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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사포
서정시·레즈비언의 원조가 되다
기원전 6C 호메로스와 어깨 견준 그리스 여류시인·문학과 예술의 중심






19세기 말 서양이 그 세력을 적극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구 위의 사람들 대부분은 서양에서 비롯된 기준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그 기준은 정치나 체제, 군사,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 철학이나 문학이 국가를 막론하고 인간을 표현하는 대표적이며 기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문화는 그 근본을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두고 있다. 비약을 하자면 지중해의 작은 나라 그리스에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지구상의 인간을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 중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라고 말해지는 시도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에는 걸출한 두 명의 시인이 있었다. 한명은 전쟁과 정치, 영웅담을 시로 엮어낸 서사시의 대가 호메로스이고 또 한 명은 인간의 가장 섬세하며 세밀한 감정을 시로 표현해낸 사포다. 사포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작은 섬, 레스보스에 살던 여류 시인이었다.


- 작은섬 레스보스 출신의 여걸

그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지만/내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그와 너가 마주 앉아/달콤한 목소리에 홀리고/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때면//내 심장은 가슴속에서/용기를 잃고 작아지네./흠칫 너를 훔쳐보는 내 목소린 힘을 잃고/혀는 굳어져/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내 연약한 피부아래/뜨겁게 끓어오르는 피는/귀에 들리는 듯/맥박치며 흐르네./내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하략)

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질투,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시로 낱낱이 표현해낸 사포의 시 ‘질투’이다. 인간의 행위나 역사,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을 서사시라고 부른다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을 담은 시를 서정시라고 부른다. 사포는 자신이 살아가고 사랑하며 느끼는 모든 것들을 시로 표현해냈다. 그녀의 시는 당대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오늘날까지도 그 시의 색은 바래지 않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포는 그녀가 살아 있던 기원전 6세기에도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서정시인이었고, 오늘날에는 서정시의 대명사며 시조로 알려져 있다.


- 사포의 생애

사포는 다작 시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그녀의 시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녀의 생애도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다. 사포는 기원전 617년∼ 560년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어난 곳은 그리스의 레스보스섬 미텔레네이고 귀족가문 출신이었다고 전한다. 사포는 안드로스섬의 케르킬라스라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 클레이스라는 딸을 하나 낳았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가족과 함께 2년 간 시칠리아에 망명을 갔었고 다시 레스보스로 돌아와 미텔레네에 자리를 잡았다. 이즈음 그녀는 남편을 잃고 홀로서기를 해야했다. 사포는 귀족집안의 어린 소녀들을 모아 교육을 하면서 살아갔다.

그녀가 레스보스섬의 뱃사공 파온과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의 고통으로 암벽에서 몸을 던져 바다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랑으로 인한 죽음은 서정시인으로 살았던 그녀를 더욱 신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레스보스섬의 소녀들

사포와 관련하여서는 그녀의 서정시와 함께 여성동성애자를 일컫는 ‘레즈비언(lesbian)이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레스보스섬의 사람이란 뜻이지만, 사포가 레스보스섬에서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여성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존경 받을 만한 학자나 시인들은 많은 젊은이들을 거느리며 그들에게 학문을 전수하고 어른으로 성洋求?것을 도왔다. 정식적인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하나의 무리를 이루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만들어갔다. 스승과 제자사이에는 거부감 없이 동성애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 어떤 죄의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 남자 귀족들은 사랑은 정신적인 부분을 공감하는 동성과만 나눌 수 있으며 여자와의 육체적 사랑은 다만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남성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그런데 레스보스섬에서 작은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남자들만이 가지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여성들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사포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는 남자 귀족들에게는 매우 자유롭고 이상적인 사회였지만 여타 계급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이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은 아이를 낳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필요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모든 것이 떨어지는, 고상한 정신적 세계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열등한 존재로 푸대접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포를 중심으로 하여 여성들만이 모여 그들의 예술과 학문 세계를 만들어갔다는 것은 대단한 파격을 의미했다. 사포는 어린 귀족 소녀들에게 시와 예술을 가르치고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도왔다. 그 사이에 여성들끼리의 성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의 보편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것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사포의 시에도 그러한 부분은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리하여 레스보스섬의 사람들이란 말, 레즈비언은 남성과 똑같이 조직을 만들어 공부하는 여성들이 있는 곳을 뜻하는 말이 되었고 이후 여성동성애자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사포는 남성중심의 그리스 사회에 당당히 이름을 남긴 몇 되는 여성 중 하나이다. 그녀는 남성들이 인정하려 하지 않던 여성들의 학문과 예술의 세계를 당당히 주장함으로써 그리스 남성사회에 도전장을 던졌고, 그녀의 시로 남성들의 감성을 사로잡아 그들을 무장 해제 시켰다. 사포는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여신과도 같은 존재로 숭앙 받고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몇 편 남아 있지 않은 그녀의 시속에 담긴 생생한 인간의 감정이 어떤 시대롤 막론하고 통했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섬세함으로 인간을 표현하고 인간을 공감 시킨 사포는 고대시기 그 존재를 알릴 수 없었던 여성들의 암흑기에 한 점 빛나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다.



김정미 방송 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09-0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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