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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에 이어 레드·블랙…마음방역 비상

전세계인 정신건강 ‘빨간불’..극단적 선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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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3월 40대 남성인 A씨는 신용카드 배송 기사 B씨가 마스크와 장갑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다가오자 B씨의 배를 발로 찼다. 당시 B씨는 신용카드를 전달하기 전 A씨의 신분증을 받아 신원을 확인하려던 중이었다. A씨의 욕설이 계속되자 B씨는 오토바이로 돌아가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 했다. 회사 내규에 따르면 욕설하는 고객에게는 신용카드를 배송하지 않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A씨는 행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B씨를 폭행했다.

#2.
지난해 7월 C씨는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잡지 못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리게 됐다. C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업난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물론 취업난은 C씨에게만 닥친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376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18만3000명이나 감소했다. 하지만 개개인이 맞닥뜨린 현실은 팍팍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C씨는 자살예방상담전화(1393)를 통해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정서까지 감염시키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생겨난 신조어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o‘코로나 레드’(Corona Red)o코로나 블랙’(Corona Black)은 코로나19의 심리적 영향을 나타내는 신조어들이다.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뒤바뀐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일상의 변화, 감염에 대한 두려움, 생활의 제약 등이 개인들의 정서 상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때 느낄 수 있는 우울감, 무기력증 등을 코로나 블루라 일컫는다. 우울감, 불안감이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는 코로나 레드다. 사례 1이 코로나 레드의 전형적인 표출 사건이다. 더 나아가 절망감, 암담함을 느끼는 상태까지 오면 코로나 블랙에 걸렸다고 말한다. 사례 2에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C씨는 코로나 블랙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10명 중 4명, ‘코로나 블루’ 경험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4명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10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20~65세 성인 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7%가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50.7%)의 경험 비율이 남성(34.2%)보다 높았다.

지난해 4월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도 코로나 블루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성인 3903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 (54.7%)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외출을 못해 생기는 답답함과 지루함`이 22.9% 에 달했다.

해외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6월 24일(현지시간)부터 30일까지 미국 성인 547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40.9%가 코로나19로 인해 적어도 하나의 정신적인 문제나 행동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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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못해 화가 나는 ‘코로나 레드’
코로나 레드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과 불안감이 ‘분노’로 폭발한 상태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코로나 블루가 계속되자 쉽게 화를 내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성향으로 변질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성인남녀 286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약 77%가 코로나19로 인해 쉽게 화를 내는 코로나 레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이 경험한 코로나 레드 현상(복수응답)은 잦은 짜증(66.6%), 습관적 불만 토로(35.6%), 갑자기 치솟는 화(30.7%), 각종 혐오 감정 극대화(19%) 등이었다.

지난해 8월 조사에서도 코로나 레드 현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연구팀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2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정보와 뉴스를 접하고 주로 느끼는 감정’을 조사했다. 8월 초에서 8월 말까지의 감정 변화를 추적한 결과, ‘분노’라고 답한 비율은 11.5%에서 25.3%로 13.8%포인트가 증가했다.

‘코로나 블랙’에 의한 자살 충동
가장 위험한 코로나 블랙은 코로나 19로 인해 좌절, 절망, 암담함을 느끼는 상태다. 우울증의 극심한 상태인 코로나 블랙은 환자의 자살을 야기할 정도로 위험도가 높다. 지난해 1~8월 월평균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상담 건수는 1만6457건이었다. 2019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월 9217건)에 비해 78.6% 급증한 수치다.

문제는 상담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9년 같은 기간의 ‘1393’ 전화 응대율이 64%였던 반면 지난해에는 36.6%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지난해 9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최근 코로나 우울 등으로 상담전화가 급증하고 있으나, 현재 42명의 상담인력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자살상담 전문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문제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맞닥뜨린 악재다.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에 게재된 논문 ‘코로나19 제약에 따른 감정 변화’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남녀 10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긴장, 분노, 혼란, 우울 등의 수치는 평균치를 웃돌았다. 오직 활력만이 감소세를 보였다. 활력 수치는 평균치 50에서 45.39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 미주본부인 범미보건기구의 카리사 에티엔 사무국장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는 세계 모든 나라의 ‘초대형 악재’가 됐다”며 “정신건강을 돌보는 것이 코로나19 대응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에 대응해 ‘정신 방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코로나 블루와 코로나 레드는 의료적인 치료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자가 진단 및 예방, 치료가 가능하지만 코로나 블랙은 빠져 나오기 쉽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 의료 관계자는 “정부는 정신질환 예방 및 치료뿐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코로나19로 극심해진 취업난, 빈곤, 불경기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유선 기자 your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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