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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160)] 호남 밥상

'개미' 있는 한식 밥상의 깊은 맛
호남음식 '개미'바탕엔 발효된 두장ㆍ어장 있어
'장(醬), 지(漬), 초(醋)'가 주류… '장류'특성
순창 '남원집', 순천 '대원식당', 구례 '서울회관
  • 남원집
잘 만든 호남음식을 두고 흔히 "개미가 있다"고 표현한다. "개미진다"라고도 쓴다. '개미'는 음식의 '참 맛'이라고 표현하거나 '손맛'이라고도 표현한다. 모두 호남음식 특유의 맛을 이야기한다. 가끔 숨겨진 진미라는 뜻으로도 사용하고 보통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뜻한다. 잘 들어보면 상당수의 경우 호남의 깊은 장맛 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이리저리 설명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호남밥상을 받아들고 나서 설명을 듣는 것이 낫다. 제대로 된 호남밥상을 만나고 나면 누구나 "흠, 이런 게 바로 개미가 있는 음식이군!"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호남음식의 '개미'는 한식 밥상의 깊은 맛이다.

우리 음식, 한식의 맛은 장맛이 결정하고 장맛은 집집마다 다르다는 평범한 표현도 결국 호남밥상의 '개미'를 설명한다. '개미'는 결국 제대로 만든 장맛에서 출발한다.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의 역사, 문화를 들추는 사람들이 반드시 참고하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16세기 초, 중반 무렵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는 <수운잡방>의 필자는 경북 안동 예안지방에서 살았던 유학자 탁청정 김유다. 흔히 '조리서'라고 표현하지만 조리서라기보다는 '식재료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을 적은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음식, 식재료에 관한 책자인데 '남자, 유학자'가 기록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조선시대 음식에 관한 한, 대단한 저술로 여기는 <음식디미방>보다 100년 이상 이전에 기록된 책이다. 16세기 초중반에 음식, 식재료에 관한 기록물을 '남자, 유학자'가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은, 조선을 지탱하던 유교, 성리학적 사회를 운영하는 주요한 도구다. 음식은, 여자들이 부엌에서 만들어 가족들끼리 먹는 것을 벗어나 일상적인 생활에서 중요하게 이용되는 '도구'였다. 음식은 손님맞이나 제사 등에 필수적인 도구, 즉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핵심수단이었다. 남자들이 운용하는 사회인 유교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음식에 대해서 남자, 유학자가 기록물을 남긴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 대원식당
이런 행사의 핵심도구인 음식의 기본은 무엇일까? 바로 장류와 식초, 술 그리고 각종 나물로 만든 김치 등이다. <수운잡방>의 내용이 바로 이런 음식의 기본요소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중 술을 빚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고 '장(醬), 지(漬), 초(醋)'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장'은 된장, 간장 등이고 '지'는 김치를 비롯하여 나물로 만드는 각종 식재료들이다. '초'는 식초다. 장, 지, 초, 술(酒)은, 모두 발효음식이거나 발효식품을 더하는 음식 재료들이다. 결국 한식의 기본은 '장, 지, 초, 술' 등이니 호남음식의 '개미'도 발효를 더한 맛인 것이다. '개미'를 두고 '그늘진 맛' '그늘의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개미'가 어둡고 서늘한 곳, 깊은 그늘, 어둠의 후미진 곳에서 일어나는 발효에서 비롯된 맛이기 때문이다.

한식, 혹은 호남음식의 바탕인 '개미'는 두 가지 발효음식 즉 콩 발효 장인 두장(豆醬)이나 생선 발효 장인 어장(魚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호남밥상을 이야기하면 늘 거론하는 생선젓갈들이나 묵은 지, 잘 익은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이 바로 호남음식의 바탕인 것이다. 유명한 호남밥상들을 만나면 "밥상의 반찬 그릇 수는 많은데 상당수가 미리 준비한 장류일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북 순창의 '남원집' 밥상을 두고 '85기 밥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틀렸다. 그릇 수가 85개 언저리인 것은 맞지만 반찬 그릇의 상당수는 정식 반찬이 아니다. 85기 중 상당수는 반찬이 아닌 장, 지, 초의 그릇이다. 즉, 정식 반찬으로 셈하지 않는 밑반찬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물론 정식 반찬이든 아니든 개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깊은 맛의 호남밥상이다.

85개 접시가 놓이는 '남원집'의 밥상이 부담이 되는 경우 찾는 집이 바로 순창의 '새집'이다. 20∼30개 정도의 접시가 놓이는데 역시 대부분은 장, 지, 초로 구성된, 호남의 '개미'가 있는 밥상이다. 마당 한 구석에서 연신 구워내는 돼지불고기가 퍽 맛있다. 은은한 불향을 느낄 수 있는 정식 반찬인 셈이다. 가격도 적정하다. 인원수에 맞춰서 가격을 셈하는데 인원이 많을수록 1인당 밥값은 낮아지는 식으로 합리적이다.

전남 순천의 '대원식당' 밥상도 '개미가 있는 호남밥상'으로 손꼽을 만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계절 별로 선보이는 생선의 맛과 향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주꾸미 제철에는 식당으로 사용하는 가정집 마당에서 불로 굽는 주꾸미 향을 먼저 맡을 수 있다. 약 30개 정도의 접시가 놓이는데 상당수는 장류와 젓갈, 김치 등이다. 게 요리나 주꾸미, 낙지 등이 정식 요리로 셈할 법하지만 역시 음식의 깊은 맛, '개미'는 젓갈이나 장류에서 맛볼 수 있다.

전남 구례의 '서울회관'도 재미있는 밥상이다. 1만원을 상회하는 밥상에 그릇 수가 무려 50개 쯤 된다. '낭비' '사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반찬의 대부분은 정식 반찬, 요리가 아니라 밑반찬이다. 장, 지, 초가 주류를 이루고 조기구이 정도가 정식 반찬이다. 된장찌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나물이 재료인 밑반찬이 놓인다. 삭힌 음식, 발효음식이 주를 이룬다. 호남밥상의 다채로운 '개미'가 느껴지는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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