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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시대 연 선택과 집중
[리더탐구] 최열 환경재단 대표
치밀한 실행력으로 환경운동 이끄는 대한민국 최고의 마당발








국내 환경운동의 일인자 최열 환경재단 대표. 환경이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80년대 초부터 공해 추방과 환경 보호를 외쳐 온 국내 환경 운동의 선구자이다.

그는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던 중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공해추방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등을 설립하여 국내 환경 보호를 위해 계속해서 뛰었다.

그 결과 1994년과 95년에는 유엔환경계획이 주는 글로벌 500상, 환경 운동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한다. 이어 환경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환경재단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이다. 민주화 운동과 이어지는 수감 생활이 지금의 최열을 만들었다. “세상 살이는 자신의 뜻대로 풀리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만일 강원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제대로 대학 생활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식품 회사 연구실에서 화학 조미료나 식품 첨가물, 인스턴트 식품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게 인생 살이입니다.” 그의 얘기이다.

환경운동에 눈뜬 수감생활



1971년 당시 그는 교련 반대 운동을 벌이다 전국 26개 대학 시위 주동자 174명과 함께 제적된 후 강제 입영된다. 제대 후에도 유신헌법 철폐 운동을 벌이다 76년 8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다시 구속돼 6년 형을 선고 받고 45명의 동지들과 안양교도소에 수감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해 여름, 그들은 밤만 되면 감방을 바꿔가며 토론을 한다. 토론의 주제는 다양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출감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였다. 그럴 때면 함께 복역중인 동료들은 한결같이 노동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모두 노동 운동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구미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환경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당시 환경 관련 서적들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교도소로 반입하지도 못했다. 1976년 가을부터 가족들이 보내 준 일본학자 미야모토 겐이치의 ‘일본의 환경 문제’, 우이준 교수의 ‘공해 원론’ 등으로 환경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감방에서 최열 대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환경 공부만을 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책을 읽었다. 복역 기간인 2년 3개월 동안 그는 무려 250여 권의 책을 독파했고, 누구와 토론을 벌여도 대적할 수 있는 환경 전문가로 변신한다.

그는 부지런하다.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철저한 현장주의자이다. 하지만 운전 면허도 없고, 당연히 차도 없다. 늘 걸어 다니거나 택시를 탄다. 그렇게 현장과 밀접하게 생활하면 부수입이 생긴다. 환경연합 대표 시절 만든 환경통신회원 제도도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택시 기사를 환경 활동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환경통신원회는 달리는 환경감시단으로 불리며, 개인 택시 기사를 주축으로 구성된 자원 봉사 조직이다.

이들은 폐기물 불법 투기 감시, 한강 상수원 보호 활동, 매연차 단속,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을 비롯해 25개 구청과 함께 지역환경 보전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만일 모든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이처럼 현장에 밀접해 생활한다면 지금보다는 한 단계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이다.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 분이 한가하게 혹은 나른하게 앉아 있는 것은 상상이 안 됩니다. 늘 바쁘고 분주합니다. 그렇지만 늘 에너지가 넘치지요.” 간부진의 얘기이다. 그가 절대 사용하지 않는 세 가지 말이 있다. “바쁘다, 죽겠다, 피곤하다” 가 그것이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는 최열 대표만큼 바쁜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는 것 같은데 절대 바쁘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바쁘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바쁜 사람은 절대 자신의 입으로 바쁘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바쁜지 바쁘지 않은지는 주변 사람이 보고 느끼고 판단할 문제이지 본인이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는 봅니다.” 죽겠다, 피곤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의미 없는 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은 죽겠다는 말을 쓰지만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확실히 독특한 생각이다.

