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달아올라요, 피곤하니까…"

오랫동안 성관계를 하지 않는 '섹스리스'. 경제적 문제와 스트레스 등으로 대한민국의 청춘 남녀가 결혼도 사랑도 주저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초혼 연령 높아지고 출산율 떨어지고… "정규직에게만 연애 허용된 이상사회"
일본선 젊은 층 섹스기피 현상 두드러져… 전문가들 "한국도 초식남 현상 나타날 것"
"한국 노동시간 OECD 세 번째… 몸 피곤하니 성욕 느낄 겨를도 없어"

군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있는 A(31)씨는 사귄 지 7년 된 애인이 있지만 결혼 계획이 없다. 여자친구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며 근근이 생활을 꾸리고 있고, A씨에게는 모아놓은 결혼자금이 한 푼도 없다. 고시를 준비하느라 몇 년간 백수 생활을 한 A씨는 더 이상 집에 손을 벌릴 처지도 못 된다.

A씨가 결혼 계획을 못 세우는 것만큼 고민하는 건 애인과 뜨거운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몇 달에 한 번꼴로 섹스를 할까 말까다. 고시생 시절엔 여자친구에게 '아껴준다'고 둘러댔지만, 솔직히 모텔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고시에 붙어도 삶이 고달프긴 마찬가지. 고시생 때 진 빚을 갚으려고 과외 알바까지 했다. 남들보다 뒤늦게 법조인 생활에 뛰어드는 데 대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다.

대한민국의 청춘 남녀가 결혼도 사랑도 주저하고 있다. 지난 18일 통계청 산하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생애주기별 주요 특성 및 변화 분석'에 따르면 청년층의 사회진출이 지연되면서 초혼 연령은 높아졌고 출산율은 현저히 떨어졌다.

요즘은 '만혼'이 대세다. 2010년 기준으로 남성의 경우 1956~1960년생은 30~34세 미혼율이 13.9%에 불과했지만 1966~1970년생은 27.4%나 됐다. 이 같은 추세는 갈수록 심화돼 1976~1980년에 태어난 남성의 절반 이상(50.2%)은 30~34세 때 미혼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도 마찬가지. 1956~1960년생은 30~34세 미혼율이 5.3%였지만 1976~1980년생은 같은 연령대 미혼율이 29.1%로 올라갔다.

출산율도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2010년 현재 60세인 여성이 평생 낳은 아이는 2.6명이고 50세는 2.0명, 30세는 1.2명이었다. '4인 가구 평균'이란 말은 이미 옛말이다. 연령별 최대 가족 규모는 1990년 4.4명에서 2000년 3.7명으로 줄었고 2010년엔 3.4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한국에서 20대 후반에 결혼을 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꾸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최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요인이다. 집을 구할 수가 없고 아이 보육도 해결할 수 없는 등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면서 "문화적 요인으로는 가족중심사회에서 개인중심사회로 변화하면서 가족보다 자신에게 투자하겠다는 남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을 했더라도 삶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건 아니다. 결혼 3년차인 직장인 B(25ㆍ여)씨는 둘째 아이 출산 후 난관시술을 받았다. B씨는 지방중소도시에서 비정규직으로 은행콜센터 업무를 보고 있고, 남편은 중소기업의 생산라인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른 결혼을 하고 계획 없이 아이를 낳았는데, 만만찮은 육아비용은 무거운 짐이었다. 결국 B씨는 더 이상 출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난관시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여성의 경제활동은 이제 필수다. 결혼한 여성이 마음을 놓고 사회활동을 하려면 보육문제 해결뿐 아니라 정년 보장 등 사회적 조건이 받쳐줘야 한다. 가정 내에서도 남녀의 가사분담 등 문화적 조건이 바뀌어야 하지만 한국사회는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우 박사는 "정규직에게만 결혼도 연애도 허용된 이상사회"라고 진단했다. 우 박사는 "젊은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인턴과 같은 비정규직일 때는 소개팅도 들어오지 않다가 정규직으로 취업하니 소개팅이 들어온다고 한다. 20대 절반이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사회적 삶'이 허용될 수가 없다. '누가 데이트 비용을 낼 거냐'가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가난한 청춘들이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꿈꾸는 건 사치"라고 말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지난달 20일 일본 젊은이들의 '금욕 신드롬(celibacy syndrome)'을 자세히 다뤘다. 일본가족계획협회(JFPA)에 따르면 상당수 일본인은 데이트는 물론 섹스마저 멀리하고 있다. 현재 20대 초반 일본인의 25%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을 가능성이 40%인 것으로 조사됐다. 섹스에 대한 무관심은 세대를 막론했는데 특히 16~24세 남성의 25%, 여성의 45%가 "섹스에 관심이 없거나 성적 접촉을 경멸한다"고 밝혔다.

일본가족계획협회 관계자는 "젊은 세대 중 특히 여성들이 성적문제를 많이 체감하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성관계를 꺼리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현재가 대략 한국의 10년 후를 보여준다는 걸 고려하면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우 박사는 "일본은 젊은층이 취업을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섹스에 흥미를 잃은 '초식남'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곧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한국의 20대 초반 남녀의 경우 절반도 결혼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최 교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으면 성적인 욕구가 높아지지만, 반대로 육체적인 스트레스가 쌓이면 같은 육체노동인 성욕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현재 한국 근로자의 평균노동시간은 연평균 2,092시간으로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길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 성적인 욕구를 느낄 겨를이 없다"면서 "머지않아 한국도 일본처럼 섹스리스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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