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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연극배우 박정자
무대에서 늘 다른 그 만의 빛나는 색깔
첫 아동극에서 심술쟁이 할멈으로 변신
조용한 '연극인 돕기'는 공연계의 귀감






박정자(63) 씨는 이번에 한 번 단단히 망가져 보기로 했다. 그것도 ‘와장창’ 소리를 내며. 그런데 그가 누군가. ‘카리스마의 여배우’란 수식어를 자기 전유물처럼 붙이고 다니는 사람 아닌가. ‘위기의 여자’에서 남편의 외도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모니크로 객석을 묶어 두던 그였다. 그래서 일까, 선뜻 다가서기 힘들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오도방정을 다 떠는 왈가닥 노파가 됐다. 이름도 ‘우당탕탕 할머니’다.

정동극장에서 하고 있는, 난생 처음의 아동극이다. 좁은 집에 살다 새 집으로 이사랍시고 와 보니 웬걸, 바로 아래층 할머니가 심술도 보통 심술이 아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큰 소리로 울거나 뛰어도 시끄럽다며 난리를 쳐 댄다. 하도 성화를 피워 대니 위층의 아이들은 살살 기어 다니다시피 한다. 그렇게 되자 심술쟁이 할머니가 못 살 지경이다. 갑자기 소리가 뚝 구친 2층의 일이 궁금해져서 미칠 지경이다.

천정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든 들어 보려 애쓰면 쓸수록 귀가 점점 커져 가는 병에 걸리고 만다. 진찰 결과 ‘못 들어서 생기는 병’이란다. 윗층 사람들이 떠들어 줘야만 나을 수 있는 병이라는 진단에 위층 식구와 할머니는 화해하고 좋은 이웃이 된다는, 지극히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파트가 많아진 요즘 도시에서 이웃 관계를 다룬 이 연극은 박씨의 망가짐 덕에 살아난다.

당연히 인터넷에 흔적이 남는다. 그것도 파일 용량 꽤나 잡아 먹을 사진들과 함께. “공연이 끝나고 잽싸게 올라 와 2등으로 줄을 섰죠, 헤헤…. 박정자 아줌마의 팬 사인회…” 등 어린이들이 남긴 글이 대부분이다. 할아버지 생신 파티를 하는 날에 맞춰 예약해 두고 상경했다는 지방파도 있다. 그 가운데는 “애들 셋만 들여 보내고 나왔죠”라며 아이들을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극장에 등을 대고 서 있는 아저씨의 모습과 함께 푸념도 보인다. 데이트 코스로 성가 높았던 덕수궁 돌담길이 요즘은 가족 소풍로처럼 돼 버렸다. 성화하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팬 서비스로 박씨는 사인회까지 펼친다. 때맞춰 바로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치는 야외 조각전까지 올망졸망 식구들이 함께 구경하니, 누가 뭐라 안 해도 ‘5월은 가정의 달’인 줄 알 수 있을 정도다.

진정한 가족극의 전형 만들기
중년 여성의 고뇌에 찬 모습만이 제격일 것 같았던 그가 아동극이란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 서울서 열렸던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대회 덕분이다. 당시 독일 참가팀이 공연했던 ‘놋쇠병정’이라는 작품이 촉발제였다. “어린이극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아이들끼리만 보는 연극이 아닌, 가족이 함께 즐기는 연극말이죠.” 이미 아동 소설 전문 출판사(비룡소)가 펴낸 아동 소설로 소개돼 있던 터라 연극으로 만든다니 많은 매스컴들이 어린이극으로 보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작품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뺏긴 이 시대, 진정한 가족극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어른들과 함께 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꿈꿨다 한다.

이후 그 나름의 조용한 늦깎이 실천이 따랐다. 한국 아동극의 대부로 인정 받는 김우옥 교수를 찾아 가 어린이 문화 예술학교 김숙희 대표를 소개 받았다. 김 대표는 옳다구나 싶었다. 눈 여겨 봐 둔 이 독일 아동 소설을 위기훈 작가에게 번역을 의뢰, 완전 우리 상황으로 고쳤다. 극단 물리의 대표 한태숙 씨가 각색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 외국 아동 소설이 그의 힘으로 완전 헤쳐 모여 한 것이다. 그 과정은 연극 만들기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며, 그 관계망을 엮어 내려는 사람의 노력에 좌우되는, 대단히 인간적인 작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기 족하다.



1994년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로 시작한 한 씨와의 인연을 계속 가져 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최대의 공신이다. 당시 그 작품은 한 씨에게 매우 의미가 컸다. 10년 여의 공백을 딛고 연극계로 돌아 올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주변의 말 하나하나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품을 계기로 토월극장에서 공연한 ‘에쿠우스’에서 박 씨는 최초의 여성 다이사트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덕분에 ‘에쿠우스’의 주제는 성을 넘어 인간 존재의 문제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우리 관객은 자연스레 인식하게 됐다. “상식을 넘어 서는 걸 좋아 하는 내 성격 때문”이라고 그는 나름의 답을 내렸다.

그런 그가 지난해 극장 정미소에서 펼쳤던 ‘19 그리고 80’을 가리켜 ‘나의 연극’이라고 하는 데는 뭔가 각별한 이유가 있다. 기획과 제작까지 처음으로 도맡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청년과 노파의 순수한 관계를 그려 이 시대 관객들에게 따스한 감동을 안겼던 이 작품을 두고 그는 “내가 이전에 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훌륭한 작품”이라며 “배우로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매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비로소 안착할 품을 발견했다는 어떤 안도감이 강하게 배어 나온다.

