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끝나자 본격적인 기업 비리 수사 착수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검찰이 19대 총선 직후 기업 수사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다. 검찰이 살펴보고 있는 기업은 대략 10여 군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총선정국으로 인해 중요 수사 가운데 논란의 소지가 많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은 선거 이후로 미뤄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는 대형 건설사인 A사가 하청업체에서 리베이트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해 계좌추적과 주변인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은 이 회사가 속한 그룹의 오너 일가가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이들의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LIG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에서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직전 수백억 원대 기업어음(CP)을 발행한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해왔다. 검찰은 최근 관련자들의 계좌 추적 작업을 마무리하고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에 대한 직접 조사 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떨고 있는 기업은 어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는 을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선 회장이 회사 지분을 넘기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수백억 원을 착복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자금을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하기 위해 회사 자금과 개인 재산을 국외로 빼돌린 등의 혐의다.

대검 중수부가 하이마트를 조사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중수부가 대기업의 권력유착형 비리가 아닌 단순 비리를 직접 조사하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역외탈세의 경우 국부를 유출시키는 악성 범죄이기 때문에 검찰 내 담당이 따로 없다는 입장이다.

중수부 수사와 관련해서는 선 회장의 과거 ‘전력’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선 회장은 서울중앙지검 산하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 부이사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는 중앙지검 형사3부장과 또 다른 검사 1명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 회장이 여성 골퍼들도 많이 후원해 온 배경도 검찰은 살펴보고 있다.선 회장이 유명 골프들을 이용해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을 대상으로 각종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선 회장의 로비 대상에 실제로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이 포함돼 있다면 중수부가 직접 나서 조사를 벌일 만하다는 게 검찰주변의 이야기다.

검찰은 지난해 말 회사자금을 개인적인 선물 투자에 유용한 혐의로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을 기소한 데 이어 SK에 대한 조사를 아직 마무리 짓지 않고 있다. 추가로 더 조사할 여지가 있는지 계속해서 살피고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최근 비리 연루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한전을 비롯한 몇몇 기업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선거 기간 중 일부 기업의 주변 동향이 심상치 않은 내용이 많았다”며 “특히 한 대기업의 경우 역대 정부에서 권력형 비리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던 만큼 유심히 들여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 조사에 정치권도 긴장

이번에 불거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파이시티 비리 의혹도 파이시티의 현 경영진이 전 경영진에 대해 1,200억 원을 횡령했다며 소송하자, 우리은행 등이 배임으로 맞고소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특수 3부는 오리온 그룹 수사와 관련해 오리온 그룹의 스포츠복권사업 비자금 조성 혐의로 조사 중이다. 오리온 그룹은 IT 운영 사업권 대가로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미 오리온 그룹 수사와 관련, 스포츠토토 임원진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크레스포와 지파인딩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조세조사 3부는 모 증권사 B사장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B사장이 옥외 광고업체로부터 3억 원을 수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B사장에 대한 비리 수사는 구체적인 제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범죄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도 충분하다고 한다. 검찰 소식통은 “B사장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측 사람으로, 검찰은 B사장을 조사할 경우 정치권이 요동칠 사안이 드러날 수도 있다”며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박 전 차관이 이 사건에 연루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날 경우 박 전 차관도 함께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D건설 특혜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해운대 마린시티 내 아파트 부지와 관련해 D건설 특혜 의혹 진정서가 접수됐다는 것이다. 진정서를 넣은 이는 경쟁사인 C사로 알려졌다.

대림산업도 비자금 조성 의혹에 따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는 대림산업이 하청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대림산업과 이해욱 부회장측은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 리베이트 수수, 공사비 부풀리기 등의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의 이 같은 발빠른 수사는 그동안 정치적 사건을 주로 다루다 검찰의 이미지가 나빠진 만큼, 이미지 쇄신 차원의 수사가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정치권 내에서는 나온다. 사법부 개혁이 줄기차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민생현안을 외면해 왔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경제범죄 처리 비중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정치권의 ‘재벌개혁’ 요구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정권 말 ‘기업 길들이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역대 정권은 하나같이 임기 말에 접어들면 기업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검찰의 처벌을 받은 기업인들 중 “나는 정권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