그는 숫자에 무지 밝은 사람이다. 숫자로 모든 것을 얘기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아무 자료 없이 강의를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숫자가 등장한다.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물난리로 몇 명이 죽었고, 원자력 발전소 반경 몇 키로 안에 사람이 어떻게 되었고, 그 일 때문에 낙태한 사람이 몇 명이고…. 정말 신기했다. 아마 아버님이 경리 장교 출신이라 그런 것은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순발력



최열의 브랜드는 집중력과 실행력이다. 그는 늘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몰입한다. 실행을 하기 전 꼼꼼하게 따져 보고, 치밀하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일단 하겠다는 결심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에게 있어 생각과 실행은 동의어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최열 대표가 있으면 일이 성사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환경 운동이 이만큼 자리를 잡은 것도, 그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환경재단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모두 그의 실행력 덕분이다.

한 번은 많은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일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스탭들은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앉은 자리에서 백 명이 넘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했고, 단숨에 모든 이의 허락을 얻어냈다. 최열 대표의 실행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는 대단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수많은 독서, 해외출장,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것이리라. 회의 진행을 하거나, 무언가 막혔을 때 그가 보이는 순발력과 탁견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역시 저런 것이 있기 때문에 저런 자리에 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밖에서 이름을 떨치는 사람도 막상 안에서는 존경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열 대표는 다르다.

그는 내부 직원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보이지는 그는 정서적으로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있다. 환경재단의 운영 위원이라는 직함 때문에 가끔 만나는 나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사근사근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는 늘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잘 나가는 사람보다는 처지는 사람에 대해 배려를 하고, 되도록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는 가장 넓고 좋은 인맥을 갖고 있다. 아마 그가 마음 먹으면 만나지 못할 사람, 하지 못할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심을 갖고 의도적으로 인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심 없이 많은 사람을 도와 준다.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도와 준다”는 것은 그의 철학이다. 늘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이익이 생길까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댄다. 그의 수첩은 약속으로 빽빽하다. 그는 초단위로 움직인다.

그는 여러 방면에 안목이 높다. 콩을 좋아하는데 특히 쥐눈이 콩을 좋아한다. 땅콩도 좋아한다. 보기만 해도 수입콩인지, 어떻게 볶았는지 알아낼 정도이다. 또 잡기에도 능한 사람이다.

당구는 400이고, 젊은 시절 다방에서 DJ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통일이 될 때까지 모든 잡기를 끊기로 결심한다. 아마 통일이 되면 그의 잡기 실력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고향은 대구이고 4남 1녀의 장남이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으로는 어머니를 꼽을 수 있다. 수감 생활 중의 일이다. 당시 전향서를 쓰면 바로 석방이 되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럴 때 어머니가 그를 면회왔다. 당연히 전향서를 쓰라고 설득을 할 줄 알았는데 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거다.

“혹시 네가 전향서를 쓸咀?내가 왔다. 절대 쓰지 말아라” 는 것이 어머니의 주문이었다. 또 농촌 운동가 출신의 아내 허훈순도 그의 가장 충실한 조언자이자 파트너이다. 환경 운동을 하느라 몇 년 동안은 생활비를 주지 못해 전전긍긍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운동 때문에 걸려 오는 협박 전화에도 그녀는 의연했다. 환경 운동 하다 보면 테러를 당할 수 있으니 꼭 사람들과 함께 다니라며 잔소리까지 한다. 그런 내조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최열 대표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95년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하면서부터 환경상과 함께 부상으로 받은 7만5,000달러를 받았다. 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두고 아내와 의논 끝에 환경센터 건립 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그가 이 같은 뜻을 밝히자 장모께서도 환경 운동에 보태라고 금일봉을 주셨는데 이것이 환경센터 건립 기금의 종잣돈이 된다. 이외에도 기아자동차 사외 이사로 일하면서 받은 급여 등도 모두 재단을 위해 내 놓고 있다.

그는 환경에 대한 많은 꿈을 갖고 있다. 지금 운영하는 환경재단도 그런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곳은 직접 환경운동을 하기 보다는 기금을 모아 NGO를 돕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토대로 환경 전문가를 위한 학교를 만드는 꿈도 갖고 있다. 아무쪼록 그의 꿈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학 교수 kthan@assist.co.kr


입력시간 : 2004-11-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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