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사랑에 스민 민족사랑분단의 아픔과 민족의 애환 몸으로 부대낀 삶 가곡에 담아

[인물포커스] 사단법인 세종예술음악협회 정치근 회장
가곡사랑에 스민 민족사랑
분단의 아픔과 민족의 애환 몸으로 부대낀 삶 가곡에 담아


“음악을 사랑하고 가곡을 사랑하는 금수강산의 선남선녀들이여! 돋는 해 지는 달 아름다운 가곡들을 노래 노래하면서 부디 어제와 내일도 언제나 영원히 다행다복 하시기를 손 모아 빕니다.”

가곡 보급을 위해 애쓰고 있는 원로 시인인 사단법인 세종예술음악협회 정치근 회장(83)은 팔순을 넘긴 노구에도 가곡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다.

정 회장은 암울했던 일제 시대 중학교 다닐 때 나라 잃은 설움을 노래한 이홍렬 님의 ‘바위고개’를 듣던 순간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당시 나라 잃은 설움을 밀어내고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바위고개’는 정 회장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때의 그 진한 감동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평생을 창작활동은 물론 가곡의 정립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정 회장의 가곡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그가 살아온 삶과도 무관치 않다.

정 회장은 일제시대와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과 맥을 같이해 누구보다도 아픔이 많은 삶을 보냈다. 정 회장은 1922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21세 때 일찍이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일제시대에는 학도병으로 징집 돼 히로시마에 끌려갔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날 기적같이 살아났다. 또 두 남동생을 홍역과 성홍열로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낼 때 받은 충격과 6.25 전쟁 때 피난가서 사랑스런 두 딸마저 잃는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정 회장의 작품 대다수가 분단의 아픔과 나라사랑을 주제로 하고있는 것도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우리민족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 조국사랑의 노래, 왕성한 창작활동

시인이자 철학박사, 문학박사이기도 한 정 회장의 대표 곡에는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와 ‘조국사랑’이라는 애국심이 가득 담긴 노래가 있다. 또 동방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을 노래한 ‘조국찬가’를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창작시 200여편, 작사 100여곡, 군가 10여곡 등을 작사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는 큰아들은 인민군으로, 작은 아들은 국군으로 갈라져 둘 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을 몰라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현충원을 찾아 여기저기 비석들을 붙들고 오열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쓴 작품입니다.”

정 회장은 최근 영화가에서 엄청난 흥행을 몰고 온 강제규 감독의‘태극기 휘날리며’가 바로 이 노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니냐고 우스갯 소리로 말하곤 한다.

정 회장은 지금도 김신자 님의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들으면 그 할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메어진다.

“가곡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고 희망을 담아 만들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생활이 윤택해지고 외국 대중문화가 급속히 유입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정 회장은 일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가곡이 죽었다’는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때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우리 민족의 얼이 깃든 가곡을 살릴 길이 없을까?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사)세종예술음악협회다.

“우리 가곡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가곡의 대중화를 위해 뜻 있는 분들이 모여 지난 1999년 비영리단체로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협회 출범에는 정 회장이 아끼는 제자들도 한 몫 했다. 그가 서울고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배운 제자들이 자신의 뜻에 동참해 3,000만원이란 거금을 모아 줬다. 또 자신이 펴낸 영어교재가 베스트셀러가 돼 그럭저럭 운영자금을 댈 수 있었다.

- 가곡으로 한민족 동질성 확인시켜

협회는 출범 이후 한국가곡의 보급과 국민정서 함양을 위해 순수가곡 노래집인 <새천년 한국가곡 대전집>과 <애창가곡 100선> 을 발행, 각 3만 여권을 음악관련 단체 및 교육기관에 무료로 배포했다. 또 <한국가곡 대전집> <애국 노래집> 등의 CD음반을 제작, 국내에 3만 여장, 중국에 2만 여장을 배포해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특히 <한국가곡의 밤> <새 천년 음악회> 등 1년에 5∼6차례 무료음악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또 중국 심양과 연길에서는 <한·중 수교 기념음악회>와 <조선족을 위한 음악회>를, 러시아에서는 <한·러 교류음악회 및 고려인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몽골에서는 <한·몽 문화교류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해외 동포들에게 우리 음악과 가곡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왔다.

정치근 회장의 이러한 가곡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기념하고 중국 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중국 심양에는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와 ‘사랑’이라는 노래가사가 새겨진 노래비 2개가 세워져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애국심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고 조국 사랑에 대한 뜻이 담긴 노래 말들을 만들어 젊은 2세, 3세들에게 나라사랑의 마음을 일깨워주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회장은 요즘 ‘인백기천’(人百己千)이란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되내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백의 노력을 하면 나는 천의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을 자신에게 한다는 것. 그래야 무언가 삶의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요즘 방에 누워 있으면 벽마다 걸려있는 4개의 시계가 자꾸 저에게 말을 겁니다. 어제는 뭐했고 오늘은 뭐했냐?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는 등의 말입니다.”

정 회장은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다고 한다. 우리 역사와 같이한 애환의 삶 속에서 지금까지 정 회장의 작품이 가곡으로 다시 태어난 것만 해도 300여 곡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100책(冊) 1000가(歌)’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조국 분단을 아파하는 원로 시인의 열정이 식을 줄 모른다.

- 한국 가곡사 집필에 몰두

정치근 회장은 요즘 한국가곡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가곡의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다. 또 우리 가곡과 음악가들을 기념할 기념관 건립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곡은 서정시에 가락을 붙인 것입니다.서정시를 읽으면 가슴이 뛰고 서정시를 노래하면 더욱 강한 감동을 느낍니다.”

정 회장은 “가곡은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아름다운 우리 노래를 계속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한다.

가곡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과 나라사랑 하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이 정 회장의 소망이다. 그래서 가곡을 만드는 일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원로 시인의 ‘나라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된다.

정치근 회장의 사랑과 열정이 배어있는 우리 가곡이 사랑 받으며 우리 국민들과 영원히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최영규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4-10-21 17:09


최영규 편집위원 choiyk56@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