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형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장
최형호(63)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회 지부장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규탄했던 당시 그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이전에도 군사정권을 비판하며 갖은 시위에 참여했지만, 광주에서의 기억은 ‘트라우마’ 그 자체라고 했다. 괜히 본인 때문에 친동생도 고통을 떠안았던 건 아닐까. 평생의 아픔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심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시기 서울에서 지냈던 최 지부장은 당시 ‘한국정치범동지회’ 일원이었다. 이곳은 1970년대 이후 반정부투쟁 등으로 실형선고를 받은 인사들의 모임이다. 이런 신분이 말해주듯 그는 시위 등으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데 있어서는 거리낄 게 없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날 밤 11시께 마지막 기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을 때에도 여느 시위에 참여했을 때와 느낌상 다를 바 없었다.
물론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온 세상이 유독 시끄러웠던 때였다. 광주행 기차를 타기 직전까지도 서울 청계천 아시아극장과 영등포 등지에서 시위를 벌였던 그였다. 동생의 기차표를 함께 끊은 건 그래서다. 홀로 남겨뒀다가 동생이 괜한 위험에 처하진 않을까 불안했다. 그렇게 최 지부장은 동생의 손을 꼭 잡고 5~6시간을 달려 19일 이른 새벽 광주역에 내렸다.
눈앞에 드러난 광주의 모습은 앞전의 시위와 크게 달랐다. 군인들은 완전무장했다. 최 지부장은 “그야말로 전쟁, 시가전이었다. 군인들은 곤봉은 예사고, 대검을 차고 있었다. 시민들은 짱돌과 화염병을 던졌지만 무기력했다. 혼미한 정신으로 도망치면서도 말 못할 갖은 수모를 다 겪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동생이 겪은 참혹함은 말할 것도 없다. 1989년 1월 14일 <광주일보>의 ‘대검에 가슴 찔린 19세 소녀 치료했다’ 기사 속 소녀가 최 지부장의 동생이다. 기사에 따르면 최양은 대우병원쪽 골목에서 계엄군의 대검에 겨드랑이와 가슴 사이를 찔렸다. 다만 보안사와 광주시청은 ‘부상자 실태조사’란 문서에서 최양의 부상 부위는 기흉, 입원 예상 기간은 4주로 명기했다.
시위에 가담한 최 지부장의 수난도 가혹했다. 광주가 신군부 손아귀에 넘어간 후 2달가량을 숨어 지내다 그해 7월 중순경 서울에서 붙잡힌 그는 남영동 소재 506보안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광주에 간 적조차 없다며 버텼다고 한다. 최 지부장은 “운동권과 재야인사 등 다른 누군가와 어떻게든 엮으려는 듯 종용하는 질문이 이어졌다”며 “아예 광주란 곳에 가지도 않았다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만, 최 지부장은 이제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실은 광주민주화운동 직전에 수배 중이었던 심재권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광주의 상황을 말해줬다”며 “그를 통해 광주에 내려가게 돼 현지의 실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 의원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 의원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속한 재야단체의 홍보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변 인사 대부분이 수배 중이어서 광주에 내려갈 수 없었다”며 “최 지부장에게 직접 광주로 가 실상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했었다”고 전했다.
심 의원은 이어 “광주의 진실을 소상히 파악해 성명을 내는 등 관련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지만, 지역이 신군부에 장악되고 봉쇄되면서 최 지부장과 소식도 끊겼다”며 “발만 동동 구르곤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막말에 유공자 논란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여러 차례 진영 갈등의 요소가 돼왔다. 최근에는 막말 논란 등이 일면서 이런 현상이 부쩍 심화하고 있다. 최 지부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5.18이 내일 모레면 만 39년으로, 강산이 벌써 4번은 변했다”며 “아직도 이를 논란거리로 만드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최 지부장은 또 “그토록 공개를 원한다면 법을 제정하면 될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현재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및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관련 법률’ 등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 최 지부장의 말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면, 입법기관에 속한 그들이 입법을 통해 공개토록 하면 될 일이란 것이다.
같은 단체의 전대열(78) 고문도 입장을 같이 했다. 전 고문은 “마치 5.18 유공자들이 특혜를 받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얘기”라며 “국가 유공자 단체 중 공법단체가 안 된 단체는 5.18 관련 단체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상금 역시 SNS 등을 통해 10배 이상 부풀려진 가짜뉴스가 횡행한다”라며 “북한군 개입설 등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폄훼가 도를 넘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최 지부장 등은 이 같은 논란 속에서도 바라는 바가 따로 있다고 했다. 전두환씨의 사과다.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전씨가 5.18 묘역에 와서 참회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돌아가신 영혼들의 영혼이 그나마 달래질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