“재공연이 아니라 리메이크의 차원”이라고 그는 못 박았다. “지금은 장두이 – 한태숙과의 콤비지만 내년에는 강영걸이 연출을 맡을 계획이죠. 극장도 옮겨서 말이죠.” PMC의 ‘여배우 시리즈’ 출연작으로 결정돼 새로이 거듭날 것이란 이야기다. “한 번 본 관객이 계속 보러 오게끔 할 생각이에요.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기대감과 기쁨을 계속 선사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 가상 현실의 시대, 연극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정지돼 있지 않는 배우의 모습을 추구하죠. 맡을 역을 따지지 않아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항상 열려 있으니까요.” 역할이 자신의 이미지에 맞을 지, 또는 그 역이 팬 클럽 관리에 도움될 지, 광고 따 내는 데 이로울 지 등등을 다 따져 보는 요즘 젊은 스타들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박 씨는 자신의 선택을 두고 ‘배우만의 특권’이라 했다. ‘박정자는 무대에서 늘 다르다’라는 세평은 그 특권에 대한 일반적 긍정일 것이다. 이번 작품의 경우, 자신의 개인적 에피소드를 많이 들려 줘 극을 더 실감나게 하는 데 기여한 연출자 한 씨의 공도 빠질 수 없다.

가난한 연극인 돕는 복지재단 설립
그는 고래고래 고함 지르다 씩씩댄다. 그 심술 할멈 연기에 관객들은 박수 치고 좋아 한다. 그러나 객석이 한 가지 모르고 지나치는 점이 있다. 박 씨가 실은 2년째 목 디스크 때문에 치료 중이라는 사실이다. 아동극답게 과격한 움직임이 특히 많아, 극을 마치고 나오면 파김치가 된다고 말했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신들린 사람처럼 변하지만 내려 오면 사실 참 힘들어요.” 거기까지는 업보라고 치자. 그러나 결국 또 하나의 일을 더 벌이고 말았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설립 추진위원회 대표. 최근에 얻은 또 하나의 직함이라면 직함이다.

“작년 서울연극협회에서 급하게 보자더군요. 가난한 연극인들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단을 만드는데 나더러 나서달라는 거예요.” 연극계에서 적이 없는 사람이란 점을 눈 여겨 봐 온 때문인 듯 하다고 그는 말했다. 연극 일선의 젊은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화합을 일궈낼 수 있는 선배로 그가 지목된 것이다. “대표도 회장도 한 번 해 본 적 없는, 생리적으로 조직과 관계 먼 내가 여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중시한 것 같다”고 그는 짐작한다. 몇 발짝 넘겨 짚은 일부 언론은 그가 이사장으로 내정됐다고까지 보도했으나 그는 설립추진위원회의 대표일 뿐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고 병들어 수입이 끊기고 만 연극 배우가 어찌 남의 일이겠어요. 이들에게 연극인으로 살았던 시간에 대한 위로라도 해 주자는 거죠. 힘든 연극 현실에서 누군가 시작하지 않으면 연극인들은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그의 말이 무척 쓸쓸하게 들렸던 것은 아련하게 저려 오는 목의 통증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양심에 맡기자는 거죠. 연극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한 한국에서 더 이상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 같은 거예요.” 지난해 연극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연극인들이 공연을 통해 버는 수입은 월 평균 23만2,000원에 불과해 부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때문에 이번 움직임은 공제회 설립, 연극 수입 1% 기부 운동 등으로 최소 생계비만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해 복지재단에서 관리해 나가자는 仄沫?자구적인 것이다.버릇처럼 쓰이고 있는 ‘배고픈 연극인’이란 말의 타당성을 한 번 따져보자는 자리다.

그 배고픔이 물리적 아쉬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정신적 또는 존재론적 배고픔은 면했다 할 수 있다. 그는 국내 특정 연극인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개인 후원 단체를 갖고 있다. 현재 300여명의 골수팬들로 구성돼 있는 ‘꽃봉지회’가 그것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그 모임이 박정자 개인이 아니라 모든 연극 배우들에게 열린 몸짓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작년 12월 24일 동숭아트센터에서 꽃봉지회가 주최했던 제 9회 ‘올해의 배우상’ 시상식 장면을 보자. 김성녀 씨가 수상자로 선정돼 유인촌, 김금지, 권성덕, 윤석화, 백성희, 장민호 등 역대 수상자들의 뒤를 이었다. 그가 꽃봉지회를 문화 운동, 연극 운동의 최전선이라 하는 데는 조금의 과장도 없다.

5월 20일 오후 6시 문예회관 대극장 로비에서 치러질 복지재단 발족식. 객석이 아닌 현실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짙어 듣는 이를 흡인한다는 사실이 증명될 자리다. 그 날 극단 여행자의 ‘서풍’이 곧 이어 상연된다니, 연극인이 아니더라도 현장은 뜻 깊은 퍼포먼스로 다가올 터이다. 또 일부 성급한 언론이 명시했듯, 그 날 진짜 이사장으로 선출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더도 덜도 말고 배우다. 7월 22일부터 산울림소극장 개관 20주년으로 무대에 오르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 출연하느라 비좁은 분장실을 헤집고 다니는 그를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 2005-05-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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