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시끄러웠던 하이마트의 경영권 분쟁이 극적 타결됐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20분 남겨놓고 ‘각자대표’ 체제에 전격 합의했다. 그간 하이마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유 회장의 경영 참여에 반대, 임시 주주총회에서 유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부결을 추진해왔다. 반면 유진그룹은 같은 날 저녁 열리는 이사회에서 선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대표이사 개임(改任)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었다. 임시 주주총회 표결로 결정할 경우 어느 쪽의 승리이건 양측 모두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던 까닭에 직전 합의에 이르렀지만 각자대표제라는 결론 또한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해 향후 재발 가능성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주일간 깊게 팬 갈등의 골

하이마트 경영권 분쟁은 지난 10월 유 회장이 하이마트 공동대표로 선임되면서 시작됐다. 공동대표 선임에 대해 “최대주주로서의 책임경영에 앞장서기 위함”이라고 밝힌 유 회장은 하이마트의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 6.9%를 콜옵션으로 인수하려 했다. 이에 선 회장은 22일 회사 임직원들에게 “유진그룹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보유지분 처분과 거취문제까지도 심각히 고려 중”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선 회장의 이메일 발송을 확인한 유진그룹은 임시이사회 안건을 대표이사 선임에서 대표이사 개임으로 변경하며 사실상 선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선 회장은 임직원들을 동원하여 하이마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궐기대회를 열고 350여명의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유진기업에 맞섰고 이후 양측은 언론을 통해 진실공방을 벌여왔다.

갈등의 하이라이트는 임시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 대치동 본사에서 열린 하이마트 비대위의 기자간담회였다. 이날 하이마트 비대위는 “인수자는 7년간 어떤 직원도 해고하지 않기로 한다”라는 내용의 계약서를 공개하며 “약속했던 대로 선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해라”고 주장했고 유진기업 또한 반박성명을 내며 분쟁이 격화됐다.

극적인 대타협,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9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관계자들은 “이미 갈 데까지 간 진흙탕 싸움”이라며 “누가 이기던 임시주주총회의 표결로 결판이 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유진기업-하이마트 비대위 양측은 30일 임시 주주총회 직전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전문가들은 이날의 합의에 대해 명분(하이마트 비대위)과 실리(유진기업)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석한다. 하이마트 비대위는 명분이 부족하다. 주주자본주의에서 최대 주주가 인정하지 않는 경영권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그동안 선 회장의 친딸이 2대주주(37.5%)로 있는 광고회사에 물량을 몰아줬던 사실이 드러난 터라 성적표만 들이대기는 어려운 상태다. 29일 공개한 계약서 또한 ‘고용보장’만 명시돼 있을 뿐이라 선 회장의 경영권 보장 근거로 내세우기는 어렵다. 이에 반해 유진기업은 승리 이후에 빼앗길 실리가 부담스러웠다. 하이마트 창업주인 선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었고 그에 따른 성과도 좋았다. 또한 하이마트의 임직원은 유진기업에 맞서 사직서를 제출할 정도로 선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유진기업으로서는 운영 노하우가 중요한 유통업에서 이들이 없는 하이마트의 경영권을 독점해봤자 별다른 이득을 얻을 수 없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서로 명분과 실리의 공백을 가지고 있는 유진기업-하이마트 비대위에게 H&Q사모펀드를 필두로 만들어진 특수목적회사(SPC) ‘HI컨소시엄’은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역할을 했다. 가뜩이나 임시 주주총회의 결과가 부담스러웠을 양측은 8.9%의 지분을 보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HI컨소시엄이 내민 손을 뿌리칠 수 없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미봉책에 불과한 각자대표제, 양 측은 동상이몽 중?

우여곡절 끝에 타결된 협상이지만 각자대표 체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상당수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결정이 두 회장 모두 경영권 장악과 유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해석될 수 있는 까닭이다.

각자대표 체제란 주식회사에서 복수의 대표이사를 선정, 각각의 대표이사가 단독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합의를 거쳐야만 하는 공동대표 체제와 비교해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한 명의 대표이사가 다른 대표이사의 이사와는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으며 특히 그가 회사 경영 전반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라면 회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다시 말해 서로를 신뢰하고 각자 전문성을 지닌 부분에서만 업무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 회장에게 여전히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는지의 여부다. 지난 일주일간 하이마트 경영권을 둘러싼 두 회장의 힘겨루기는 일종의 비방전 양상을 보였다.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결로 승부가 날 것이라 예상한 양측이 언론을 통해 상대방을 비방하면서 기관투자가 및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져나갔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임시 주주총회의 표결을 통한 선 회장과 임직원의 사퇴 및 영업중단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피했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는 셈이다.

30일 저녁 열린 이사회에서 유 회장은 재무부문 전반을, 선 회장은 영업 및 기타 업무를 각각 맡기로 최종 확정했다. 사실상 그간 해왔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자세한 역할 분담, 기간, 의견대립 시 해결방안 등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금까지보다 더 큰 갈등이 수면 아래로 전개될 것”이라 보고 있다. 유 회장은 최대주주로 임시 주주총회 표결에서 압도적 우위가 예상됨에도 향후 잃어버릴 실리 때문에 결국 무기력하게 각자대표 체제를 결정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동안 사실상 경영을 주도해왔던 선 회장은 단독 경영권 보장에 대한 명분을 잃게 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던 까닭이다.

겉으로 보이는 원만한 평화가 언제 다시 깨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이마트가 이전처럼 거센 날갯짓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