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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온상' 된 폐쇄형 SNS

"잘 지내?" 문자 주고받다 선 넘어… 개방형에 피로 호소하는 이들이 이용
소통에 목마른 중장년층서 동창모임 인기… 아이러브스쿨 향수 불러일으킨 듯
오프라인서 만나다가 남녀 문제 불거져… 상담게시판에 "어떡하나" 고민글 수두룩
  • 중장년층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폐쇄형 SNS의 동창 모임 서비스가 신종 불륜 창구가 돼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남자는 첫사랑을 절대 못 잊는다고 했던가. 한 달 후면 50대에 들어서는 조모씨는 이 말을 곱씹는다. 조씨는 지난 1일 친구 이모씨의 전화를 받고 강남 술집을 찾았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터진 친구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친구가 첫사랑과 연락을 주고받다 불륜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읊는 동안 조씨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이씨는 지난 5월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첫사랑을 만나 지난 9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 이씨와 이씨의 첫사랑, 조씨는 모두 해당 SNS 서비스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 멤버다.

폐쇄형 SNS 40, 50대 인기

이씨와 첫사랑을 연결해준 통로는 폐쇄형 SNS. 네이버의 밴드, VCNC의 비트윈, SK커뮤니케이션의 데이비, 카카오의 카카오그룹 등 폐쇄형 SNS의 종류는 다양하다. 폐쇄형 SNS는 지인 기반 모바일 SNS다. 지인들끼리 카페와 같은 그룹을 만들어 글과 사진 등을 올리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초대받은 지인(친구)들만 참여가 가능하므로 접근성과 교류 대상 범위가 제한적이다. '카카오톡' 그룹 대화방의 진화 버전인 셈이다.

폐쇄형 SNS는 개방형 SNS의 확장성에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미국 모바일 로그분석 전문 기관인 플러리(Flurry)에 따르면 밴드의 지난 8월 앱 구동 수는 15억 회를 넘겼다. 2010년 미국에서 시작해 글로벌 폐쇄형 SNS로 유명해진 패스(Path)의 같은 달 앱 구동 수 10억 회를 웃돈다. 밴드의 지난달 앱 다운 수는 2,000만 건을 돌파했다. 지난 9월 1,600만 건보다 무려 400만 건이 늘었다. 패스의 지난달 앱 다운 수는 1,000여만 건이다.

주목할 만한 건 폐쇄형 SNS의 인기를 견인하는 이들이 40, 50대라는 점이다. 밴드는 애초 대학생 조모임용으로 기획됐지만 현재는 중장년층 동창 모임용으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젊은 층에 비해 소통 공간이 없는 중장년층은 폐쇄형 SNS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폐쇄형 SNS가 과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러브스쿨의 특징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조씨도 폐쇄형 SNS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조씨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에 뒤쳐질까 봐 일찍부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해왔지만 온라인상의 가식적인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낀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친구 권유로 폐쇄형 SNS에 가입했는데 초ㆍ중ㆍ고 동창생과 격의 없이 인생의 고민을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데서 큰 기쁨을 느꼈다"며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과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게 좋다. 나를 꾸밀 필요가 없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폐쇄형 SNS를 매개로 친구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가 복잡해졌다고 했다. 폐쇄형 SNS에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끼리끼리 소통'의 즐거움을 느꼈던 40, 50대의 삶이 오히려 이로 인해 위기를 겪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조씨는 "친구의 첫사랑은 부산에 사는데, 친구가 마침 부산 출장이 잡혀 모임에 글을 올렸다더라.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만나 옛 감정이 여전한 걸 확인했고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었다"면서 "친구가 첫사랑과 계속 만나기를 원하는 것 같던데 폐쇄형 SNS가 불륜 창구로 이용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불륜창구 오명 논란

폐쇄형 SNS를 매개로 한 불륜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각하진 않았지만, 과거 아이러브스쿨이 불륜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은 걸 떠올리면 이씨와 같은 사례는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민ㆍ상담을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폐쇄형 SNS의 동창 모임 활동 때문에 불거진 불륜 문제를 상담하는 글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 전업 주부는 '폐쇄형 SNS 활동으로 결혼 전 사귀던 남자친구와 만나서 불륜을 저질렀다'고 했고 한 여성은 '아버지가 첫사랑을 만났는데 불륜을 저지른 건 아닌지 의심된다'는 글을 올렸다.

자신을 40대 초반이라고 소개한 최모씨의 사연은 구체적이었다. 최씨는 대학 동창 모임 앱에서 만난 여자 선배와 술자리 번개 모임을 가진 뒤 술김에 성관계까지 맺었다고 했다. 문제는 더 이상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갈 의사가 없는 최씨와 달리 여자 선배는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한다는 것. 최씨는 미혼이지만 선배에겐 가정이 있다. 최씨는 "실수니 넘기자고 말했는데 선배가 계속 만나자고 연락해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2개월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K시 마티즈' 동영상 속의 남녀 역시 폐쇄형 SNS의 동창 모임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행인이 이들이 도로에 주차한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카카오톡에 공개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 원장은 "폐쇄형 SNS가 중장년층에게 아이러브스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젊은 층이 폐쇄형 SNS를 통해 옛사랑을 만나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기혼자들이 많은 중장년층이 그런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불륜 창구라는 오명을 들었던 아이러브스쿨 역시 기혼층 이용자가 많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폐쇄형 SNS 이용자가 급속하게 늘어날 텐데 이용자들의 자성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는 "동창 모임을 오프라인에서 가질 때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제작=비주얼다이브 (http://www.visuald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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