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도청 전담 미림팀 실체 폭로 김기삼씨미국 법원 승인받기 위해 8년 동안 외로운 소송… 한달 전 '허용 최종판결'"나에 대한 정치적 탄압 우려한 미국 법원의 판단"

김영삼 김대중 정권 비리 폭로 후 미국으로 피신한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 미국 법원은 최근 한국 정치 상황을 고려해 그의 망명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
국정원 도청 전담팀인 ‘미림팀’의 실체를 폭로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던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가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 김씨는 미국 검찰과 8년 동안 지루한 소송 끝에 최근 미국 이민법원으로부터 힘겹게 ‘망명 승인’을 받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주간한국이 지난 20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이민법원은 지난해 말 김씨에 대한 2심 망명 재판에서 김씨의 망명을 최종 승인했다.

김씨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가 주요 인사들을 상시 도청하고, 김대중 정부가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특히 김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로비 의혹을 제기한 뒤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미국으로 피신, 체류해오다 지난 2003년 12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미 필라델피아 이민법원은 2008년 4월 15일 김씨에 대해 정치적 망명을 허용했으나 미국 검찰이 항소하는 바람에 최종 망명 승인은 2심 법원으로 넘어갔다. 망명 재판은 무려 5년만에 1심 판결이 나왔고, 2심 판결도 2년 6개월 이상 걸렸다.

외로운 내부고발자

미 이민법원은 김씨가 귀국할 경우, 정치적 탄압으로 간주되는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을 우려해 망명을 허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씨는 이번 판결로 미국의 법적 보호를 받는 첫 한국인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가 된 셈이다.

김씨는 지난 200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가 불법도감청팀인 ‘미림팀’을 조직해 정∙관계, 언론계 등 사회 유력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 도∙감청을 실시했다고 폭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김씨는 주간한국과의 전화통화에서 “망명 신청 후 미국 법원에서 무려 8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됐다. 그동안 망명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아 경제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여러 면에서 힘들었다”며 “최종적으로 망명 승인이 났으니 이제 자유롭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1993년 국가정보원(당시 안전기획부)에 입사한 뒤 정보학교(정규 30기), 대공정책실장 부속실, 해외공작국 정보협력과, 정보학교, 국제정책실, 대외협력보좌관실, 대북전략국 등에서 근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그동안 좌파 정권에서 은밀히 행해졌던 모든 비리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며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썩어가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대로라면 희망도 미래도 없다. 정치권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김씨가 당시 정권의 비리와 도청 사실 등을 폭로하자 김씨를 국정원 직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김씨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자신을 옥죄고 있는 굴레가 풀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를 가졌다”며 “그러나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그동안 국정원의 고발조치 뿐 아니라 알 수 없는 세력들의 위협 때문에 귀국하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셨을 때에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새 세상’이 왔음에도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DJ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또 이명박 정권에도 기관원 출신 내부고발자는 국내에 전혀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조국은 버리고 미국은 구원

김씨는 “이명박 정부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하게 외면했다”며 “어느 것 하나 기대를 충족시킨 게 아무것도 없다. 보수진영은 과거 진보진영의 비리들을 모두 밝혀내고 좌파 정권이 자행한 반역행위들을 처벌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침묵했다. 이 대통령도 여러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꼴을 보면 한국 정치가 한심스럽기만 하다”고 성토했다.

김씨에게도 마지막 위기가 있었다. 2심 판결이 나기 직전 현지에서는 ‘보수 친미 정권으로 정부가 교체됐기’ 때문에 망명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씨는 “미국 법원이 한국의 정권교체를 망명사유에 고려했다면 나의 망명 신청을 기각했을 것”이라며 “정권 교체에도 망명신청을 기각하지 않고 있다가 정권 말기에 최종 승인을 내줬다. 이는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나에 대해서는 한국정부로부터 정치적 탄압이 있을 수 있다고 미국 법원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김기삼씨 쓴 책‘YS·DJ 정부 비리’적나라

김기삼씨는 2010년 8월 경 양심 선언 형식으로 묶은 책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이하 김대중)를 펴내 당시 관심을 모았다.

김씨는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국가정보원에 재직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적었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비밀을 무덤 속까지 가져가야 하겠지만 불안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권력자들의 추악한 비리를 침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대중’에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우선 목차만 보더라도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대북 뒷거래 실상’ ‘거짓의 희극, 도청의 진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납품비리 수사’ ‘김대중 정권의 무기도입 비리의혹’ 등등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주장들로 가득하다.

김씨는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여러 곳의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의 출판사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했다.

김씨는 국정원 재직 중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과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남북정상회담의 전체 과정 및 그 후속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국정원 직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퇴직 후 암살의 위험을 느낀 그는 미국으로 몸을 피했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은 양심선언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는 “대공정책실 보좌관으로 1년간 근무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보고 들었다”며 “권력의 턱 밑에서 일하다 보니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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