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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선택 '두 번째 결혼'

재혼 대세 됐다지만 현실은 "글쎄…"
재혼 4쌍 중 1쌍 '이혼녀+초혼남' 결혼 풍속도 변화 확연하지만
자녀양육 문제 등 어려움 여전
'울산 계모'사건, 편견 부채질
"새 자녀들과의 갈등 줄이려면 가족상담 등 통해 동의 얻어야"
  • 재혼에 대한 사회 인식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의 편견이 많은 재혼가정에 상처를 안긴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최근 어머니와 함께 친척언니 B(38)씨의 두 번째 결혼식에 다녀온 A(35)씨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A씨 어머니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보수적이다. 그에게 이혼이란 문제 있는 여성이나 겪을 치욕스러운 일이자 무조건 여자가 잘못해 초래된 것이고 이혼녀가 다시 결혼하는 건 '죄악'이다. A씨는 남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아내가 참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B씨의 재혼 과정을 언니(A씨 이모)로부터 전해들은 어머니가 달라졌다. A씨는 "어머니가 '조카(B씨)가 참 행복해 보이더라. 무작정 참고 사는 것보다 새 인연을 만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고 하더라. 아버지보다 훨씬 보수적인 분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고 했다. A씨는 "어머니가 이렇게 변한 걸 보니 재혼에 대한 시선이 참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이혼ㆍ재혼 현황' 보고서는 흥미롭다. 이 보고서는 1982년 이후 30년간 이혼·재혼 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조이혼율)는 1982년 0.7건에서 2012년 2.3건으로 늘었다. 이혼이 많아지면 재혼이 느는 게 당연지사. 재혼 건수는 82년 4만3,664건에서 지난해 10만 7,602건으로 늘었다. 상당수 재혼 커플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재혼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초혼자가 이혼이나 사별 경험이 있는 상대와 결합하는 '초혼+재혼' 커플의 형태도 달라졌다. 전체 재혼 중 '남성 초혼+여성 재혼' 구성비는 1982년 15.1%에서 지난해 26.9%로 껑충 뛰었다. 반면 '남성 재혼+여성 초혼' 구성비는 44.6%에서 19.2%로 줄었다. 여성의 사회 지위가 높아지고 출생 성비 불균형으로 혼인 적령기 여성 인구가 크게 준 탓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혼남과 초혼녀의 결합보다 이혼녀와 초혼남의 결합이 급증한 건 눈에 띄는 변화다.

여전히 '남성 재혼+여성 재혼' 커플 비율이 지난해 기준 53.7%로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재혼 4쌍 중 1쌍이 이혼녀와 총각의 결합인 점만으로도 결혼 풍속도가 확연히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혼을 결혼-이혼에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통계가 웅변하듯 재혼은 더 이상 한국에서 부끄러운 게 아니다.

B씨는 집안 소개로 만난 남성과 서른 살에 결혼했다. 전남편은 과묵하고 듬직해 집안 어른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B씨에게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바람을 피우고도 당당할 정도로 '남자의 권위'를 내세웠다. 남편의 불륜이 양가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B씨는 바람을 피운 남편보다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 됐다. B씨는 복잡한 이혼 과정 동안 부모형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를 구했다. B씨는 이혼 후 사귄 남자친구와 2년간 동거하다 마침내 양가의 허락을 얻어 재혼에 골인했다. 재혼 과정은 순탄했다. B씨는 A씨에게 "이혼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참아라'였는데 재혼할 때는 다들 '인생은 길다'고 말해주더라'"고 했다.

재혼은 이처럼 자연스러운 커플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모든 재혼자가 B씨처럼 행복한 건 아니다. 어느 한 쪽에게 자식이 있는 경우엔 더하다. 가정생활에 갈등을 초래할 요소가 많아지는 탓이다. 결혼은 남녀의 결합이자 가족 간의 결합이다. 어느 한 쪽에게 아이가 있다면 껄끄러운 대상인 전부인이나 전남편까지도 결합 대상으로 봐야 한다. 유자녀 재혼 가정이 감당해야 할 관계의 무게는 초혼자가 겪을 수 있는 갈등의 '경우의 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 10월 한국은 여덟 의붓딸을 때려 죽인 한 계모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갈비뼈 열여섯 대가 부러지도록 딸을 폭행해 죽게 한 울산 계모는 '공공의 적'이 됐다. 그리고 그의 악행은 애먼 재혼 가정에 '주홍글씨'를 새겼다. 한 온라인 고민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재혼 여성의 하소연 글을 보면 계모들이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계모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 현재의 남편과 만나 재혼했고 남편과 그의 전처 사이에서 낳은 열 살 난 딸을 키우고 있다. 내 배 아파 낳진 않았지만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울산 계모와는 전적으로 다른 엄마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나도 '악녀의 전형'이고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울산 계모 취급하는 시선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 사연은 재혼 가정이 감내해야 할 어려움이 어떤 건지 정확히 반영한다. 전 결혼 생활에서 얻은 자녀의 양육 문제와 사회적 편견이 그것이다.

실제로 자녀 양육 문제는 재혼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부부 모두에게 자녀가 있어도, 어느 한쪽에게만 있어도 그렇다. 자녀 문제로 갈등하다 혼인관계를 깨는 커플도 흔하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서도 갑자기 새아빠와 새엄마가 생기는 건 버거운 일이다. 재혼 가정의 많은 아이가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는 건 낯설지 않다. 재혼을 앞둔 한 여성은 "예비 남편이 내 자식처럼 사랑해준다고 했지만 (예비 남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며 "(잘해줄 거라고) 믿고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녀 문제로 고민하지 않더라도 재혼생활의 어려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울산 계모' 사건으로 심적 고통을 겪은 여성의 하소연에서 알 수 있듯이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사회의 편견을 무시할 수 없다. 재혼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시대가 됐다고들 말하지만 한 재혼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 같은 말이 얼마나 입에 발린 것인지 알 수 있다. 응답자 상당수가 재혼 사실을 숨긴 적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자녀들이 불편하게 생각할까봐'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 조사 결과는 한국이 여전히 재혼 가정을 삐딱하게 보는 곳이라는 걸 입증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아이오와대와 미주리대 심리학과 교수들이 13년간 이혼 가정의 대학생 1,000명의 사례를 분석해 쓴 심리학책은 재혼을 고심하는 이들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저자들은 이혼과 재혼은 총체적 파국이 아니라 새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재혼 가정의 아이들은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새 환경에 잘 적응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이 아이들에게 충격과 상실 등을 안기는 건 분명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부모 이혼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책에 따르면 아이들이 현실(부모의 이혼과 재혼)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살아가는 데 긍정적이고 성숙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재혼은 결혼이나 이혼보다 신중해야 한다"며 "재혼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 재혼이 다르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여전히 한국이 외국에 비해 재혼을 보수적으로 보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자녀들에게 충분한 동의와 공감을 얻는 과정을 거치면 새 가족에 닥칠 어려움이 훨씬 줄어든다"며 "재혼 전에 커플 상담이나 가족 상담 등을 거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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