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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석]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민족문화 밑거름 60년 출판 외길
7,000여 종의 책 출간, 광복 60년에 남다른 감회






광복 다음날이었다. 34세였던 정진숙(현 을유문화사 회장)은 다니던 동일은행(조흥은행의 전신)에 사표를 냈다. 새로운 세상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1944년에 ‘불량선인’으로 용산헌병대에 잡혀가 8개월 가량 수원형무소에서 고생한 적도 있어 이제는 바뀐 세상에서 바뀐 일이 그리웠다. 하지만 막상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당시 고려문화사에 근무했던 조풍연, 아동문학가 윤석중, 은행에서 일하던 민병도(전 한국은행 총재) 등은 출판을 하자고 했지만 선뜩 응하지 못했다. 출판업이 너무 영세한데다 전망 또한 밝아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집안 어른인 위당 정인보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대뜸 “지금 건준이다 임정이다 해서 난리인데 저건 가짜 애국이야.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 역사 문화 말 글 등을 다시 살려야 해. 출판사업을 하는 것도 건국사업이야”라고 말했다. ‘민족 문화의 밑거름’이라는 말을 듣고 최종 결심했다.

을유문화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로부터 60년간 한 우물만을 열심히 팠다. 민병도 등과 출범에 맞춰 결의를 했다. 무엇보다 원고를 엄선하여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가장 중히 여기자고 뜻을 모았다. 정 회장이 전무, 민병도가 사장, 윤석중이 주간, 조풍연이 편집국장을 각각 맡았다. 을유문화사 4인방은 이렇게 막강했다. 출판사 이름으로는 ‘독립’ ‘해방’ 등이 거론됐지만 영구히 남는 이름을 찾아 ‘을유’로 했다. 정 회장이 광복 60년을 맞아 감회가 더 깊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회사를 차린 후 석 달 만에 첫 책을 펴냈다. 1946년 2월 1일 발간된 이각경의 ‘가정 글씨 체첩’이었다. 26면짜리 소책자로, 옛날 우리의 좋은 문장을 골라 이각경의 궁체로 글 쓰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이각경은 유명한 한글서예가 이철경의 언니로 건국부녀동맹위원장을 지내다 월북했다.

우여곡절 겪은 '큰 사전'에 애착
지금까지 7,000여 종의 책을 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당연히 ‘큰 사전’이란다. 광복 후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일제 시대 조선어학회 사건 때 법정증거물로 압수당한 원고를 1945년 9월 서울역 운송회사의 창고에서 발견했다.

당시 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던 이극로가 “누구 하나 ‘큰 사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우리나라가 광복된 의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 원고를 가지고 일본 놈들한테 가서 사정해야 된다는 말인가”라며 흥분했다. 당시는 종이 사정이 어려워 신문도 마분지 비슷한 종이에 인쇄해야만 할 정도여서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랬더니 이극로가 ‘물불’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원고 뭉치를 던지는 등 크게 흥분했다. 그의 열정에 감동해 일단 한 권만이라도 내기로 했다. 장안의 모조지를 거의 긁어 모았다. 그렇지만 부족했다. 결국 문교부 고문으로 와 있던 미국인 앤더슨에게 부탁했다. 하버드대 언어학 박사인 그는 한글 체계를 보더니 놀라며 록펠러재단에 연결해줬다. 록펠러 재단은 4만5,000달러 어치의 종이를 보내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한글학회로 이어져 10년 만인 1957년 6권으로 완간했다.

애정이 가는 책은 하나가 더 있다. ‘한국사’다. 통사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진단학회와 손 잡고 책을 만들기로 했다. 1954년 시작해 10년이 넘어 1965년에 끝냈다.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분량이 당초 계획한 것보다 2권 많은 7권이 되어서도 그랬지만 집필자들의 원고가 늦었기 때문이다. 하나씩 연구해가면서 발G杉?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지만 보람 또한 컸다.

중년층 이상이 많이 기억하는 을유문고를 보면 정회장의 출판 철학을 잘 알 수 있다. 1969년 3월에 쓴 이 문고 간행의 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8ㆍ15를 맞이한 우리 겨레의 앞에는 오랜 압제의 쇠사슬을 끊고 슬기로운 민족문화의 수립이라는 중대?사명이 놓이게 되었다.

