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수 있을 만큼 내는’ 밥집…자연, 나누고 비우는 삶과 음식 보여줘

도시에서 ‘나눠먹는 밥’ ‘비우는 삶’ 보여주고, 확산하고자 만든 식당

철학자 농부 윤구병 선생의 ‘자연, 나눔, 비움’의 정신과 맥락 같이해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약은 좋은 음식”… 유기농 식자재만 사용

식사는 사찰의 발우공양보다 더 엄격… 그릇 비우고, 몸의 스트레스도 비워

힘들고 경영 어렵지만 음식 통한 ‘비움’ ‘나눔’ 가치 이뤄지리라 믿어

질문으로 답을 대신한다. ‘문턱 없는 밥집’에 가본 적이 있는가?

식당 간판치고는 희한하다. ‘문턱 없는 밥집’? 한두 번 가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기본적인 얼개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밥집 문을 연지 이제 10년을 넘겼지만 메뉴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변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마치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문턱 없는 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고영란씨를 만나 이 희한한 밥집의 속 이야기를 들었다.

“낼 수 있을 만큼 낸다” VS “정해진 만큼 낸다”

개인적인 체험부터 이야기하자. 2012년 언저리로 기억한다. 지인이 인근에서 출판사를 운영했다. 미팅을 했다. 마침 점심시간. 점심을 먹기로 하고 “어느 집?”이라고 물었다. 이집을 지목했다. “밥값을 자기 마음대로 내면 되는 희한한 곳”이라고 했다. 무슨 소리일까? 지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넉넉한 사람은 밥값을 더 내도 좋고 가난한 이는 밥값을 적게 내도 좋은 집”이라고 했다. 아하, 재미있는 집이네, 희한한 곳이군, 이라고 생각하고 쫄래쫄래 따라갔다.

메뉴는 간단했다. 비빔밥 한 종류였다. 주방 앞에 반찬들이 죽 줄지어 서 있다. 밥부터 반찬까지 먹는 이들이 마음대로 덜어오는 뷔페식당이었다. 마지막에는 숭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기지만 않으면 얼마를 가져도 먹어도 된다. 밥값은 마음대로 치르면 된다. 그날 지인이 밥값을 냈다. 식당을 나오면서 “얼마 냈느냐?”고 물었더니 1인분 6000원으로 셈해서 1만2000원 냈다고 했다.

얼마쯤 더 내면 돈 없고 배고픈 이가 그 나머지 돈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만큼만 냈느냐, 그렇지 않다, 낼 만큼 냈다, 등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기억이 있다.

음식점의 밥값은 정해져 있다. 메뉴에 이미 나와 있다. 더러 ‘시가’라는 메뉴는 대부분 상당히 비싸다. 식당의 밥값은, 내가 밥을 먹고 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낸다. ‘문턱 없는 밥집’은 보기 드문, ‘낼 수 있을 만큼 내는’ 밥집인 셈이다. 첫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그날 밥을 먹으면서 우연히 ‘문턱 없는 밥집’을 운영(?)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왜 이런 밥집을 운영하느냐?” “경영은 되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몇 가지 이야기를 대답으로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윤구병 선생이 ‘문턱 없는 밥집’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변산공동체, 보리출판사 대표, 철학자 농부 윤구병 선생

<잡초는 없다>는 책이 있다. 1998년 출간된 책이다. 보리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다. 벼가 자라는 논에 보리가 나도 마찬가지다. 역시 보리가 잡초다. 잘 살펴보면 산삼도 역시 잡초다. 자기 자리에 자라지 않는 모든 것은 잡초다.

