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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천성산 대책위 지율 스님
"산의 신음이 들리지 않습니까"
양산 천성산 보호에 온몸 던진 비구니, 도룡뇽 소송으로 환경운동사에 기록 남겨


4월8일 오후 3시 30분 경남 양산시 하북면의 천정산 자락. 사제복을 입은 신부 3명과 신도 20여명이 따뜻한 봄볕 아래 모여 있었다. 부산 교구 손태승 신부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행사를 이끌고 있었다. 봄맞이 나들이라도 나온 것일까? 그러나 이어 벌어진 정황은 그리 만만치 못 했다.

“다이나마이트, 포크 레인으로 파헤져 진 산….” 장중한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말의 내용이 여느 미사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니, 무엇보다 판이했던 건 미사가 행해졌던 장소였다. 벌건 속살을 드러낸 채 깎여 있는 절벽, 뿌리까지 뽑혀 나뒹굴고 있는 나무들. 20분 가까이 됐을까, 몸집 좋은 공사측 직원 3명이 허겁지겁 올라 왔다.

“3월 9일부터 와서 저렇게 버티고 있어요. 공기 연장으로 하루에만 1억3,000만원의 손해가 나요.”그들은 못내 분해 죽겠다는 듯 씩씩댔다. 카메라로 행사를 기록하고 있던 남자 신도와 “필름을 보자”며 실랑이를 벌이던 이들은 그러나 뜻밖의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펼쳐지던 조용한 행사를 더 이상 어찌 못 하고 발길을 돌렸다. 초롱한 눈망울의 아이 너댓이 부모를 따라 와,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의 처사에 대한 신부의 카랑카랑한 성토는 계속됐다.


- “자연과 인간의 정서를 뭉개는 공사”





이어 비구니 지율 스님이 조용히 중앙으로 나섰다. 합장을 조용히 하고 난 스님은 자신이 본 바를 담담히 이야기했다. “기계가 다시 올라 와서 500여m를 순식간에 벌목해 갔습니다.현재 진행중인 이 2차 구간 공사는 62억이라는 외국 차관을 대가로 이 산의 아름다움과 우리의 정서를 뺏어 가고 있습니다.”보름만에 치러진 이번 행사는 스님의 뜻에 적극 동참해 온 인근 가톨릭교회가 마련했다. “지율 스님을 위한 이웃 종교의 기도회” 라고 천성산대책위원회 사무국 소속의 손정현 감사가 설명해 주었다. 그는 현재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구 감사이기도 하다.

산상 미사를 마치고 온 스님은 일행에게 말했다. “무덤을 파 뒀던데, 거기 들어가면 딱 되겠네”라고. 공사 때문에 산천이 허물어져 가자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바람에 남겨진 구덩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 미사가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독특한 종교 의식이었다.그러나 행사를 마치고 스님이 거하는 방으로 모여 든 사람들 때문에 조용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최근 그 동안 천정산을 보호하기 위해 펼쳐 온 갖가지 일을 기록해 펴 낸 책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刊)’에 스님의 사인을 받아 가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위치한 농가가 졸지에 복작댔다. 스님과의 대담은 그래서 짬짬이 하는 도둑 인터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사적인 얘기는 절대 안 한다”는 전제 아래. “이제 본격 수행에 들어 가면 절대 얼굴을 내밀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갖기로) 이번에 큰 결심을 했어요.” 호리호리한 몸매에 수행자의 결연함이 숨어 있다.

- 범종교적 천성산 살리기 이끌어내

산중 수도승 같은 행색이지만, 시쳇말로 하자면, 스님은 충분히 업 그레이드 돼 있다. 천성산 살리기라는 도메인(www.cheonsung.com)의 관리자이다. 은사 스님의 동생인 교사 이상진씨가 만들어 준 인터넷 공간 곳곳을 자연에 대한 사랑의 기록으로 채워 가고 있다. 오늘도 천정산에 관한 갖가지 사연들이 영상과 함께 넷 세상을 달군다. 거기에는 나름의 안목을 갖춘 사진가라는 사실도 한몫 톡톡히 한다. 스님의 마음이 포착된 사진들은 한 점 한 점이 작품으로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영상들, 초근접 거리에서 촬영한 도롱뇽의 앙증맞은 자태 등 스님이 왜 이 곳에 매료됐는 지를 아무런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전시회를 펼치자고 성화를 떠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다.

현장 미사 '십자가의 길'에 참석중인 지율스님.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파괴돼 가는 천성산을 보다 못해 2003년에 38일, 또 45일 단식 기도에 들어 갔던 일은 한국 생태 운동사에서 인상적인 대목으로 기억돼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내게서 헐거워져 가고 있다/자꾸 흘러 내리는 바지춤과 품이 넉넉해 지는 적삼도/오후에 정보과에서 와서 강제 입원을 시키겠다고 한다/그것?현재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의 지시 사항이다.’그러나 스님은 협박과 회유 너머를 본다.

‘저들은 헐거워져 가는 내 육신에 또 다시 손을 대고 싶어 한다/그러고 나면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에 손을 댈 것이다.’ 단식 31일째, ‘헐거워져 가는 신발’이란 제하로 써 내려 간 진술이다. 노모의 읍소까지 삭여 냈던 몸이다. ‘새벽 첫 차를 타고 내려 오신 어머님께서/가자.그만 가자/다 그만 두고 이제 그만 가자 하신다.’음식을 끊은 지 38일째였다.

