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보엔지니어링ㆍ애니모드 매출 대부분 삼성전자 통해

규제법 통과로 재벌가 친인척 소유 회사들도 과세폭탄

“계열사 아냐!” 공정위 면죄부에도 국세청 칼 겨눠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 통과로 재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논란에서 비켜나 있었던 총수 친인척 소유 회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법안 통과에 고무된 국세청이 그간 축적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기업들에 대한 과세에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던 고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 손자 소유 회사들의 경우 국세청이 칼끝을 겨누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어 이후 결과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 물량 받아 매출 급상승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3녀 이순희씨의 장남인 김상용 대표는 영보엔지니어링과 애니모드를 지배하고 있다. 영보엔지니어링은 휴대폰 배터리팩 등의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1998년 9월 설립된 회사로 김 대표가 29.6%의 지분을 보유,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김 대표의 모친이자 이 회장의 동생인 이씨 또한 영보엔지니어링의 지분 13.0%를 지니고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휴대폰용 배터리팩, 이어폰, 핸즈프리 등을 주로 생산하는 영보엔지니어링은 매출의 약 25%를 삼성전자를 통해 올리고 있다. 중국현지법인을 포함할 경우 그 비중은 97%까지 치솟는다. 사실상 삼성전자와의 관계 없이는 자생조차 불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김 대표가 지분 57.14%를 보유한 데다 대표이사로도 재직하고 있는 애니모드 또한 영보엔지니어링과 상황이 비슷하다. 2007년 6월 설립, 국내외 통신기기의 액세서리 유통업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애니모드도 매출 대부분을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의 액세서리로 올리고 있다. 또한 악세사리 업계에서는 애니모드가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가 공개되기 전에 시제품을 확보, 경쟁업체들보다 한 발짝 빨리 액세서리를 출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공정 행위’라며 불만이 상당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영보엔지니어링과 애니모드 모두 최근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각각 2,790억원, 34억원 수준이었던 영보엔지니어링의 매출, 영업이익은 지난해 3,783억원, 138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애니모드 또한 매출은 400억원에서 901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올랐고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4배 가까이 증가한 41억원을 기록했다. 양사 모두 매출의 거의 전부를 삼성전자가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수 친인척 소유 회사에 대한 그룹 차원의 일감몰아주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계열사 아니라 공정위 면죄부

문제는 총수의 친인척이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데다 일감몰아주기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데도 단지 그룹 계열사에 편입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아왔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해 진행된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련)의 조사요청에 대한 공정위의 석연찮은 반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경개련은 지난해 6월 영보엔지니어링과 애니모드의 삼성 계열사 포함 여부 및 삼성전자의 영보엔지니어링에 대한 부당지원 여부에 대해 공정위 기업집단과와 시장조사과에 각각 조사요청한 바 있다.

당시 경개련 측은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영보엔지니어링과 애니모드는 삼성의 계열사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4월 공정위가 발표한 ‘2012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지정결과’에서 삼성 계열사로 포함돼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개련은 “양사는 삼성가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회사로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기업집단에 소속돼 공정거래법의 규율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며 “특히 영보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의 부당 지원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조사요청 배경을 설명했다.

경개련의 조사요청에 공정위는 “영보엔지니어링은 이미 2005년 7월 친족분리돼 더 이상 삼성 계열사가 아니며 애니모드 또한 그 이후에 설립된 회사이므로 삼성과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경개련이 영보엔지니어링의 친족분리에 대한 확인을 추가로 요청하자 공정위는 “영보엔지니어링은 2005년 5월부터 3개월간 실시된 ‘위장계열사 자진신고’ 기간 내에 자진신고와 동시에 계열분리 신청을 했다”며 “이에 (공정위는) 별도의 계열사 편입 절차를 거치지 않고 친족분리를 승인했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계열사 편입이라는 전제조건을 생략하고 친족분리를 승인,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게 풀어준 셈이다.

국세청 정조준, 이후 행보는?

친족분리를 이용, 그동안 교묘히 법망을 피해갔던 삼성 총수 친인척 소유 회사들이지만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상 상황은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이들 회사에 대한 국세청의 노림수가 분명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2일 열린 제316회 임시국회 제10차 본회의에서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규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을 재석 259명 중 찬성 202명, 반대 24명, 기권 33명으로 가결했다. 규제대상은 ‘총수일가나 총수일가가 일정 지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로 정했고 부당지원행위의 개념은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변경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62개 재벌기업집단 계열사 1,768개사 가운데 총수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곳은 417개사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기업 계열사에 편입되지 않았더라도 총수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른바 관계사도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상용 대표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영보엔지니어링과 애니모드이다. 이와 관련, 국세청이 이들 회사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 국세청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국세청은 대기업 계열사 이외의 총수일가 소유 회사들에 대해 오랫동안 주시해왔고 관련 자료도 차곡차곡 확보해왔다”며 “특히 영보엔지니어링과 애니모드는 재계1위 삼성과 연관된 데다 지난해 공정위의 ‘봐주기’ 논란이 컸던 터라 우선적으로 처리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국세청은 지난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수익을 올린 기업의 총수와 그 친인척 1만여명에게 증여세를 자진신고ㆍ납부하라는 통지서를 4일 일제히 발송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