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군, 에콰도르 국경 넘어 반군 소탕작전베네수엘라 등 좌파정권들 "미국 앞잡이의 주권침해" 강력 반발국경지대엔 전운 감돌아… 실제 전쟁 발발은 현실적으로 힘들 듯

남미에 난데없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콜롬비아군이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 반군 소탕작전을 벌이자 당사국인 에콰도르는 물론, 베네수엘라까지 나서 콜롬비아의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며 국경지대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초강수로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콜롬비아의 좌익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에콰도르 좌파정부 사이의 인질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1일 콜롬비아 정부군이 에콰도르 국경내 위치한 FARC 기지를 폭격해 FARC의 2인자인 라울 레예스(59) 대변인을 비롯, 반군 17명을 살해했다. 레예스는 FARC의 최고지도자인 마누엘 마룰란다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로, FARC가 콜롬비아의 우익 정부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여온 40여년 동안 최고위급 지도자가 정부군에 살해된 것은 처음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반군의 공격을 받아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넘은 것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으나, 에콰도르 정부는 콜롬비아의 월경 폭격에 “침략자가 사과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의 방식으로 지켜나갈 수 밖에 없다”는 강한 톤으로 무력대응을 시사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특히 사망한 반군들이 잠옷 차림인 점으로 미뤄 “전투 중이었다”고 주장하는 콜롬비아 정부의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더욱 확산된 것은 호시탐탐 남미의 패권을 노리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사건 즉시 에콰도르의 편을 들어 개입하면서. ‘남미의 반미 수호신’을 자처하는 차베스 대통령은 그렇잖아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콜롬비아 정부를 ‘미국의 괴뢰정권’으로 비하하며 콜롬비아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왔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에콰도르와 강력한 군사동맹을 맺은 것을 명분으로 군병력까지 이동시킨 것은 이번 사태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또 차베스 대통령이 주도해 FARC가 억류하고 있는 인질에 대한 석방 중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콜롬비아 정부군이 공격을 감행한 것은 차베스 대통령의 중재력에 타격을 입히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게 베네수엘라 정부의 생각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을 “깡패두목” “거짓말쟁이” 등 원색적인 단어를 동원해 비난하며 10개 대대 병력을 콜롬비아 국경지대에 배치하는 한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관을 폐쇄하고 외교관 전원의 철수를 명령했다. 에콰도르 정부도 콜롬비아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콜롬비아 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베 대통령은 “입수한 반군 컴퓨터에서 FARC가 ‘더러운 폭탄’을 만들기 위해 50kg 상당의 우라늄 구입협상을 진행중이었고, 차베스 대통령이 FARC에 3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의 편지 3통을 입수했다”고 역공을 가했다.

콜롬비아의 ‘더러운 폭탄’ 주장은 좌익반군과의 싸움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포장해 미국의 지원을 옹호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베 대통령은 테러단체로 규정돼 있는 FARC에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차베스 대통령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3국의 무력대응 불사 파장은 남미 전 대륙으로 확산됐다.

브라질 정부가 사태해결을 위한 미주기구(OAS) 공동조사를 제안했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도 콜롬비아에 ‘신뢰할 만한 해명’을 요구하며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역내 정치적 교류가 빈약하고 이념 대립이 첨예했던 남미대륙의 불안한 정치구도를 반영하듯 이번 사태는 역내 좌파정부의 ‘콜롬비아 죽이기’의 구실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에 이어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니카라과와 아르헨티나 등이 ‘주권침해’라며 콜롬비아 정부의 사과를 요구, 이번 사태를 단순히 테러집단을 응징하는 수준 이상의 정치적 의미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미국은 노골적으로 콜롬비아를 두둔하며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가 필요 이상으로 사건을 부풀려 남미의 안정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리베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게릴라 토벌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준데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3국간 무력도발 움직임이 실제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대세이다.

피차 전쟁이 몰고 올 경제적 타격이 엄청난데다 군사력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대칭’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연 교역규모는 50억달러 수준. 우유나 육류난이 심각한 베네수엘라는 적잖은 양의 식량을 콜롬비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콜롬비아 역시 베네수엘라에서 오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끊긴다면 산업 전반이 엄청난 타격이다.

군사력에서는 콜롬비아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콜롬비아 국방예산은 28억 7,000만달러로 베네수엘라과 에콰도르 양국을 모두 합한 것과 비슷하다. 정규군 규모에서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도 월등하다.

무엇보다 미국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든든한 점이다. 콜롬비아는 지난 7년간 미국으로부터 41억 5,000만달러에 달하는 무기ㆍ재정 지원을 받아왔다.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로서는 콜롬비아와의 전쟁은 사실상 ‘미국 제국주의’와의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콜롬비아를 상대로 한 선제공격은 사실상 ‘선동의 도구’로서만 가능할 뿐이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은 사실상 종신집권 야욕을 담은 개헌안이 지난해 12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정치적 타격을 입은 상태인데다 경제마저 좋지 않아 전쟁을 벌이기에는 기반이 너무 취약한 상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미 공동안보기구를 창설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지역 내 분쟁을 조정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남미안보협의회’ 구성을 공식 제안하자 브라질과 앙숙관계이던 아르헨티나까지 적극 찬성으로 돌아섰다.

남미에는 OAS라는 안보협력기구가 존재하지만, 이 기구는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좌파가 대거 포진해 있는 남미대륙의 안보협력체로는 한계를 보여왔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상반기 내 주변국들과의 협의를 끝내고 10월 중 안보협의체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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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