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자력위, ‘한국형 원전’ 안전 입증

문재인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차세대 한국형 원전이 해외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최종 표준설계인증을 받았다. NRC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원전 인증 기관으로 외국 기업이 개발한 원전이 미국의 인정을 받은 것은 최초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이 한국의 원전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한 셈이다.

NRC는 홈페이지에 한국 신형 경수로 APR1400 원전의 NRC 설계인증과 관련해 ‘Direct Final Rule’로 명시했다. 더 이상 기술적 이슈가 없어 신속한 법제화 절차를 진행한다는 뜻이다. 7월 말엔 최종적으로 법제화 과정이 마무리돼 법률안이 공포될 예정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미국과 합작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미국의 안전 기준으로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력

‘APR1400’은 발전용량 1400MW급의 한국형 원자로다. 내진설계 0.3g급으로 지진 규모 7.0도 버티는 수준이다. 수명은 60년이다. 국내엔 신고리 3~6호기, 신한울 1~4호기 등 총 8기에 적용됐다. 수출원전인 아랍에미리트(UAE)에도 ‘APR1400’ 4기가 건설 중이다.

‘APR1400’은 1992년부터 10년간 약 2300억 원을 들여 개발한 차세대 원전 모델이다. NRC는 “APR1400은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시키거나 사고 영향을 줄이기 위한 안전성이 강화된 시스템이 특징”이라고 평가하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NRC의 최종 인증이 진행되면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인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한수원은 기대한다.

원전 수출길은

까다로운 NRC의 인증을 받으면서 외형상으로만 보면 원전 수출에 날개를 단 것으로 보인다. NRC인증을 받은 원전은 전 세계적으로도 안전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세계 원전 시장에서 선두 주자로 올라설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탈원전의 영향으로 한수원 등 원전 공기업들은 적자를 기록하며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원전 관련 학과 축소 등 학계도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전을 수입하려는 국가들은 한국 원전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원전 수출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국형 원전으로 건설된 UAE 바라카 원전 1호기. 연합

탈원전 속에 원전 수출 호소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체코를 방문해 바비시 총리에게 “한국은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데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또한 지난 2월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원전 사업 참여 요청에 “기회를 달라”며 해외 원전 영업에 적극 나서는 중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한국형 원전 수출을 호소하며 “한국은 40년간 원전을 운영해 오면서 높은 실력과 안정성을 보여줬다. (카자흐스탄 원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전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해외 원전 세일즈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균렬 교수는 “대통령이 스스로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고 선언해버렸지 않았나. 그것이 결정타”라며 “미국에서 인증을 받았지만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제3국에 가서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NRC의 인증을 받았지만 첫 호기를 살리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원전 수출 핵심 인력은 빠져나가

현 정부는 탈원전 시기를 60년 정도 후로 보고 있다. 그동안 원전 기술 운영과 관련된 인력은 웬만큼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심각한 것은 설계와 건설, 시공을 담당하는 고급 인력들이 유출된다는 점이다. 서 교수는 “이런 고급인력을 약 1만 명 정도로 보고, 그 중에서도 핵심 인력은 1000명 정도 된다”며 “이들의 일거리가 이번 2~3달이 지나면 없어질 것인데,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대책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300여 명에 달하는 설계 건설에 필요한 고급 인력이 빠져나갔다”며 “지구상에서 원전 건설 경험이 풍부한 기술자를 세계 각국이 탐내고 있는데, 이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원전 일감 부족이 계속되면 2~3년 내에 1000명 정도의 기술자들이 유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원전 관련 학계의 부침은 심각한 수준이다. 카이스트의 지난 학기 원자력양자공학과 지원자는 0명이며 2018년엔 4명에 그쳤다. 서울대도 지난해 원자핵공학과에서 중도 하차한 인원이 6명에 이른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자퇴생은 3명에 불과했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엔 3명, 지난해 6명으로 총 9명이 자퇴했다. 원자핵공학과 정원이 총 32명인 점을 감안하면 5명 중 1명은 자퇴한 셈이다.

서 교수는 “원자력의 핵심 인력인 머리는 이미 잘려나갔고, 허리마저도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있다”며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스럽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2~3년 내에 원전 경쟁력이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무인력을 양성하는 고등학교들도 문을 닫을 것”이라며 “중국으로 우리 기술자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 탈원전이 아주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