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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황정민
낯선, 그러나 순백의 가슴을 가진…
대학로 연극무대서 잔뼈 굵은 쟁이, 섬세한 내면연기로 영화판서 주목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다. 설경구, 송강호 등이 증명하듯 사실이 그렇다. 하루 아침에 주인공 자리를 덜컥 꿰찬 소속사의 인형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시린 세월의 견디며 눈물의 빵조각을 삼킨 그들 연기에는 분명 비범함이 있다. 한창 젊은 시절을 동숭동 연극판에서 보내며 ‘배우’의 꿈을 키운 황정민도 그런 케이스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찾아간 극단 ‘목화’가 첫 직장(?)으로 연봉 200만원에 친구 만나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여자친구랑 데이트도 했다는 그. 한국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남자 배우로 떠오르고 있는 황정민을 탐구한다.


- 연기에 관한 한 완벽주의자





‘황정민’하면 아직은 낯설거나 헷갈린다. 동명 이인의 여자 아나운서가 있고, 역시 연극판에서 괜찮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황정민이라는 여자 배우가 한명 또 있다. 만약 헷갈린다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삼류 드러머 강수나 <바람난 가족>에서 젊은 사진작가와 바람나는 속물 변호사 영작을 떠올려 보자. 그래도 모르겠다고? 그럼 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영화에 얼굴을 내비친 적은 없으니 어쩌겠는가. 황정민의 영화 고르는 눈이 난해한 것인지, 작가주의 감독들만 그를 찾는 것인지 지금껏 그가 출연한 영화는 꽤나 진지하다.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고백 한번 못 하고 친구한테 당하기만 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강수, 친일파 아버지를 둔 소심한 애국청년인 의 광태, 동성을 사랑해서 가족도 등돌린 채 부랑자로 살아가는 <로드무비>의 대식, 인권 변호에 열심이면서도 외도를 일삼는 <바람난 가족>의 영작은 모두 단선적인 캐릭터라고 보기는 힘든 복잡한 내면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묘하게 끌린단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황정민은 ‘감각형’과 ‘분석형’ 중에 후자에 속한다. 작품 속 캐릭터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본인이 만족할만한 납득이 가는 연기를 펼쳐야 속이 시원하다. 최근 개봉한 <마지막 늑대> 찍을 때는 강원도 현지에 머물며 사투리를 녹음해 배웠다니 연기에 관한 그의 완벽주의는 짐작이 간다.

영화배우로서의 데뷔는 좀 늦었지만 연극무대에서는 이미 스타다. 중학 시절 우연히 윤복희 주연의 <피터팬>을 보고 연극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해 계원예고와 서울예대 연극과를 거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대학로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모스키토> <의형제> <장보고의 꿈> <캣츠>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으니 스크린에서의 열연은 이처럼 연극무대에서 갈고 닦은 공력이 있기 때문이다.

“신동엽, 안재욱, 임원희 등이 대학 동기예요. 다들 일찌감치 잘 풀렸는데 전 좀 늦게 데뷔한 셈이죠.” 그의 말대로 늦다면 늦게 얼굴을 알렸지만 한국 영화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배우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는 지금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에서 얼굴을 알렸다면 지난해 MBC영화상, 부산영평상, 청룡영화상, 디렉터스 컷 등 굵직한 5개 영화상 시상식에서 상복이 터졌던 <로드무비>를 통해 황정민이란 이름 석자를 확실히 세상에 알렸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물론 많았죠. 그런데 이젠 오히려 처음의 열정이 세월에 바랄까 걱정이에요. 연기도 상품인데 불량품을 보여드릴 수는 없잖아요.”

보통의 배우들이 차기작을 고심하는 동안을 ‘휴식’이나 ‘재충전’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과 달리 그는 ‘백수’라는 표현을 쓴다. 의사가 라이센스가 있어도 진료를 하지 않고 놀기 바쁘면 감히 의사라고 말할 수 없듯이 배우는 쉼없이 연기하면서 촬영장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워커홀릭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래요.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성격이구요. 남들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죠.(웃음)”

현장에서도 스태프들 이름 하나하나를 일부러 다 외운다. 영화를 찍는 것은 카메라지만 버튼을 누르는 것은 사람이니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배우遮?것. “솔직히 말해 전 아직 썩 좋은 배우가 아니에요. 열심히 하는 것 뿐이죠. 지금도 어머니는 인생의 기회는 두 번 안 오니 인상 쓰지 말고 웃으면서 열심히 하라고 하세요. 그러니 어찌 게으름을 필 수 있겠어요.”

-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면 OK

힘들다고 느낄 때는 미술관의 그림 속에서 에너지를 불끈불끈 전달받고, 취미絶?부르는 섹소폰 선율에 흠뻑 젖기도 한다. 노후에는 자녀들과 한적한 전원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데 아직까진 고속도로 톨케이트에서 반짝이는 서울 네온사인만 봐도 반갑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요. 그렇다고 얄팍하게 살지는 않을 거구요.”

<마지막 늑대>에서 열혈 순경인 그는 실제로도 세상에 대해서 열혈 시각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 보호망이 너무 허술해요. 희귀병자들 병원비는 의료보험 처리도 안 되잖아요. 또 상도동 재개발 주민들의 첨탑 농성, 농민시위 갖은 것을 보면 정말 갖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촬영 중에 불어 닥친 태풍 매미로 한해 농사를 다 망친 농민들을 바로 옆에서 보니 그 안타까움은 더 했단다. 조금이나 도움이 될까 전 스태프들이 수재민들의 고추 재배를 도왔다고. “숀 코너리처럼 멋지게 늙어서 중후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단계가 와야 할텐데 말이에요.”

<스모크>의 하비 카이텔처럼 평범 속에 비범함이 있는 연기가 목표다. 아직 백색 도화지같은 연기자인만큼 인간냄새 나는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오케이다. 이웃집 형같은 친숙한 이미지에 함박 웃음이 매력적인 황정민. “10년 사귄 동갑내기 뮤지컬 배우 김미혜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꼭 결혼할 것”이라며 활짝 웃는 그는 지금 최고의 배우라는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힘껏 당기고 있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4-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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