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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조건] 최재천 서울대 교수
넓게 보고 깊이 고민하다 매처럼 기회를 잡아
쏘다니기 좋아하는 천성 자연스레 직업과 연결
다양한 관심과 예술적 감수성으로 동물학자 새 이정표


주간한국은 환경재단과 함께 ‘성공의 조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사회 각 분야 리더의 성공 요인을 치민하게 탐구할 것입니다. 리더가 이룬 업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결과를 낳은 내적 동인에 대한 탐색을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지향해야 할 원칙, 가치관이 무엇인지 단서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집필자 한근태씨는 한국과학종합대학원 교수이면서 한국리더십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최재천은 ‘알면 사랑한다’ 는 좌우명을 가슴에 붙이고 다니는 ‘생명, 과학, 자연사랑의 전도사’다.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지도 아래 10여 년간 열대를 누비며 동물행동학을 공부했고, 1994년 귀국 이후 우리나라의 개미, 까치, 조랑말 등을 연구하여 세계 학계에 보고했다. EBS에서 <동물의 세계> <여성의 세기가 밝았다> 등을 강의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기도 했다.





유명인사를 인터뷰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약속시간을 잡는 일이다. 간신히 오전 9시로 약속을 잡았는데 다음 약속이 하나 더 잡히는 바람에 약속시간을 한 시간 당기면 어떻겠냐고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가능하긴 한데 애를 학교 보내고 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라는 대답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 한 마디로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애를 챙기느라 약속에 늦을 수 있는 사람, 그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최재천이다.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런 사실을 전혀 감추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몇 번의 모임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직접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앉은 것은 처음이다. 예상대로 첫 느낌은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 자체다. 선한 사람의 대표선수 격이다.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이 남에게 소리를 지르고, 누구를 비방하고 못 살게 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살아온 얘기부터 들려달라는 주문에 그는 자신의 삶을 풀어내기 시작하는데 마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강릉이, 고향, 태생적 자연친화

그와 강릉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강릉의 푸른 바다와 산, 아름다운 자연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다. 그는 강릉에서 태어나 들과 산을 뛰어 다니며 놀러 다니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대관령을 넘었고, 그도 서울에서 공부를 했지만 방학만 되면 연어가 제 집을 찾아가듯 강릉에서 방학을 보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늘 마음은 강릉의 산과 바다에 가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동물생태학자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공부 잘 하는 애들 중에는 의대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입시운이 따라주지 않아 서울의대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2지망으로 별 생각 없던 동물학과에 들어오게 되었다. 초년은 망가진 셈이다. 그는 늘 들과 산이나 쏘다니고 놀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직업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우연히 동물생태학이 그런 직업이란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것을 직업과 연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를 만나보면 바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의사이고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그는 아직 전세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별로인 셈이다. 하지만 부자인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사는 최재천인 것이다.

그는 예술가적인 과학자이고 부인은 과학적인 예술가란다. 과학자가 되지 않았으면 소설가가 되었던지 춤 선생이 되었을 거라고 고백한다. 확실히 그렇다. 딱딱하고 논리적인 학자의 느낌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부드럽고 달콤한 예술가의 느낌을 받는다. 그는 여러 면에서 예술가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경복고 시절 우연히 제출했던 조각작품 (비누로 만든 부처님) 덕에 미술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친구 따라 쫓아간 백일장에서 시 부문 장원이 되기도 했다. 그 때 지은 낙엽이란 시는 도저히 중학생이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대학시절에는 영상이란 사진클럽 회장을 하기도 했다.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기회 앞에서는 과감하고 전략적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면서 하버드 대학의 윌슨 교수를 찾아 나설 때가 그랬다. 개미박사로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 윌슨은 동물학과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쉽게 만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편지를 여러 번 주고 받은 후에 약속을 얻어내고 열 몇 시간 운전을 해서 그를 만난다. 첫 만남 때 15분밖에 시간이 없다는 윌슨 교수를 설득해 (만나는 주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라 그는 늘 이런 식의 접근법을 사용한다) 2 시간 이상 얘기를 나누고 당당히 하버드대학에 입학한다.


