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남북관계 방향 전환 의지… '협상파 전진 배치'로 활로 뚫는다

현 정부 역사적 평가
지지도 회복 등 겨냥
적극적 행보 나설 듯

北서도 南 지원 필요
남북관계 가속도 예상

개성공단 공사 재개
홍준표 방북 등이 징표

다양한 루트 접촉
진행 중일 가능성
이재오 역할도 주목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 ‘멘토’, ‘MB 이데올로그(이론적 지도자)’ 등으로 불려온 류우익(62) 통일부 장관이 그러한 ‘수식어’를 확인시키듯 다시 이 대통령 곁으로 왔다. 지난 4월 주중 대사에서 물러난 뒤 5개월 만에 통일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이명박 정부 임기말을 함께하게 됐다.

2년전 류 장관이 주중 대사라는 막중한 자리에 부임한 데는 이 대통령의‘신임’이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류 장관의 복귀는 측근 인사의 중용을 넘어 많은 함의를 지닌다. 이 대통령이 임기 1년여를 남기고 류 장관을 불러들인 것은 기존의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기존 강경파들 퇴진

우선 외형적으로 류 장관은 기존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강경파’인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과는 결이 다른 ‘협상파’의 전진 배치를 뜻한다.

류 장관 복귀 시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께 중앙아시아 3국을 순방한 후 1주일 뒤인 30일 류우익 전 주중 대사를 통일부 장관에 내정했다. 중앙아시아 순방 때 이 대통령 측과 당시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정일 위원장 일행과의 접촉이 있던 것으로 알려진 터라 ‘류우익 카드’는 남북관계 전환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9월 30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집권당 대표로는 최초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것은 류 장관의 향후 역할을 가늠케 하는 시그널이나 다름없다.

류 장관의 임명과 그 과정은 마치 2년 전 주중 대사로 부임할 때와 흡사하다. 당시 류 장관은 지리학자 출신으로 외교, 특히 남북관계에는 전문성이 떨어져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이대통령 신임 결정적

그럼에도 류 장관이 주중 대사라는 막중한 자리에 부임한 데는 이 대통령의 ‘신임’이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류 장관이 주중 대사로 가게 된 것은 북한 측의 요구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와 베이징 북한 소식통의 공통된 견해다.

뒤늦게 북한측에 의해 폭로된 것이지만,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당시 노동환경부장관)과 김양건 북한통일전선부장의 비밀회동이 이뤄졌다. 알려진 것은 당연히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물밑에서는 MB 정부가 남북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활용, 북측과 접촉했을 게 틀림없다. 북한 역시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위해 2010년을 기초작업의 해로 삼고 한국 정부와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첫 단추가 대놓고 협상이 가능한 파트너 모색이다.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한국 측에 “(남한 정부가)북남관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분신’이라 할만한 사람을 주중 대사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남북관계를 새롭게 열어가는 교섭 창구를 ‘주중 대사’로 할 터이니, 남측도 믿을 수 있고 힘있는, MB의 측근 ‘실세’를 보내달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요구대로라면 류 장관은 MB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최적의’ 카드 중 하나였다. 류 장관이 주중 대사로 부임한 후 남북관계는 순조로운 접촉을 보였다는 게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이다.

하지만 베이징발(發) 남북 훈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내 대북 강경파와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부가 북한핵을 문제삼고, 천안함사건에 대한 사과를 거듭 요구하면서 북한이 남북접촉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는 것.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을 비외교적으로 공개하는 등 양측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등을 돌린 채 서로 삿대질을 하던 남북관계는 올해 중반을 넘으면서 해빙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적으로 권력변화(미국과 러시아 대통령 선거 등)의 시작이 될 2012년을 향해 달려가면서 남북 모두 변화의 모멘텀이 필요한 터였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원년을 향한 성과가 시급했고, MB정부도 1년 남짓 남은 임기 중에 무언가 획기적인 성과와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했다.

8월에 비밀접촉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특사단을 미국에 보내고,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 국내외 상황을 점검한 뒤 2012년 강성대국 원년 진입에 남한의 지원이 매우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북한핵 문제(핵보유국 인정)는 끝까지 미국과 게임을 하겠지만.

MB정부로서도 북한과 경협및 교류 차원를 넘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지지도 회복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남북한은 러시아를 매개로 지난 8월 비밀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MB정부는 류우익 장관을 앞세워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전했고, 북한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방북 초청으로 화답했다고 봐야 한다.