이 사명의 일익을 감히 어깨에 짊어지고 해방과 더불어 탄생한 을유문화사는 1947년 창립 두 돌을 맞아 문고 발간에 착수, 만 천하 독자들의 성원 아래 30여종의 출간을 보던 중 불의의 6ㆍ25동란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원래 을유문고는 자체의 보편적 성격만이 아니라 민족문화 수립의 당면한 특수 사명에 비추어 학문과 예술의 편협한 특권화를 물리치고 광범한 국민 대중의 계몽과 그 지적 향상의 요청에 응함을 주요 목표로 삼았었다.>

정회장은 1959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4개월간 미국과 유럽을 돌아본 적이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는 그곳 사람들을 보고 ‘이래서 선진국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큰 책은 가지고 다니기 어려워 문고판 소책자를 발행하겠다고 결심했다. 독서를 장려하려면 문고판이 많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을유문고 이야기를 꺼내자 이내 씁쓸해 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을유문화사는 1970년대까지 지식인들의 일종의 사랑방이었다. 특히 이상백 전 서울대 교수는 강의 후에 거의 들렀다. 을유문고 간행사도 이 전 교수가 썼다.

을유문화사는 1980년대 이후 활약이 예전보다 못하다. 정 회장도 이 부분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대한출판협회 회장을 14년 동안 지냈고, 한국출판금고를 만들어 30년 동안 이사장을 지내면서 출판사 일을 좀 등한시 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말이다.

그래도 다른 출판사들이 잘 안 내는 책들을 꾸준히 펴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교보문고 설립과도 인연이 깊다. 친했던 신용호 전 교보생명 회장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빌딩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서점을 만들어라”고 거의 3년 동안 부탁했다. 자신의 회사 일을 옆으로 밀어놓은 결과 한국은 지금과 같은 대형 서점을 서울 시내 한 복판에 갖게 된 것이다.

출판계의 다이아몬드 같은 인물
그의 호는 ‘은석’(隱石)이다. 두계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가 지어줬다. 하는 일 자체가 은인자중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숨은 돌이 아니냐”며 그는 웃었다. 파주출판문화단지에 가면 그의 호를 딴 은석교라는 다리가 있고, 출판계에서는 ‘을유 창사 화갑 기념 준비위원회’가 있으니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맞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이번에도 또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골동품’이어서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정 회장은 94세라는 나이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건강하다. 귀가 약간 어두울 뿐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특히 기억력은 비상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과거의 일을 6하 원칙에 따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와 인터뷰하면서 받아 적기에 바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90세가 넘어 위암 수술을 했다. 의사들이 놀랠 정도였다. 지금도 반주로 맥주 한 병 정도는 마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앉은 자리에서 양주 2병 가량은 거뜬했다. 지금도 안경을 끼지 않는다. 을유가 발간하는 책의 서문 정도는 거의 읽는다. 서문을 보면 책의 내용을 거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책은 아무 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

그는 현재 업무에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손자인 정상준 상무가 일을 챙긴다. 큰 아들도 미국에서 출판업을 하고 있으니 3대에 걸쳐 문화 사업을 하는 셈이다. 그에게 좌우명에 대해 물었다. 성실과 근면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리고 기다려가면서 서서히 일을 하는 것과 자기 노력으로 개척해야지 부모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덧붙였다.

후배 출판인들에게 출판은 돈이 많이 안 들어 출판사 사장만큼 쉽게 되는 것은 없다고 따끔한 충고를 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낸 책을 베껴내는 일은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출판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유에는 이런 출판인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책임도 상당하다고 비판한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식용으로 책을 사고 있다고 했다. 싸고 좋은 책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그는 지적했다.

정 회장은 출판계의 원로이자 산 증인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한 기업이, 그것도 출판사가 60년을 굳건히 버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해냈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쉬운 것이 너무 많고, 출판하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국민 기업’이라는 말을 너무 쓰는데, 민족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구석에서 묵묵히 한 길만 가는 이런 출판사가 규모는 작지만 바로 국민 기업이 아닐까. 을유문화사와 같은 출판사가 더 많이 나와 좋은 책이 지금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발간되어야 세계 10위 경제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된다. 정 회장과 인터뷰하면서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화두였다.

그는 최근 ‘부생육기’(浮生六記)라는 책을 다시 펴냈다. ‘흐르는 인생의 찬가’라는 부제로 1960년대 말 을유문고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백은 ‘春夜宴 桃李園序’라는 시에서 <덧없는 인생은 꿈만 같아/즐거움을 얼마나 누리리(浮生若夢/爲歡幾何)>라고 했다. 그런 책을 다시 낸 것은 이제 인생을 달관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  


입력시간 : 2005-06-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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