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56) 성신여대 교수가 '외도'에 나섰다. 손 교수는 지난 2006년 MBC를 떠나 대학 강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MBC 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진행하고 있는 'MBC맨'이다. 많은 사람들은 '손석희=MBC맨'으로 여긴다.

그런 손 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대선기획 3부작 '킹 메이커'의 진행을 맡는다고 밝혔다. 'MBC맨' 손 교수의 다른 방송사 출연은 1984년 MBC 입사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또 손 교수의 TV 프로그램 진행은 3년 만이다.

손 교수는 "역사 드라마를 보면 현실을 생각하듯, '킹 메이커'의 1~3부를 보면 우리의 대선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어떤 이해관계나 정파적 관계 속에서 프로그램을 만든 게 아니고 분석 위주여서 (선택의) 준거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29일부터 3일 연속(오후 9시50분) 방송될 '킹 메이커'는 1부 '네거티브 전쟁', 2부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 3부 '당신들의 선거 운동은 석기시대의 것이다'로 구성돼 있다.

1부는 1988년 미국 부시와 듀카키스, 1996년 러시아 옐친 대통령 선거를 통해 네거티브 전략을 파헤쳐 네거티브 전략은 결국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알려준다.

주철환 JTBC 대PD
2부는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선거 승패의 핵심인 중도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짜 중도파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석하고, 3부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어떤 방법으로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는지 조명한다.

프로그램의 충실한 진행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 등 해외 취재에도 동참했다는 손 교수는 "유권자는 보다 현명해지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후보가 마음대로 못한다"면서 "정치인들도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걸 얘기해야 하고 메시지를 투명하게 전달해 왜곡을 막아야 한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만을 던지거나 미디어를 이용만 한다면 실패할 것"이라며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MBC의 간판에서 교수님으로

1984년 MBC에 입사한 손 교수는 1년 뒤인 1985년부터 굵직한 프로그램을 맡으며 MBC의 간판으로 발돋움했다. '현장 85 여기' 앵커, 아침뉴스 앵커, 1분 뉴스 앵커, 심야 0시 뉴스 앵커, 선택 토요일이 좋다 진행, 뉴스투데이 앵커, 미디어 비평 진행, 100분 토론,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이 손 교수가 맡았던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다.

아나운서로, 진행자로 22년간 시청자들과 함께 했던 손 교수는 2006년 사직서를 제출하고 MBC를 떠났다. 퇴사 후 손 교수는 성신여대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 앞에 섰다.

부인 신현숙씨
당시 손 교수는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 대학에서 그동안 강의도 꾸준히 해왔는데 가르치는 보람도 크다"며 "사실 지난해 결심하고 떠나려 했지만 회사가 어려워 선뜻 나간다고 말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MBC 재직 시절에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방송인으로서 손석희의 성공 비결로 '원칙' '겸손' '성실'을 꼽는 이들이 많다. 손 교수는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밝히기보다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방송을 진행한다. "나는 미디어 종사자일 뿐 판관이 아니다"는 게 손 교수의 지론이자 원칙이다.

손 교수는 섭외가 어려운 대상에게는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정중하게 출연을 요청하고, 섭외에 성공하고 나면 곧바로 철저한 준비에 들어간다. 군더더기 없고 매끄러운 진행이 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정계의 영입대상 1순위

그 역시 사람인 이상 대한민국 국민, 남녀노소 모두 다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방송인 손석희에 대한 호감은 절대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경민 의원
손 교수는 몇 해 전 한 시사주간지가 전문가 집단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또 오피니언 리더가 꼽은 가장 신뢰하는 사람 1위, 라디오 남자 진행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손 교수는 1위를 자치했다.

