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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음식이야기] 미인들의 혀를 유혹한 피자






미스코리아 대회가 공중파에서 사라진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한국 최고의 미인’이라는 이름을 열망하고 있다. 화려한 외모와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미스코리아들이지만 수영복을 입고 쭉 늘어선 그녀들을 보면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늘씬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굶주림과 싸워왔을 것이며, 인형같은 웃음을 짓기 위해 얼마나 얼굴 근육을 혹사시켰겠는가. 본인이 굳이 원한다면야 상관할 바가 아니겠지만 만약 그것이 타의에 의해서라면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영화 <스피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배우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미스 에이전트>는 미스 U.S.A대회와 이리저리 얽힌 코미디 영화다. 왈가닥 FBI 요원 그레이시(산드라 블록)는 순전히 일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명예에 도전(?)하게 된다.

미스U.S.A대회를 앞두고 ‘시티즌’이라는 괴한으로부터 대회장을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장이 날아오자 FBI는 대책 마련에 나선다. 이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여자 수사요원을 출전시켜 범인을 잡겠다는 것. 그레이시는 내키지 않았지만 지난 사건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 제의를 수락한다. 곧 최고의 미용팀이 동원되고 부스스한 머리와 지저분한 옷차림의 그레이시는 섹시한 스타일을 갖춘 미스 뉴저지로 변신한다.

그러나 겉모습이 달라졌다고 성격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 그레이시는 넘어지고 부딪치고, 몸을 날리며 대회 기간 내내 문제를 일으킨다. 넘치는 식욕을 주체하지 못해 가슴에 도넛을 몰래 숨겼다가 들키기도 하고, 합숙소에서 한밤중에 맥주와 피자를 찾는다. 다이어트를 생명처럼 여기는 동료 출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느새 긴장을 풀고 잊어버렸던 먹는 즐거움과 노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된다.

또한 미인대회를 혐오하던 그레이시도 그들과의 우정에서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우여곡절 끝에 대회 날이 다가오고 그레이시는 무사히 결선에 진출한다. 왕관 속에 폭탄이 설치돼 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필사적으로 폭발을 저지하는데... 영화의 끝에 밝혀지는 범행 동기와 이를 알아내는 과정은 다소 진부하고 단순하다.

결국은 미인대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메시지도 비판받을 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인대회 참가자들이 ‘무장해제’ 된 채로 우정을 나누고 연대를 이루는 내용은 즐겁다. 편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그녀들의 모습은 화려한 드레스나 수영복 차림으로 워킹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탈리아 이민들의 '아메리칸 드림' 담겨



영화 속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피자를 시켜 먹는 장면을 보면 어느새 침이 꿀꺽 넘어갈 것이다. 오늘날 피자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든 장본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탈리아가 아닌 미국이다. 19세기 말, 전쟁으로 유럽에 공황과 기근이 계속되자 이탈리아인들은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게 된다.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미국인의 입맛에 맞춰 도우(껍질)가 두껍고 치즈와 각종 토핑을 넉넉하게 사용해 진한 맛이 나는 피자를 만들어냈다. 미국인들은 프랜차이즈 판매방식을 도입해 피자를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콤비네이션’, 혹은 ‘슈프림’이라고 부르는, 페퍼로니와 야채, 햄 등을 얹은 피자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식 피자이다.

그러고 보면 피자처럼 세계 각국의 음식과 조화를 이룬 요리도 흔하지 않을 듯 싶다. 일본인들은 장어나 오징어 피자를, 러시아 사람들은 훈제 청어를 얹은 피자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고기 피자를 비롯해 감자 피자, 고구마 피자 등 다양한 종류의 피자들이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살찌는 음식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피자이지만 정작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피자는 기름기가 거의 없고 담백하다. 피자의 원조라고 불리는 곳은 바로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이다. 이탈리아琯湧?먹던 납작한 형태의 둥근 빵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오늘날의 피자 형태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말부터이다. 모짜렐라 치즈, 앤초비, 마늘, 올리브 오일 등을 빵 위에 얹어 먹었으며 토마토 토핑은 19세기 무렵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두 가지 피자는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가 있다. 마르게리타는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왕비인 마르게리타에게 바쳐진 것으로 토마토와 바질, 모짜렐라 치즈로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해 만들었다.

피자를 좋아하던 가난한 어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마리나라에는 토마토, 마늘, 오레가노가 들어간다. 내용물이 풍부하거나 양념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재료, 특히 반죽의 질에 상당부분 의존하게 된다. 또한 보통 오븐이 아니라 반드시 참나무를 땐 화덕에서 익혀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이런 ‘제대로 된’ 피자는 아무래도 집에서 해먹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에도 정통 나폴리식 피자집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한번쯤 담백한 본고장의 맛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


입력시간 : 2003-12-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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