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사회개혁의 비전을 말하다독일 철학자 블로흐 주저 국내 최초 완역

[한국 초대석] 한신대 박설호 교수
이상적 사회개혁의 비전을 말하다
독일 철학자 블로흐 주저 <희망의 원리> 국내 최초 완역


뒤틀린 현대사에 웅크리고 있던 사실(史實)들이 실체적 사실(事實)로 살아나, 이 시대 특유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린 영화 ‘그 때 그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둘러 싸고 유족측과 문제를 빚더니, 광화문 현판은 박 대통령의 글씨라 해서 이의 존폐를 두고 한 차례 밀고 당기는 싸움이 예상된다. 급기야는 1월 25일, 자기 모멸의 위험을 안고 있는 좌편향의 사관을 바로 잡자며 교과서포럼(상임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이 공식 출범, 일부 보수 언론의 환영 속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갑론을박의 세태속에 박설호(50ㆍ한신대 독문과) 교수가 도를 닦듯 정진 끝에 내 놓은 10년만의 결실이 새삼스럽다. 내로라 하는 이론가들이 하듯, 시대의 성감대처럼 불거진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인 논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 논쟁과 거대 담론의 싸움에 치여 망각의 강에서 잠자고 있던 대학자의 육성을 우리 시대 한 가운데에 투척,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 그 간 국내에는 인문 철학과 사회 과학을 오가는 방대한 사유 체계 때문에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블로흐의 주저 ‘희망의 원리’가 국내 최초로 완역된 것이다(열린책들 펴냄).

"미래는 살만한 것" 희망 설파
이번에 모두 5권으로 번역된 이 책은 맑시즘과 기독교 사상이라는, 일견 잘 화합하지 못 할 것 같은 두 사상을 융화시켜 이상의 사회를 설파하고 있는 독특한 사상의 얼개가 묘파돼 있다. “현재의 한국이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다지만, 보다 나은 사회를 찾아 가는 과정이죠. 미래는 살 만한 것이라는 기대 정서로서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프로이트가 인간 내면의 심연에 숨겨진 욕망에 대해 말했다면, 블로흐는 ‘낮 꿈(Tag Traum)’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매장에 깔린 책은 자유와 질서가 궁극적으로 합일되는 이상적 사회 개혁의 독특한 비전을 제시, 독자층을 확보해 가고 있다.

공공연히 인문학의 “위기다, 죽음이다” 말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 책은 당시 신문에 의하면 출판 2개월만에 900여질이 팔리는 ‘사건’을 연출했고, 추천 도서에 오르기도 했다. 섬광처럼 번득이는 사유와 통찰의 예는 이렇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유교 등 모든 종교는 체제 유지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세상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제 5권 ‘죽음과 종교’). 이 같은 희구가 현실화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 사랑의 공산주의로서의 기독교, 즉 볼트만 등이 주창한 해방 신학이고 나아가 민중 신학이다.

똑 떨어지는 것 좋아 하는 디지털 세대를 위해 관련 숫자 몇 가지를 제시해 보자. 200자 원고지 기준 1만3,000여장, 총 5부 55장의 구성, B6 판형 양장본으로 전 5권, 총면수 3,060쪽. 일반 독자들에는 각권 584~696쪽, 전 5권 9만 원, 권당 1만8,000원이라는 수치로 다가온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는 중단과 우회 등 곡절 아닌 곡절을 겪어야 했다.

1991년 모 출판사에서 두 권으로 먼저 선보였던 책이다. 이번에 출판한 완역본에 비춰 보자면 4분의 1 분량이다. 각각 5,000여부가 팔리는 등 반응이 제법 왔지만 너무 방대한 분량이라, 그 출판사가 못 다 하겠다며 손사래 쳤던 것. 그러나 일단 활시위를 떠난 책. 독특한 내용에 매료된 학생들이 ‘후속편이 왜 안 나오느냐’며 이 메일로 닥달해 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이었던 1995년 독일에 들렀을 당시, 블로흐의 아들과 연결되면서 번역 출판을 위한 실제적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70대 할아버지인 아들은 판권을 따 내고 싶다는 그의 말에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는 책”이라며 출판사측과의 협의를 종용했다. 열린책들측과의 판권 관련 작업이 그래서 시작된 것. 1,500질을 펴내는 데 2억여원의 인세였다.

하여 1997년부터 하루에 어김없이 1쪽 꼴로, 지루한 번역 작업이 재개됐다. 원고지로 치면 6매 분량. “다시 번역 작업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 가족들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어요. 고생한 만큼 돈 버는 것도 아니고, 꼬박꼬박 고료 주는 논문도 아닌 터에 하지 말라는 거였겠죠.”그러나 블로흐라는 매력적 사상가에 흠뻑 빠진 그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모두 17종으로 나눠 진 블로흐 저작 목록을 보여 주면서, 그는 방대한 분량에 비춘다면 이번에 자신이 이룬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정이다. 너무나 어려워 영어판으로도 간행된 바 없다(‘유물론의 문제, 그 역사와 실체’등)거나, 영어판을 읽어 보았는데 번역이 형편없었다(‘희망의 원리’)는 등 촌평이 곁들여진 리스트였다. 국내에 제목조차 채 소개되지 못 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 동안 국내의 블로흐 연구는 말 꺼내기조차 민망스러울 수준이다. 국내 철학박사 500여명 중 전공자가 두 명 남짓.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나선 데다(그는 1944년 6월 16일 독일 패망을 눈앞에 두고 프랑스의 벌판에서 총살됐다고,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불우한 투사인 양 잘 못 알려지기도 했다.), 주류에 포섭되지 않는 독특한 학풍 등 독특한 삶의 궤적이 만만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법도 하다. 더군다나 이념의 과잉 상태에서 건곤일척의 결딴이라도 내자는 한국 특유의 이분법적 양상에서는 블로흐에게 허여된 공간이 인색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어느 곳에도 귀속하지 않는 블로흐의 특성은 사후 평가뿐만이 아니다. 유태인이라 히틀러를 피해 망명한 미국에서 그는 거의 실업자 신세였다. 유태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찾아 갔던 미국에서 본 것은 소비만능의 세상이었다. 거기서 거의 실업자로 지내면서 쓴 책이 바로 ‘희망의 원리’다. 소비 만능의 미국 문화에 대한 비판의 날을 번득였다. “바로 경계인이었죠.”