그래서인지 선거 때만 되면 손 교수의 이름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여야 모두 앞다퉈 손 교수 영입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2000년 총선을 앞두고는 '손석희 쟁탈전'이 아주 심했다. 손 교수 정도의 신뢰도, 지명도 등을 감안하면 득표력은 상상 이상일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손 교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손 교수는 정치권의 구애를 받을 때마다 "정치를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방송인은 공정성이 생명"이라며 "방송사를 퇴직한 후 정당을 선택해 정치를 하는 것은 공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손 교수에게 눈독을 들였던 곳은 정치권뿐 아니다. 서울시내 유명 대학들도 손 교수를 '모시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학교 이미지 제고, 우수 학생 유치 등 엄청난 파급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박영선 의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손석희 모시기'에 성공한 성신여대는 "손 국장(퇴사 당시 MBC에서 보직)의 풍부한 경험과 식견, 지명도 등을 고려해 정교수로 임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속되는 '시선집중'

현재 '방송인 손석희'의 트레이드마크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손 교수가 MBC를 나온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이달로 방송 12주년을 맞았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손 교수의 애착도 남다르다. 그만큼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영향력은 막대하기도 하다. MBC 자체 조사에 따르면 오전 6시부터 8시 사이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 중 절반가량이 이 방송을 듣는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손 교수는 28년 관록이 묻어나는 진행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출연자가 말할 때는 얼른 '자리'를 비켜줬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단번에 '정곡'을 찌른다. 말 그대로 담백하고 맛깔스러운 방송이다.

김은혜씨
손 교수는 지난 15일 기자 간담회에서 "시사프로그램 진행은 부담이 없을 수 없다.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라고 '손석희의 시선집중' 생방송 진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손 교수는 그러나 "(그간 방송을 진행하면서) 큰 과오가 없었다면 나름대로 노하우는 생긴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항상 양적, 질적 균형을 찾으려 한다. '시선집중'은 갈수록 이름값을 해야 하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균형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면 바로 요구사항이 들어온다"고 털어놓았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손 교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했다. "각 진영의 메시지를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저는 미디어 종사자이지 판관이 아니에요."

"어떤 지도자를 원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손 교수는 "노코멘트"라고 잘라 말했다. 마이크 앞에 서는 한, 판관이 아닌 전달자의 직분에 끝까지 충실하고 싶은 손석희 교수다.

아나운서 출신, 매형은 주철환 대PD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방송인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손 교수뿐 아니라 부인과 매형도 방송계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다.

이인용씨
손 교수의 부인은 4대 '뽀미 언니'였던 신현숙씨로 역시 MBC 아나운서 출신이다. 두 사람은 사내 연예 끝에 1987년에 결혼했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신씨는 오래 전 사실상 방송을 떠나 가사에 전념하고 있다.

손 교수의 매형은 방송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다. 1983년 MBC에 입사한 주 PD는 손 교수의 소개로 손영민 강릉대 교수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주 PD와 손영민 교수는 고려대 동기 동창이기도 하다.

MBC 시절 주 PD는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학가요제' 등 굵직한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았다.

주 PD는 MBC를 떠난 뒤 이화여대 교수, OBS 사장 등을 거쳐 지난해 출범한 종합편성채널 JTBC로 자리를 옮겼다. 주 PD는 지난달 인사를 통해 콘텐츠 본부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일선 PD로 직접 프로그램을 연출할 수 있는 대PD로 발령받았다.

● 앵커들 전직 후엔…
얼굴이 명함… 줄줄이 정계 진출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간판으로 지난해 4ㆍ27 강원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나돌았던 우스갯소리 하나. "지명도로만 따지면 이명박 대통령 다음이다."

TV 브라운관을 통해 국민들 앞에 얼굴을 알리는 방송 앵커들은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얼굴이 명함이다. 방송 앵커들이 여러 분야에 비교적 자유롭게 진출해서 어렵지 않게 성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대 총선을 통해 3선에 성공한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 뉴스 진행 때 인상적인 코멘트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같은 당의 은 MBC 앵커 출신이다.

17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전 민주당 의원은 MBC,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이윤성 전 새누리당 의원은 KBS 금배지를 달기 전 앵커로 널리 얼굴을 알렸다.

지난해 강원지사 보궐선거 때 선후배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최문순 지사(민주당)와 엄기영 전 사장(새누리당)은 MBC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두 사람 모두 사장을 지냈다.

앵커 출신들은 기업에서도 사랑을 받는다. 이인용 삼성그룹 부사장은 MBC 앵커로 시청자들과 친숙해졌고, KT 김은혜 전무 역시 MBC 기자이자 앵커로 활약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앵커 출신들은 밑에서부터 올라온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도 "밖에서 봤던 것 이상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실망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