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G투자증권, 막장 보고서로 신뢰도 추락

LIG투자증권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동부그룹을 동양그룹에 빗대서다. 문제는 분석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데없는 공격에 발끈한 동부그룹은 강한 불만을 제기했고 결국 LIG투증은 고개를 숙였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선 숱한 말들이 돌았다. LIG그룹이 보험계열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획한 일이 아니냐는 의혹도 양산됐다. 그러나 배경을 막론하고 LIG투증은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하다. 금융사에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LIG투증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총수 직접 나서 해명

사건의 단초는 지난 14일. LIG투자증권이 '그룹리스크 진단 - 위험하지만 참을 만하다'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다. LIG투증은 보고서를 통해 "동부그룹의 위험도가 가장 높으며 차입구조가 동양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신문지면에서 동부그룹을 '제2의 동양사태' 후보로 묘사됐다. 기업의 신용도와 이미지에 막대한 훼손이 불가피한 상황. 동부그룹으로선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LIG투증이 동부가 가장 위험한 까닭이나 배경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동부의 차입구조가 동양과 유사한 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나 이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동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동부 관계자는 "그룹마다 영위업종과 특성도 다른데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위험 순위를 정했다"며 "차입구조 또한 동부와 동양이 전혀 다른데도 막연히 차입구조가 비슷하다고 단정한 건 증권사 분석 보고서의 기본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LIG투증도 이날 정정보고서를 내놓고 잘못을 인정했다. LIG투증은 "영위업종이 다르고 업종별 특성과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했다"며 "그룹간 위험도 순위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그룹별 위험도 순위를 삭제한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뒷맛은 찜찜했다. 유동성 위기와 관련된 루머가 번질 조짐을 보였다. 그러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진화에 나섰다. 지난 19일 동부제철 당진공장에서 열린 임원회의에서 유동성 위기설에 대해 직접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채비율이 270%이지만 이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으로 결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수익성 개선에 대한 전망과 전기로 제철사업의 장래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재계는 김 회장이 계열사 경영상황에 대해 장시간 언급한 것을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동양그룹 사태로 재계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불똥이 동부그룹으로 튀는 일이 없도록 총수가 직접 해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능? 눈길 위한 자충수?

이번 일을 놓고 금융권에선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증권사를 압박해 합리적인 의견 제시까지 막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동부그룹의 주장대로 '증권사 분석 보고서의 기본에서 벗어났다'는 게 금융권의 전반적인 견해다.

먼저 LIG투증 애널리스트들은 무능하다는 다소 원색적인 비판이 나온다. 해당업종의 최고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는 애널리스트들로선 불편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외엔 딱히 이번 촌극이 벌어진 원인을 납득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에 주목하며 투자하는 경향을 갖고 있어 현장조사와 객관적인 데이터가 신뢰"라며 "문제의 보고서는 이런 기본적인 부분도 지켜지지 않아 LIG투증 애널리스트들의 무능함을 탓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이목을 끌기 위해 LIG투증이 자충수를 뒀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리 좋은 보고서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눈길을 끌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게 사실. 이를 의식해 일부 무리수를 쓰더라도 자극적인 소재를 동원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동부의 경우 회사채 비중이 적고 CP는 거의 없어 동부를 동양과 비슷하다고 하는 건 무리수"라며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현재 재계의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된 동양그룹 사태를 억지로 끼워 맞춘 인상이 든다"고 말했다.

기업 이미지에 타격

이런 보고서를 낸 배경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뭔가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손보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LIG손해보험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부화재로부터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룹 LIG투증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들 기업의 상황을 보면 이런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동부화재와 LIG손보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위와 4위다. 하지만 지난 회계연도 들어 동부화재와 LIG손보의 점유율은 각각 15.5%와 14.2%로 1.3%차에 불과하다. LIG손보로선 '빅3'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운동경기에서 금은동메달처럼 업계를 막론하고 '빅3'가 가지는 위상과 경제적 효과는 크다"며 "손보업계에선 LIG손보 3위권 진입을 위해 계열사인 LIG투증을 동원해 동부화재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배경이 무엇이든 이번 일로 LIG투증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LIG투증은 이번 일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권 특성상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