윤구병 선생은, “잡초와 작물은 인간이 가른 경계다. 그 경계는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잡초는 쓸모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잡초는 없다>는 책의 의미다. 오히려 잡초로 효소를 담근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보면 잡초지만 소화력이 좋은 소가 먹으면 영양이 많은 풀일 수 있다. 잡초와 작물의 경계는 단순히 인간이 구분한 경계일 뿐이다. 인간이 자연을 재단하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 나눔, 비움.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전북 부안의 ‘변산공동체’로 가면서 그리고 그 후에나 지금도 ‘변산공동체’ 그리고 윤구병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자연, 나눔, 비움’이다. ‘문턱 없는 밥집’도 그 언저리에 있다.

“2007년 ‘문턱 없는 밥집’이 문을 연 것은 바로 나눔과 비움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세운 식당이 아니지요. 현실적으로 ‘문턱 없는 밥집’의 임대료가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건물을 관리하던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소’가 도움이 되었지요. ‘변산공동체’와 윤구병 선생님, 그리고 ‘민족의학연구소’에서 1층을 싼 임대료에 ‘문턱 없는 밥집’에 빌려 주었지요. ‘변산공동체’나 윤구병 선생님이 대표로 계시는 ‘보리출판사’와 마찬가지로 ‘문턱 없는 밥집’도 도시에서 ‘나눠먹는 밥’ ‘비우는 삶’을 보여주고자, 그리고 그 운동을 확산하고자 만든 식당이었습니다.”

고영란 대표는 ‘문턱 없는 밥집’의 초기부터 이 식당 일에 참여했다. 스스로는 “내 삶에 ‘문턱 없는 밥집’이나 올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나눔과 비움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한다.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약은 좋은 음식입니다. ‘문턱 없는 밥집’은 도시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보여주려 합니다. 나누고 비우는 삶과 음식을 보여주려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주변의 숱한 ‘먹방’들을 보면 전부 스트레스를 푸는 음식들입니다. 짜고 맵고 단 음식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푸는 음식들입니다. 스트레스는 잔뜩 받고 어느 순간 또 스트레스를 주는 음식을 먹습니다. 술도 그렇지만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나면 입에는 달고 몸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음식들이지요.”

자연, 비움, 나눔

‘문턱 없는 밥집’은 얼마간의 시련도 겪었다. 한때 ‘문턱 없는 밥집’이 문을 닫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문을 연다는 등 말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설왕설래 말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동안 어려움도 있었고요. ‘문턱 없는 밥집’의 존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요. 행정처리 미숙으로 세금을 내야 할 문제도 있었고 역시 임대료 문제도 있었고요. 건물 자체가 공익적 활동을 도우려고 장만한 것이었는데 일상적인 임대료를 내야한다고 하니 문제가 되었지요. 이제 그런 문제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재정적으로는 힘듭니다. 종업원 한명 더 쓰는 문제도 힘들 정도로 경영은 어렵습니다.”

“봉급은 제대로 받느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최소한 생계가 가능할 정도로 받는다”고 답한다. 처음부터 인터뷰에서 ‘문턱 없는 밥집’의 ‘대표’라는 표기를 선뜻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이름이야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문턱 없는 밥집’은 공익을 위한 단체이자 식당이다. 사기업처럼 대표가 있고 오너가 있는 체제는 아니다. 고영란 대표도 마찬가지다. 잘 헤아려 보면 ‘대표직원’쯤 된다. 운영을 하지만 소유한 것은 아니다. 애당초 ‘문턱 없는 밥집’의 공간이나 ‘문턱 없는 밥집’이 존재하는 건물도 개인의 소유는 아니다. 이미 공익이 활용토록 규정된 것이다.

‘문턱 없는 밥집’의 나눠 먹는 밥, 나눔은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 이 원칙을 정했을 때는 나눔이 순탄하게 진행되리라 생각했다. ‘비움’이나 ‘자연’의 의미도 쉽게 받아들이리라 믿었다.

