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회 연구에 44년을 바친 관록의 전문가… '재외동포 대통령' 자임인구대비 규모·지역 분포서 중국·일본에 앞서유대인·화교처럼 고국발전에 유용한 네트워크… 한인 정체성 확립 위해 언어·역사교육 시급

사진/ 임재범 기자
재외동포 인구 700만 명 시대다. 현재 180개 국에 걸쳐 700만 명을 헤아린다. 남북한 7,000만 인구의 10분의 1로 규모나 분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재외동포는 60년대 빈곤의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모국의 민주화를 앞당겼으며 오늘날 글로벌시대에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10ㆍ4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제8항)에서는 남북 정부가 재외동포 권익 향상에 협력하기로 해 북한동포를 포함한 재외동포 대한 이해에 새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재외동포에 대한 관심과 비중이 높아지면서 ‘700만 재외동포 대통령’을 자처하는 이구홍(65)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주목 받고 있다. 그는 대학졸업 후 지금까지 44년 동안 재외동포 문제에만 전념, 고난의 길을 걸어온 재외동포 전문가다.

이구홍 이사장이 재외동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3년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64년 무렵이다.

“그때 청구권 3억 달러로 평화선 죽이면 다 죽는다고 야단이었지만 재일동포의 법적인 지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60만 재일동포의 지위만 향상된다면 청구권으로 받는 3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봤어요.”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중국과 전세계 화교를 봤을 때 재일동포의 지위 향상이 시급하고 보다 조직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구홍 이사장은 대학졸업 후 64년 5월 해외교포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우선 재일교포들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관련 책을 구하고 공항에서 재일교포를 만나 구술을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발품으로 자료수집을 했다. 돈이 없어 사무실 이전만 30여 차례 할 정도로 고행이었지만 그를 버티게 한 힘은 재일교포를 묶으면 국력이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1966년 재일교포의 한국투자가 시작돼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2년 만에 수출 5,000만 달러, 그 이듬해 1억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재일교포들은 자본만 가져온 게 아니라 기술과 함께 시장원리를 가져왔지요. 경제력에서 북한에 앞설 수 있다는 남한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1972년 7ㆍ4 공동성명을 나오게 한 겁니다.”

이구홍 이사장은 65년 화교의 움직임을 보고 재외동포의 중요성을 더욱 확신했다고 한다. 61년 중국의 핵실험 이후 대만 지지 성향의 화교들이 중국을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거대한 화교 자금을 바탕으로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봤다는 것.

“제가 14년 전 쓴 ‘해외동포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샌드위치 상황을 이미 지적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고 중국은 곧 초일류 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죠. 그러면 한국은 무엇을 할 것이냐 했는데 그 해답은 바로 700만 재외동포입니다. 그들을 민족자산화해 끌어들이는 거죠.”

이구홍 이사장은 43년간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난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외동포에 대한 그만의 축적된 경험과 이해를 실무적으로 풀어가게 된 셈이다. “재외동포 700만 명은 인구수에서 세계적 수준이고 인구대비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더구나 유대인이 미국과 유럽에 치중해 있고 화교는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는데 반해 재외동포는 80%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을 비롯한 전 세계에 분포해 있어요. 커다란 민족자산입니다. 일본의 경우 농촌형 이민이지만 한국은 도시형이어서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유리하죠.”

이구홍 이사장은 스스로를 ‘700만 재외동포 대통령’으로 자처한다. 그만큼 700만 재외동포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의 위상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그가 10월 말 국내외 동포 경제인들의 비즈니스 장인 제6차‘세계한상(韓商)대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내외동포는 하나다”고 소리쳐 외친 것이나 올해 첫 ‘세계 한인의 날’ 기념행사(10월)를 개최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이구홍 이사장은 일찍이 헌법에 재외국민보호조항을 신설,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를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헌법개정 때 재외국민 보호조항을 넣자는데 동의하는 국회의원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 헌법에도 재외동포를 보호하는 조항이 4개 있고, 북한 헌법에도 그런 조항이 2개나 있다고 의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북한 헌법에도 재외동포 보호조항이 있다고 했더니 당시 정권에서 좀 관심을 좀 갖더군요.”

그는 재외동포의 참정권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주로 재미교포들이 주축이 되어 요구하고 있는데 교포사회와 모국과의 끈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참정권이 필요합니다. 반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차이 문제, 거주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본국과의 권리 충돌, 그리고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단과 조총련 간의 입장 차이 등 시간을 두고 연구 검토해 결론을 내야 한다고 봐요.”

이구홍 이사장은 10ㆍ4 남북정상회담 선언문 제8항 ‘남과 북이 해외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한다’고 한 대목에 대해 묻자 재일교포 전문가다운 견해를 나타냈다.

“북한동포도 재외동포로 볼 수 있는 만큼 민족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보다는 일본 내 민단과 조총련의 발전된 화합이 더 시급하다고 봐요. 조총련이 위기에 처한 것은 재일교포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이념대결을 하던 시대는 지났어요. 같은 민족으로 서로 도와야죠. 얼마 전 한국 정부와 민간이 일제시대 강제징용 한인촌인 교토 우토르마을을 철거 위기에서 구한 것은 좋은 예라고 봅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공동으로 관심 가질 만한 사안이나 프로젝트가 있느냐고 묻자 “나름대로 준비하는 게 있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사라지는 조총련 학교를 지원해 민족학교로 거듭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재외동포재단은 외교통상부 산하 기관으로 있다. 그러다 보니 간섭을 받고 가끔씩 불협화음도 들린다.

“교민정책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서는 안됩니다. 외교부가 머리로 정책을 입안한다면 우리는 가슴으로 다가갑니다. 역할분담이 필요한 거죠. 또 재중동포와 재러동포에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처럼 정책이 형평에 어긋나서도 안됩니다. 재외동포 분야는 재단에 운영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구홍 이사장은 현재 재외동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언어와 역사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재외동포들이 모국에 애정을 갖게 하려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재외동포를 위한 언어와 역사교육에 인색하지 말아야죠. 세계 한인의 날 지정은 작은 시작입니다. 전세계 700만 재외동포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은 지금부터 한 차원 높게 문화적으로 전개돼야 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