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불산 사건' 은폐 의혹첫 발견부터 10시간 방치… 사망자 생기자 비로소 신고출동한 경찰·소방서도 1시간가량 접근 막아늑장신고·안전관리 부실… 초일류이미지 타격 불가피

다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달 30일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인근에서“삼성전자가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며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 생산 11라인 외부 화학물질중앙공급시설에서 불산 용액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산은 피부에 묻으면 심한 화상을 입을 수 있고 기체 상태에서 호흡기를 통해 마시면 기도에 출혈성 궤양과 폐수종을 일으킬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삼성전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유독물질 관리는 물론 관계기관 신고, 직원 안전관리 등에서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대응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실제 삼성전자는 10시간 가량 불산이 누출되는 것을 방치했고, 사고 발생 25시간이 지나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여기에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과 소방서의 접근을 지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간 쌓아 올린 초일류기업이라는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누출부위 비닐봉지로 막아

불산 누출이 포착된 건 지난달 27일 오후 1시22분. 협력사인 STI서비스가 화성 공장 생산 11라인 불산 저장탱크(500ℓ) 밸브관에서 불산이 새는 걸 발견했다. 가스캣 노후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STI서비스는 이를 그대로 방치했다. 유출이 경미해 나중에 수리해도 된다고 판단에서였다.

STI서비스가 수리에 들어간 건 오후 11시쯤부터다. 누출 사실 첫 발견부터 수리 시작까지 10시간여 동안 그대로 불산이 누출된 셈이다. 삼성전자 역시 수리가 시작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누출 부위를 비닐봉지로 막아놓은 게 전부였다.

미온적인 대처는 화를 키웠다. 불산이 STI서비스 소속 작업자 5명은 불산이 이미 10시간여 동안 누출된 곳에서 수리에 들어가면서 장시간 불산 가스에 노출됐다. 작업 도중에도 불산이 배관 하부의 밸브를 따라 흘러내려 정도는 더욱 심했다.

지난달 28일 새벽 4시46분쯤 작업을 마치고 귀가한 직원들은 모두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후송됐다. 4명은 동탄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 그러나 박모씨는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28일 오후 1시 결국 숨을 거뒀다. 숨진 박씨는 작업 당시 방독면은 착용했지만 방제복은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누출된 불화수소 희석액은 2~3ℓ로 극히 소량"이라며 "유출시 폐수처리장으로 자동 이송되는 구조여서 회사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나온 이상 2차 피해 여부나 규모를 속단하기 이른 상황이다.

사망자 없었다면 비밀로?

문제는 불산 누출 사고가 사망자가 발생한 후에야 외부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박씨가 숨진 지 1시간여가 지난 오후 2시10분쯤 관할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박씨의 사망 사실을 통보했다. 사고 발생 후 25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사내 직원들에게도 불산 유출 사실을 알리거나, 대피 명령을 하지 않았다. 누출 사고 지점과 인접한 생산 11라인에 당시 50여명의 근로자가 있었지만 배관 교체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라인은 중단 없이 가동됐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불산이 누출될 경우 즉시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환경 당국, 그리고 경찰과 소방당국에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경기도와 경찰, 소방당국에도 요청이 들어온 후에야 사고 사실을 확인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사고를 은폐ㆍ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만약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의 불산 사고는 비밀로 부쳐졌으리란 것이다. 특히 경찰 발표에서 "사고 직후 출동한 경찰을 삼성전자 보안 요원이 1시간가량 접근을 막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런 의혹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은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고가 터져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조치가 늦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접근을 방해했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출동한 경찰은 정문에 도착한 지 3분 만에 현장에 접근했다"고 해명했다.

초일류기업 이미지에 타격

사고 이후 삼성전자는 "앞으로 환경안전과 관련한 내부 점검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실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제재와 처벌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유독물질 관리부터 늑장 신고, 안전관리 등에서 총체적인 허점을 드러낸 만큼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일로 삼성전자는 그간 쌓아 올린 초일류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입게 됐다.

한편 경찰은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로부터 순찰일지와 작업일지, 영상자료 등을 입수해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경찰은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최초 불산 누출사고 경위와 법규 위반 사실이 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업체의 과실 유무에 따라 업무상 과실치사상, 안전상 조치 소홀에 따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 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