- 전략적 접근으로 하버드대 박사

미리 치밀하게 연구를 한 덕이다. 대학 시절 공부를 그리 열심히 안 해 학점은 좋지 않았지만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민벌레(Zoraptera)를 연구해 보겠다고 그를 설득한 것이다. 민벌레는 잡기도 힘들고, 기르기도 힘들어 자칫하면 박사학위를 못 받을 수도 있었지만 도전을 했고 성공을 한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했다. 또 기회다 싶으면 과감하게 도전해서 이를 잡았다. 성공은 기회와 준비가 만나는 데서 일어나는데 그는 이를 보여주었다. 강하지만 부드러움으로 감싼 사람이 최재천이다. 그런 그에게 외유내강(外柔內剛)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을 듯하다.

그는 관심거리가 많다. 그래서 문예반이다, 미술반이다, 사진반이다 하면서 온 동네 참견은 다 하고 다녔다. 책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면서 관심 분야가 더욱 넓어졌다. 그런 그가 미시간 대학에서 3년간의 주니어펠로우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세상사에 눈을 뜨고 말았다. 주니어펠로우로 선정되면 3년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모든 경비를 대 주고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일년에 4명, 3년이니까 12명의 주니어펠로우가 있는데 이들은 매주 한 번씩 점심을 하면서 온갖 세상사를 주제로 한담을 한다. ‘진화는 진보인가’, ‘중산층은 없다’, ‘재즈의 역사’, ‘동양의 용 문양’ 등등 갖가지 테마를 놓고, 각 분야의 교수들이 논쟁을 하고 코멘트를 하는 자리다. 때로는 밤을 새워 논쟁을 하기도 한다. 3년간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나자, 어떤 주제에 대해 질문을 받더라도 나름의 주장을 할 수 있을 실력이 되었다.

하나만을 파는 것보다는 여러 학문을 기웃거리는 것에서 창의성이 나온다. 그는 동물학자지만 단순한 동물학자는 결코 아닌데, 바로 그런 다양함 덕이다. 전공이 다양함과 버무려져 재창조 되기 때문에 그의 강의와 글이 매력적인 것이다. 많은 방황, 다양한 관심, 활발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지만 워낙 가난해 아무런 가능성을 보지 못하자 고2때 육사에 들어갔다. 가난하지만 청렴결백했다. 그의 어머니는 억척스러웠다. 박봉의 군인 월급으로 4형제를 서울에서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이 그려지지 않는가? 자식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에 과외까지 시켰다. 대신 자신은 하나도 없이 살았다. 당시 구슬백이 유행을 했는데 어머니는 늘 손수건에 돈을 싸 가지고 다녔다.


- 가난에서 얻은 삶의 책임감

가난한 살림, 엄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 밑에서 고생하는 어머니, 심장병을 앓았던 동생. 덕분에 그는 빨리 철이 들었다. 본인은 청년 시절을 까불까불하고 입담이 좋았다고 기억을 하는데 친구들은 다르게 기억을 한다. “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 같았다. 뒤에 어두운 그림자와 심각함이 있었다”라는 것이다.

그는 한 번도 맘껏 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장남으로서,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할 사람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긍정적인 주문을 불어넣었고 그 주문대로 성공했다. 야학시절 그가 만들어 학생들에게 준 교훈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보다 긍정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낙천적으로.”

최재천은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 같은 사람이다. 조용하고 감성적이다. 예술적이지만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이다. 환경은 어려웠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동물생태학을 전공으로 했지만 다양한 관심 덕분에 그것을 재미있고 쉽게 일반인에게 전달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거친 환경이었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내면적으로 강한 사람이 된 그런 사람이다. 아픈 동생, 고생한 어머니, 자신의 유학을 위해 퇴직금을 내놓은 아버지를 얘기할 때는 목이 메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얼굴은 그 사람 삶의 대차대조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확실히 성공한 사람이다. 누구나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4-06-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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