단식 45일을 넘기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뇌세포 등 장기들이 영양 부족으로 죽는다는 것이 의학계의 상식. 스님은 그래서 45일째 병원에 강제 입원돼 영양제 투입 등 긴급 처치를 받았다.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노력으로 닷새뒤에는 17만5,417명의 소송인단이 확보돼, ‘양산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른바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한국 환경 운동사에 길이 기록될 사건을 혼자서 일궈 낸 것이다. 그리고 지율 스님은 아예 거처를 천성산 자락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곳은 어떤 데인가?

자연생태계보호구역, 청정 계곡만 12곳으로 4㎞가 넘는 곳, 희귀한 고산 습지가 22군데, 법정 보호 동식물이 30여종. 그리고 도롱뇽. 우리는 이 생물을 이름으로 안다. 어렸을 적 자연 도감 같은 데서 어쩌다 한 번은 봤을 지도 모른다.

스님은 최근 펴낸 책 ‘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刊)’에서 그 이름 모를 들풀에 대해 이렇게 썼다. ‘계곡 마을의 언덕에 앉아 봄물이 내리는 마을을 바라 보고 있다. 마른 땅에서도 쑥쑥 올라 오는 쑥과 냉이, 개울가의 미나리, 양지쪽의 양지꽃, 꼼지락거리며 올라 오는 개불알풀과 광대풀…’. 미역줄나무, 이삭귀개, 물매화, 끈끈이주걱 등도 봄 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 “어찌 이 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스님에게 자연은 인간 세상의 질긴 인연을 돌아다 보게 하는 계기였다. 고속도로 천성산 구간의 공사가 시작한 날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던 3월 12일이었다. 정치의 지읒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스님은 그 사건이 여간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고향의 정기를 끊고 고향에 돌아오지 못 할 사람이 되지 않겠다던 불전에서의 맹서와 조상전의 언약, 자신을 지지했던 신의를 저버렸던 사람들의 신의를 저버린 지금, 그를 기다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가 고향에 돌아온들 무엇하랴.’노 대통령의 고향은 김해시 진영읍. 스님은 말했다. “노 대통령이 풀지 못 하면 고향으로 돌아 오지 못 하는 것이 불가의 업”이라고.

지율스님이 자신의 도롱뇽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임재범 기자



스님은 북한산 관통 터널, 새만금 방조제 등 일련의 사업에서 정부가 보여준 행위를 보고 너무나 당혹했다고 한다. “신부님과 스님이 삼보일배를 하고 청와대까지 갔으면 민정 수석이라도 보내야죠. 명분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총무원장 찾아 가 협잡하는 게 정친가요?”스님은 낮고 조용하게 말했다. “원맨쇼 하든 시민과 하든, 칼자루 쥔 사람은 곁길로 나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스님은 제자리에서 제대로 가는 세상을 희구한다. 스님은 “이 곳은 개발 논리와 보존의 당위가 가장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다”고 전제, “나는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봄비잖아요.”

스님의 방안에 고이 재여져 있는 사진들은 4월 9일 마산 전시회를 기점으로 부산과 양산 등지를 거쳐 서울까지 올라 갈 계획이다. 제목이 궁금하지 않은가? ‘어찌 이 곳을 흐트리려 합니까?’책의 출판기념회는 13일 부산시청 동백홀에서 펼쳐愎? 이어 20일에는 세계적인 명상가 페터 노이야르가 천성산까지 와서 스님을 만나기로 돼 있다. 부산 동보서적에서 근저 ‘독일에서 온 거지 선자’의 한국 출판을 기념하는 초청 강연회를 갖는다는 것이지만, 천성산에 와서 지율 스님을 꼭 만나고 싶어 한 본인의 뜻 때문이다.

“자꾸 다비식을 해 달라는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할 따름”이라는 어느 신부의 말이 천정산 자락에 맴돌고 있었다. 그런 스님에게, 법랍(法臘)을 여쭙는 기자가 참으로 잔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속명(俗名)임에랴. 스님은 누누이 강조했다.“나의 본령은 수행자인데, 지금 너무 치우쳐 있다”라고. “숲에서 나왔으니, 언젠가 들어가겠죠. 서산대사나 사명대사가 칼을 거두고 돌아갔듯.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녜요. 스님은 “절박한 상황에서 싸우다 보니 인성을 다치는 게 사실”이라는 말 한 마디를 남겼을 뿐이다.

- “도룡뇽, 원고자격 없다” 판시

스님의 다음 말은 산을 향하고 있을까, 저잣거리를 향하고 있을까? “나는 산의 소리를 가슴 아프게 들었다.” 스님의 말 한마디는 커다란 울림이 되어 천정산으로 들어 갔다. (한편 4월 10일자 한국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눈에 뜨였다. ‘도룡뇽 소송, 원고 자격 없다’라는 제하의 기사 요지는 이렇다:울산 지법 민사 10부(재판장 김동옥 부장판사)는 9일 “환경 보전이 옳은가, 국가적 편익이 옳은가는 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문제”라며 “ 원고측의 가처분이 자신의 권리 침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 생태계 파괴 등을 문제 삼는 것은 사법적 구제를 초과한다”고 판시했다는 것이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4-04-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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