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 속에도 뱀독이 있다 디스크 통증은 수핵에서 흘러나온 독(phospholipase A2)때문신경주사치료로 디스크 통증 원인 제거…뱀 독 다스리는 원리

뱀에 물리는 것과 디스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겠지만, 필자의 이번 칼럼을 읽고 나면 디스크의 통증이 뱀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할 독자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이다. 디스크 때문에 아픈 사람과 뱀에 물려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같은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필자의 경험과 의학 정보를 버무려 설명해 보려 한다.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진짜로 뱀이 무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필자가 공중보건의로 군복무를 할 때의 일이다. 그 환자가 필자를 찾아온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계절은 봄, 바로 이맘때였다. 아침 일찍 할머니 한 분이 보건지소 문을 두드렸다. 풀밭에서 일을 하다가 손에 뭐가 뜨끔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 손이 뻑뻑하고 붓는 것 같다며 황급히 보건지소를 찾아오셨다는 것.

할머니의 손을 살펴봤다. 엄지 손가락이 살짝 부었고 조그만 상처가 나 있었다. 그다지 통증이 심한 것 같지도 않았고 상처 또한 깊지 않아서 소독한 뒤 진통소염제를 처방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어 할머니가 다시 보건지소를 찾아왔다. 손이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 통증도 무척 심해져서 그 할머니가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뿔사! 할머니 손에 나 있던 상처를 다시 유심히 보니, 이건 뱀에 물린 상처였던 것. 당연히 뱀에게 물린 환자들은 뱀한테 물렸다고 얘기할 거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설마 이런 경우가 있을 줄은 몰랐다. 당시 보건지소에는 해독제가 없어서 할머니를 필자의 승용차에 태우고 시내응급센터로 이송했다. 부랴부랴 해독제를 투여하고 치료를 마쳤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었다.

디스크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쪽의 충격을 완충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말랑말랑한 수핵, 그리고 수핵을 여러 겹으로 감싸고 있는 바깥쪽의 섬유륜이다. 그런데 수핵속에는 phospholipase A2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뱀독의 치명적인 물질이다. 다행히도 섬유륜이 온전할 때는 phospholipase A2가 신경주위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디스크가 찢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시 말해 수핵을 둘러싼 섬유륜이 찢어져서 수핵속의 phospholipase A2가 신경주위로 흘러나오게 되면 엄청난 통증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우리 몸속에 있는 작은 뱀이 신경을 꽉 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치가 그러하다보니 급성 디스크 때문에 꼼짝도 못해서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내원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뱀독이 신경주위에 퍼져 있어도 빨리 부위를 확인해서 해독제를 그 부위에 맞으면 곧 나아질 수 있다.

디스크로 인한 통증은 대부분 수핵에서 흘러나온 독, 다시 말해서 phospholipase A2가 신경에 부종, 염증 손상을 일으켜서 발생하기 때문에 빨리 phospholipase A2를 없애주어야 한다. 이게 바로 경막외 주사치료, 즉 신경주사치료다. 신경주사치료라고 하면 신경에 직접 맞는 주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신경에 직접 맞는 주사가 아니고 디스크와 신경주위 공간에 주입하여 디스크와 신경사이에 흘러나온 phospholipase A2를 없애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방법이다. 왜 디스크가 있을 때 주사로 치료하는 게 맞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무리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몸에도 뱀이 살고 있다. 그 뱀은 움직이진 않지만, 독을 내뿜어 디스크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디스크를 다스리는 일은 곧 우리 몸 안의 뱀과 뱀독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의 머릿속에 종종 아담과 이브, 뱀과 사과가 떠오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독자 여러분들의 척추건강을 기원한다.



달려라병원 이성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