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산성남문 57x30.5㎝ 한지에 다색 목판 2008년작
중국에서는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의 동북아 대륙을 '동북 3성'이라 부르는데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만주(滿洲)'라 했었다. 그렇지만 '만주'라는 명칭은 누루하치가 심양에서 후금을 세울 무렵에 여러 분파의 여진족을 통할시킨 지역이라는 함의를 표방코자 한 것이었고 더구나 1932년에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만주 괴뢰 정부'를 세웠던 바도 있었기에 현대 중국은 이런 명칭을 기피하기도 한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도 동북3성은 200만 인구의 조선족을 포함하여 만족(滿族), 몽고족, 어원커족 등이 어울려 사는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심양을 방문했을 적에 조선족 시인으로부터 '동북 민족원류(손진기 지음)'라는 책을 소개 받기도 했는데, 동북아 대륙은 다민족이 끊임없이 평지풍파를 일으켜온 풍운의 역사로 점철돼 왔음을 확인해 보게 된다.

천손족의 강토

이 대평원 지대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백산흑수(白山黑水)'라고 호칭하기도 했는데 '백두산'의 백산과 '흑룡강'의 흑수를 아우르는 광대한 강역의 특성을 요약한 명칭이었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백산-황토-흑수가 된다. 송화강 중하류와 요동벌의 요하, 난하 일대는 일방무제의 황토 지대를 펼쳐놓고 있음을 실제로도 확인할 수 있다.

봉황산과 장대 130x32㎝ 한지에 목판 2008년작
고대 인류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서 '천손족(天孫族)'의 강토(疆土)를 이루어온 대륙 공간에 관한 오늘의 필드 스터디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하게 할 터이니, 우리는 '만주'라는 호칭의 습관을 벗어나 '백산흑수'라는 전통 시대의 어법으로 호명해야 한다는 제의를 필자는 해오고 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근대사 담론들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하나로 되는 글로벌 시대를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대사에 관한 역사 탐구도 어지러운 상황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파동,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고구려 유적지 답사 기행문에서 고구려는 '역사서'에만 존재하고 현지 지리학에서는 태반의 유적지들이 변질 왜곡 훼손되어 버린 상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동대혈 '유화부인 성소'

김억 목판화로 읽는 옛 고구려의 하늘과 산하…. '오녀산성'은 오늘의 중국인들이 부르는 명칭이고, 고구려 시대에는 졸본성 또는 홀본성(서길수의 고증)이라 불렸다. '오골성'은 '봉황성'이라 했고 '환도산성'은 고구려 시대에는 '위나암성'이라 했었다(중국에서는 '산성자 산성'이라 호칭하고 있다). '국동대혈'만은 고구려 때의 명칭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데 왕국(곧 국내성)의 동쪽에 있는 커다란 동굴이라 함은 동명성왕(주몽)을 낳은 유화 부인을 기리는 성소임을 알리는 것이었으련만 지금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관광 명소가 되어 있을 따름이다.

김억 목판화는 정녕코 오녀산성을 통해 옛 졸본성의 아우라를 작품화 하고, 오늘의 오골성에서 고구려의 봉황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환도산성(곧 위나암성)은 고구려 왕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군사 기지로 쌓았던 산성이었는데 대부분 허물어지고 남측 성벽과 망대 등 일부만 남아 있다. 김억 그림은 하늘에 떠도는 풍운과 성문 밖에 양 한 마리를 삽입하여 천손족 후예의 감흥을 아로새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직접 체험, 현장 체험의 구상력(具象力)으로 고구려의 하늘과 산하를 새롭게 만나는 '미적 체험'을 해보는 중이다. 예맥, 옥저, 부여, 고구려, 발해의 동북 아시아 탐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누가? 물론 우리가…


국동대혈 62x151.5㎝ 한지에 목판 2008년작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