나아가 류 장관이 역설한 ‘대북정책 유연성’이 현실로 나타나 남북관계에 가속도가 예상됐다. 류 장관 취임식 당일인 9월 19일,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를 비롯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소속 7대 종단 관계자 24명의 방북을 승인해 대북제재인 5‧·24 조치의 빗장이 풀릴 것이란 해석을 낫게 했다.

또한 류 장관은 지난달 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1년5개월 동안 중단된 개성공단 내 공장 신축공사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혀 남북관계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통일부 TF팀 운영

더욱이 류 장관은 취임 초부터 정상회담까지 염두에 두고, 통일부 내에 ‘TF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TF팀은 북한과의 연결 통로를 마련하고 남북경협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조직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구성원은 청와대에서 차출된 인사들과 각계 전문가들, 현대아산처럼 실무적 경험이 있는 자, 식자재 전문업체 등 다양하게 구성됐다는 후문이다.

특이한 점은 통일부 직원들이 소외될 정도로 빠져 있다고 하는데, 이는 전(前) 정권 사람들과 현인택 전 장관 시절의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 최근 결성된 한나라당 ‘남북경협활성화특위’(위원장 이재오)와 통일부(TF팀)와의 관계와 역할 분담이 주목된다. 이들 주변에서는 이재오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양쪽을 관장하고, 대외적으로는 통일부가 발표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고 보면 향후 남북관계는 이명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두 명의 ‘왕의 남자’가 당과 통일부에서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는 모양새를 띨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공식적으로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부와 각 기관의 역할은 축소되거나 빠지고 ‘비공식집단’의 은밀한 활동이 주도적일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종교단체를 비롯한 민간단체들이 남북경협특위나 통일부 TF팀의 일원으로 남북관계의 전위대처럼 나서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K목사 등 일부 기독교단체의 대북지원 형태는 자칫 ‘원칙있는’ 남북관계가 또 다른 ‘퍼주기식’ 으로 변질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는 ‘변수’가 많고 폭발력 있는 위험성도 상당하다. 상황이 돌변해 남북관계는 물론, 남남 갈등까지 촉발할 수 있는 여지는 언제든 있다. 이를 조율하는 최고의 컨트롤타워는 통일부다.

내년 큰 변화 예고

류 장관은 주중 대사 시절인 2010년 2월, 유엔 특사와 북한의 접촉을 눈치 챈 중국이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김정일 위원장이 머물던 함흥까지 급파해 북미 접촉을 차단한 것을 지켜만 봤다. 류 장관이 국제적 흐름과 북한에 대한 이해만 있었어도 북중 접촉 전에 남북, 북미 간 접촉을 먼저 시도했을 것이다.

류 장관에겐 이 대통령의 ‘신임’이라는 큰 버팀목이 있는 만큼, 더욱 전문성을 갖춰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변화에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남북한 모두에게 모멘텀이 될 수 있는 2012년은 불과 한 달 남짓 남았다.

●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90년대 중반 '대운하 조언' 계기 MB와 인연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본래 지리학자다. 류 장관은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키일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비서양인 최초로 세계지리연합회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전공은 국토론, 사회지리학, 지역정책 등으로 1990년대 중반, 경부 대운하 건설을 구상하며 서울시장에 뜻이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류 장관을 찾아가면서 인연을 맺게 됐고 15년간 이 대통령의 조언자, 멘토 역할을 했다.

류 장관은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수도이전 반대 국민연합’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2006년 가을부턴 이 대통령이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원’이 개편된 ‘국제정책연구원(GSI)’의 원장직을 맡았다

대선 때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해 ‘물길이 통하면 인심도 통한다’는 메시지를 창안하는 등 좌표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으며 경선 후보 수락연설,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문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류 장관은 이명박정부 초대 대통령실장을 역임했으며, 촛불시위 여파로 취임 4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가 1년 5개월 만에 주중대사로 화려하게 부활, 여전히 이 대통령의 '복심'임을 재확인했다. 류 장관은 이번에도 일각의 반대에도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이 대통령 임기의 시작과 끝을 같이하게 됐다.

약력

△62세

△경북 상주

△경북 상주고

△서울대 지리학과·독일 키일대학 박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교수(1980)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1989~1994)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1994~1998)

△서울대 교무처장(2000~2002)

△세계지리학연합회(IGU) 부회장(2004~2006)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2006~2008)

△세계지리학연합회 사무총장(2007)

△청와대 대통령실장(2008~2008.6)

△주중국대사관 대사(2009.12~2011.4)

△통일부 장관(2011.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