대학가에서 박 교수는 몇 안 되는 전담 번역자로 손꼽힌다. 1990년대 후반부터 블로흐 하면 박 교수로 굳어졌다. 마치 카뮈 하면 김화영, 하이데거 하면 이기상, 보드리야르 하면 배영달 등으로 등호가 매겨지듯, 블로흐 하면 박 교수인 것이다. 블로흐의 대작 한 편을 막 완역한 올해, 그는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쪽으로 시간을 바칠 작정이다. 소설가 최수철의 단편집 ‘모든 신포도 아래에는 여우가 있다’를 독역해 내년 중 독일에서 출판할 계획. 앞서 올해는 교양 입문서 ‘독일 현대시 읽기’를 펴낸다.

역사의 역류를 지켜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2학년때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그러나 공부에의 꿈을 버리지 못 했던 그는 재수를 거쳐 부산대 독문과 73학번이 됐다. 졸업후 고등학교 독어 교사로 3년을 보낸 그는 유학의 길을 택했다. 1981~89년의 유학 수업의 결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석사와 빌레펠트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따 왔다. 철학적 사유가 풍성히 흐르는 ‘희망의 원리’ 같은 책이 임자를 만났다고 할 것이다.

독일에서 통일의 격류를 체감하고 1989년 동독 문학 전공자로 귀국해 보니 한국의 상황도 만만찮았다. 부산독일문화원에서 잠시 근무하며 사회 변혁의 열기를 목도하고는 현재의 근무처로 온 뒤, 1990년대 후반부터 블로흐 전문 번역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금이 한국 통일을 위한 중차대한 고비로 보고, 거대 보수 언론과 독재의 잔당이 규합해 만든 세력과 이뤄낼 역학 구도를 그 요체로 보았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덕에 빛을 본 책이 ‘자발적 복종’(울력 펴냄)이다. 프랑스에서 변혁의 기운이 도처에서 솟아 오르던 16세기 급진적 사상가 보에티가 쓴 격문 같은 책이다. 자신이 이미 1970년대 말엽에 번역을 꿈꾸었던 책이다. 유신 말기는 물론 광주민주화 항쟁까지 예언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그 책이 하나의 어엿한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2004년이었다. 서문에서 그는 1970년대 말 부산의 남자 대학생들이 겪은 일 하나를 소개한다.

박정희 정권 타도 데모가 불길처럼 타오랐으나 부산 지역은 조용하던 시절, 타 지방 여학생의 명의로 부산 남자 대학생들에게 임의 송달됐던 편지다. 면도날이 그려져 있는, 암호 같은 편지. 얼마 가지 않아 그 편지의 속뜻이 밝혀졌다. ‘데모하지 않는 부산의 대학壎湧結? 차라리 (남근이나) 잘라 버려라’하는 속내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부마항쟁이 일어났다고 그는 서문에서 돌이켰다.

1999년의 ‘떠난 꿈, 남은 꿈’(한마당 펴냄)에서 그는 한국 사회를 이렇게 설파한다. ‘그 동안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는 유교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가부장적 금욕주의, 문화적으로는 씨족 이기주의 등이 창궐하게 되었다’라고. 부제가 ‘동독 문학 연구2’라고 달린 그 책에서 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하이네 뮐러 등 국내에서는 알 듯 말 듯 소개돼 온 동독 작가들을 뜨거운 어조로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국내에 만연해 있는 이상한 학문 풍토에 대한 가열찬 비판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인맥, 학맥 등을 따지는, 이른바 자화자찬식의 섹트주의 내지는 학문적 근친상간 행위야말로 문화 발전의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는 대학,언론기관, 출판사, 문예잡지사, 예술가협ㅎ쇠, 극단 등 가릴 것 없이 동문 씨족주의의 폐단을 떨쳐버린 곳을 찾기 드물다’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차적으로는 유교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식민주의적 독점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가부장적 금욕주의, 문화적으로는 씨족 이기주의 등이 창궐’하는 한국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적 문화 풍토를 악의적으로 폄훼한 소치라고 어느 누가 항변할 수 있겠는가. 험난했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격동의 현장에서 시대 정신을 읽은 독특한 이력이 그대로 문장이 된 것일까.

"원전의 창조적 오해가 번역"
번역은 반역이다(Traditio est trahitio). 번역이란 수공업의 운명을 두고 16세기 이탈리아의 자연철학자 존 밥티스타 포르타가 한 명언이다. 우연일까, 한국어와도 운이 절묘하게 맞다. 그 ‘반역 작업’에 도가 트였을 박 교수의 도움말을 청해 보자. “원전을 ‘창조적으로 오해’해서 옮기는 거죠. 마치 클래식 악보가 연습을 거쳐 다양하게 해석되듯.”자신의 홈 페이지를 운영중(www.raesung.co.kr).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2-01 15:25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