에서도 예수나 홀로코스트를 풍자하는 것이 금기시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종교를 풍자할 권리마저 부인되지는 않는다. 유럽 언론이 문제의 만평을 게재한 이유를 들어보아도 그렇다.

“종교는 존중 받아야 하지만 자유롭게 비판 받고 조소의 대상도 될 수 있어야 한다”(르 몽드) “가장 신성한 대상에 대해서도 풍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우리 문화의 근간”(디 벨트) “이슬람권의 반발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이해부족”(국경없는 기자회)이라고 주장하는 등 대체로 서유럽에서는 종교적 신성성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입장이다.

반면 이슬람권은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것은 마호메트는 물론 무슬림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보며 ‘문화적 테러’라고 반박한다. 이슬람에서 신성모독은 사형 등 중벌로 다루는 중죄이다.

이슬람에서는 ‘알라와 닮은 형상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코란의 경구를 근거로 알라와 마호메트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를 신성모독으로 간주한다. 터키 총리는 “마호메트 만평은 이슬람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공격”이라며 “언론의 자유에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호메트 만평 사태를 계기로 서유럽 등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비판적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종교의 신성함도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라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은 이번 사태를 ‘권리와 책임의 충돌’이라고 규정한 분석기사에서 “모든 국가, 문화권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는 보장돼야 하지만 모욕할 권리로까지 확대돼서는 안된다”는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의 논평을 인용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8일 반(反)유대와 반(反)이슬람에 대해 서구국가들이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며 ‘표현의 자유’에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9ㆍ11테러 이후 서구사회에 널리 퍼진 ‘이슬람 공포증’도 이번 사태의 뿌리로 지적된다.

현재 유럽에 거주하는 무슬림 인구가 1,500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이슬람교는 유럽의 제2 종교로 성장했다. 하지만 ‘무슬림=테러리스트’라는 편견과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이 워낙 뿌리깊게 박혀 있어 유럽 각국 정부의 무슬림 포용정책은 후퇴, 무슬림의 사회적 소외와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가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 무슬림들이 머리에 쓰는 ‘히잡’을 공공학교에서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문화의 충돌은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서구와 이슬람의 정치적 음모

마호메트 풍자 만평 사태가 ‘지구적 위기’로 확산된 데는 유럽과 이슬람의 정치적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1일 유럽 언론들은 율란츠 포스텐에 대한 연대 지지의 의미로 일제히 문제의 만평을 실어 이슬람권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2월3일 레바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마호메트 풍자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프랑스 국기를 불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대목과 관련 “유럽 언론들이 이슬람 국가들이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있다는 인식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사태가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의 테러 공격을 정당화하는 빌미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9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지난해 12월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개최된 57개 이슬람 국가들의 정상회의에서 문제의 만평에 대한 이슬람권의 사전 의견 조율 가능성에 주목했다.

서방과 이슬람은 서로 이번 사태를 두고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의 대결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시오니스트의 음모가 있다”며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8일 이스라엘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란과 시리아를 이번 사태와 관련 이슬람권의 반발을 부추기는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유럽과의 경제교류 중단, 대사관 방화 등 극단적 대응으로 사태를 확산시킨 이들 국가는 모두 미국ㆍ유럽연합과 관계가 악화, 반목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이 국내 실정에 대한 불만과 서구의 민주주의 확산 요구에 대한 불만을 돌리기 위해 대규모 항의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