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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박경애 <곡예사의 첫사랑>

어릿광대의 서글픈 첫사랑 국민 심금 울려
잊지 못할 첫 사랑의 기억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첫 사랑의 추억은 달콤하지만 언제나 이별의 고통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사랑에 목숨을 건다. 대중가요가 사랑을, 특히 풋풋한 첫사랑을 중요 소재로 삼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대중가요는 울고 짜고 헤어지는 통속적인 사랑 타령들 때문에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아오고 있다.

대중음악계는 사랑을 가장 중요한 노래의 소재로 삼는 일에 요지부동이다. 사랑은 시대를 초월해 모든 세대의 관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모든 음원차트를 올킬하며 돌풍을 일으킨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음반에도 <첫사랑>이란 노래가 어김없이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사랑'이란 같은 제목의 노래를 발표한 가수가 600명이 넘는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대중가요를 살펴봐도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는 세어보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고 제목에 '첫사랑'이 들어간 노래만 해도 451곡이나 된다.

그 시작은 1934년 '눈물의 여왕'으로 불린 전옥이 부른 '첫사랑'이다. 이후 40년대 선우일선 '첫사랑 푸념', 50년대 백설희 '첫 사랑의 ABC', 60년대 남일해 '첫사랑 마도로스', 이미자 '임금님의 첫사랑', 펄시스터즈 '첫사랑', 김상희 '노처녀의 첫사랑'을 거쳐 70년대 나훈아 '첫사랑의 꿈', 문주란 '허무한 첫사랑', 80년대 김민식 '첫사랑의 생일', 90년대 문희옥 '해변의 첫사랑', 2007년 아이돌 밴드 의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까지 실로 다채로운 질감으로 다양한 계층의 첫사랑을 대중가요는 노래했다.

첫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 중 '곡예사의 첫사랑'의 기억은 선명하다. 박경애의 대표곡 '곡예사의 첫사랑'은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서커스단 어릿광대의 가슴 졸이는 줄타기로 표현한 애절한 가사가 어찌도 아슬아슬, 위태위태했던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노래를 작곡한 정민섭은 1990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희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20여 년 동안 대중가요 작곡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서울가요제 금상으로 스타덤

60-70년대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았던 김상희의 '대머리 총각', 김상진의 데뷔곡 '이정표 없는 거리'와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은 그의 대표곡이다. '범띠 가시내', '당신의 뜻이라면'을 부른 양미란은 정민섭의 부인이다. 골수암으로 골반 밑 다리를 자르는 투병을 한 아내와의 영원한 이별에 정민섭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상심한 그는 '상처', '오해', '숙명', '마지막 겨울', '곡예사의 첫사랑'등 수많은 노래 가사를 신들린 것처럼 직접 작사했다. 박경애의 3번째 독집에 수록된 그가 작사 작곡한 모든 노래는 뼈를 깎는 고통과 싸움을 하다 끝내 눈을 감은 아내에게 바치는 애절한 헌시였다. 대부분 사랑과 이별을 그린 슬픈 영화의 주제가로 사용된 이 노래들은 당대 대중의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1976년 <산이슬>의 멤버로 활약하던 박경애는 1977년 솔로가수로 독립했다. 그해에만 2장의 독집을 발표한 그녀는 1978년 '곡예사의 첫사랑'으로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김기 감독의 영화 <상처>, <청춘의 덫> 그리고 1979년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정소영 감독의 영화 <내가 버린 여자>는 극장가에 작가 김수현 열풍을 몰고 왔다. 영화주제가를 부른 박경애에게는 김수현 원작 영화의 주제가 전문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79년 제1회 TBC 세계가요제에 출전해 우수가수상을 수상한 그녀는 2년 연속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년 연속 MBC 10대가수

우연이라 넘기기엔 너무도 기이한 사실이 있다. 암으로 사망한 작곡가와 여가수 부부의 슬픈 사랑을 담은 '곡예사의 첫 사랑'을 부른 가수 박경애도 지난 2004년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슬픈 사랑의 정서를 담고 있지만 향수 어린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어릿광대들의 서글픈 첫사랑을 녹여낸 애절한 노랫말이 남긴 여운은 강력했다. 박경애 하면 곧 '곡예사의 첫사랑'을 떠올릴 정도로.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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