“좀 더 넉넉한 밥값을 내는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솔직히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형편이 되는데도 밥값을 제대로 내지 않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실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 배는 고프지만 밥값이 없는 분들이 이런 분들 때문에 ‘문턱 없는 밥집’에 쉽게 드나들지 못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제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실제 나눔의 대상이 되는 분들이 혜택을 봅니다. 진짜 나누는 일이 가능하지요. 요즘도 식대를 내지 않고 식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진짜 힘든 분들이지요. 이분들께 식사를 대접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문턱 없는 밥집’에 가면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문(?)들을 잘 볼 일이다. ‘문턱 없는 밥집’은 손님과 주방, 운영인력이 더불어 운영하는 공간이다.

‘자연’.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삶이 행복하다. 유기농 식자재를 구해서 사용한다. 농약을 피한 먹을거리를 구해서 사용한다. 모든 식재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용한다. 채소의 뿌리도 버리지 않는다. 반찬으로 만들거나 육수를 내는데 사용한다.

식사는 사찰의 발우공양보다 더 지독하다. 자신의 그릇을 비우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여러 번, 많이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남기는 것은 절대 금지다. 사찰의 발우공양처럼 자신의 그릇은 마지막에 씻어야 한다. 무 쪼가리 등으로 그릇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밥알이 아니라 깨진 밥알까지 모두 입속으로 넣는다. ‘비움’이다.

그릇은 비우고, 몸의 스트레스도 비운다. 음식은 나눠먹는 것이다. 넉넉하면 얼마쯤이라도 더 낼 일이다. 이 나눔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고영란 ‘대표직원’. 서울 태생이지만 다행히도(?) 부모님이 전북 순창 출신이다. 음식 만지는 솜씨는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았을 터이다. 여상을 다니던 시절 우연히 환경단체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갖췄다. 성당의 한국외방선교회나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등에도 관여했다.

‘문턱 없는 밥집’에 참여한 이유는 간단하다. 능력이 특출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 나도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기분으로 첫발을 디뎠다. 2003년. 말은 쉽게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여전히 ‘문턱 없는 밥집’의 경영은 어렵다. 설혹 나아진다 하더라도 운영진이 편해질 일은 아니다.

오전 9시30분에 문을 열고 밤 12시까지 일한다. 더러는 새벽 1시에 퇴근한다. 힘들지만 신나게 일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힘든 것은 사실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니까 열심히 일한다. ‘비움’ ‘나눔’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느리지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문턱없는밥집’의 ‘대표 직원’ 고영란씨. 이제 나눔과 비움, 그리고 ‘문턱없는밥집’이 삶으로 녹아 들어왔다고 말한다. 운영이 잘 되면 직원을 한명 더 늘이는 것보다 좀 더 ‘나눔’과 ‘비움’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문턱없는밥집’의 간판. 나란히 어미의 젓을 먹는 새끼들의 모습이다.

-‘문턱없는밥집’실내 분위기.

‘문턱없는밥집’의 밥상. 소탈하지만 정갈하다.

-2017년 5월의 밥상이다. 미역국과 쌈채소가 돋보인다.

-2017년 6월, 인터뷰를 하면서 마련한 밥상이다.

[친환경/유기농 맛집 4곳]

물메골

제주도의 친환경 맛집이다. 사찰음식 풍으로 인근의 자연산 채소를 구해서 음식을 만든다. 주인의 음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소박하지만 제대로 된 음식들이다.

아승지

비구니 스님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전문점이다. 인공 조미료 사용을 절제한 음식. 요리 식으로 내오는 음식도 좋지만,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식사, 밑반찬도 아주 좋다.

걸구쟁이

더할 나위 없는 사찰음식전문점. 자연산 산나물, 들나물이 아주 좋다. 음식을 매만지는 솜씨도 수준급. 두부나 묵, 부각 등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채근담

채식, 자연식 위주의 음식을 내놓는다. 음식도 수준급이지만 내부 인테리어나 좌석 배치 등이 아주 좋다. 외국인 손님을 접대하기에도 아주 좋다. 음식은 정갈하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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