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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페미니즘]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사유의 공간에 가둬 둔 그녀
그러나 누구의 여자도 아닌 그녀
고단한 삶 위안받을 낭만과 소외에 관한 이야기


누구나 마음 속에 낭만의 장소 하나쯤은 지니고 산다. 가끔씩 삶이 고달프게 느껴질 때, 뭔가 본질적인 내 모습을 잃고 세상 속에서 마구 상해간다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가끔 그 낭만의 환상을 꺼내 보며 그 속에 몸을 웅크리고 현실의 고단한 삶을 위안하곤 한다. 1994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통해 먼저 소개됐다, 개인 작품집 ‘열 세 가지 이름의 소설집’에서도 수록됐던 ‘하나코는 없다’(문학과 사상사刊)는 그 낭만의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낭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언가 환상이 필요할 만큼 우리의 삶이 고단하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소외시키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소외시킨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나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그 모든 소외들을 넘나드는 ‘하나코는 없다’는 농밀한 소외의 이야기이다. 1994년에 발표되어 이상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이 소설을 오늘 다시 꺼내 보는 것은 ‘하나코는 없다’가 오늘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유난히 돋보이는 코를 가져 ‘하나코’라는 별명을 지니게 된 한 여성과 그녀를 둘러 싼 몇몇 남성들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 중 한 명인 ‘그’의 목소리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베네치아로 출장을 떠난 그가 하나코를 기억하고 추억하지만,끝내는 만남을 회피하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서는 하나코를 소외시킨 ‘그들’의 폭력이 하나 하나 살아 난다.

한동안 하나코와 즐거이 어울렸으며, 하나코의 고상함과 다정함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즐겼고, 다른 친구들 모르게 자신만의 구질구질한 얘기들을 그녀에게 늘어놓곤 했던 그들은 그러나 단 한 번도 하나코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코에 관한 한 모두 최소한의 인내심과 배려가 부족했다. 그녀를 마치 공기나 온기처럼,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은 어느 날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함 없는 하나코의 모습과 맞닥뜨리지만 오히려 질리고 만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억지로 노래를 시켜 궁지에 몰아 넣는 수법으로 자신들의 모임에서 영원히 퇴출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코’라는 ‘암호’로 자신들의 잘못을 교묘하게 은폐한다. ‘그녀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마음과, 그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자제하고 싶은 두 가지의 상반된 욕구가 교묘하게 절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하나코’였던 것이다.


• 물과 안개의 도시에서 '자아 찾기'
그렇게 하나코에 얽힌 기억들을 펼쳐보는 그는 물과 안개의 도시, 온통 환상적인 상념에 잠기게 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미로를 방황하며 하나코를 갈구한다. 그가 찾고 싶은 것은 잃어버린, 그의 소중한 자아일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미로만큼이나 얽혀,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 아내와의 불화로 얼룩지고, 분주한 일상에 함몰되어 살고 있는 그에게 이미 진정한 자아란 소외되어 버린 지 오래인,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로 하나코는 더욱 그의 심연을 두드린다. 그는 하나코를 만나려 시도하고 하나코는 반갑게 답하지만, 결국 그 만남을 회피하는 것은 하나코가 아닌 그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도시 베네치아를 떠나가는 그에게는 “그렇게 날 몰라요? 그렇게도?”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던 하나코의 목소리가 배음처럼 울릴 뿐이다.

그보다 앞서 이탈리아를 찾았던 그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그토록 갈구한 하나코를 마주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삶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처음 부분에서) ‘서로 할말이 딱히 있지도 않고’ ‘서로를 열렬히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지만, 친구니까’ ‘건강 식품 광고에 나오는 이상적인 가족 세트처럼’ 가족까지 동반해 만나곤 했던 그들, 그들을 다시 만난 그는 이전 다른 친구들이 그랬듯이 ‘한번도 그의 의식에 와 닿지 않았던’ 이탈리아와 베네치아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그렇듯이 결론조로 세상이 그런대로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잘 크고 아내들과는 근본적인 마찰만 피하면 잘 지내며, 다음날은 오늘보다 조금 덜 피곤할 것이며, 아마도 조금 더 풍족할 것이라는 정도로 요약되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이튿날의 출牡?위해 흩어’진다.

자, 이렇게 그들의 ‘삶은 너무 원대한 이유로’ 늘 분주하다. 그들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일상의 분주한 늪, 풍족함에 대한 온갖 욕망들로 점철된 그 늪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낭만의 장소, 하나코가 절실하다. 그는 자신의 존재 기반인 낭만의 장소, 하나코를 잃지 않기 위해서, 하나코의 실체와 절대로 만날 수 없다. 하나코의 실체를 대면하는 일. 즉 그녀의 가족 사항과 일상을 묻고, 그녀의 생활 공간으로 잠시나마 발을 들이게 되면 그 낭만적 환상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본주의의 일상이라는 병에 찌들려있는 한 그 낭만적 환상은 치명적으로 절실하다. 그래서 그들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해서 그 치기 어린 순수한 자아에 대해서, 그 모든 것들을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장소로서 하나코를 온전히 간직한다. 그들의 존재가 흔들린다고 느낄 때, 그들이 누군가의 순정이 필요할 때, 그들이 마음껏 낭만적이고 싶을 때 그들은 다들 하나코를 꺼내어 본다. 그리고 하나코에 비춰진 과거의 자신들을 추억한다.


• 하나코와 장진자, 서로 다른 존재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코’를 온전히 가질 수 있을 지라도, ‘장진자’(하나코의 본명)에는 결코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없는 존재, ‘하나코’는 그들은 존재 기반이다. 딜레마는 그들이 그토록 한 번도 존중하지 않았던 하나코가 없으면 그들의 존재도 뿌리채 흔들릴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 그런 ‘하나코’와는 별개로, 장진자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일구어내어 어느 날 촉망받는 디자이너가 되어 있다. 결국 없는 것은 하나코가 아니라 그들이다.

하나코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장진자’라는 본명을 찾지만, ‘그들’은 아무런 이름도 없이 P나 J나 ‘그’로 불릴 뿐이다. 결국 부재하는 것은 하나코가 아니라 그들이며, 그들은 영원한 익명으로 남는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촉망받는 디자이너가 된 하나코의 기사를 보고도 ‘언제, 어떻게 하나코는 그들이 모르는 사이 이렇게 살았던 걸까’라고 중얼거리며, 잡지에 실린 사진 속에서도 ‘오똑하게 돋아난 코가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는 사실만 되뇌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씁쓸하다.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약한 타자를 자신의 필요로 어떤 상상적 존재로, 환상과 낭만의 편안한 공간으로 가둬 놓으며 그들의 존재를 소외시킨다. 그러나 알고는 있을까? 그들이 타인을 소외시키는 그 자리에서 이미 자신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우리는 자신의 소외를 견디기 위해 타인을 소외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코’는 그리하여 모든 소외된 것들의 이름이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아주 손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몇 곱절 교묘하게 소외되는 존재들과 소외시키는 존재들이 있는 한 ‘하나코는 없다’는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든 거대한 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느낌이, 또는 누군가를 고의로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소외시킨다는 혐의가 느껴질 때, ‘하나코는 없다’를 다시 한 번 펼쳐보자.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의 ‘하나코’들을 다시 한 번 보자. 그들의 실체에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다가가 보자. 그 ‘하나코’들에 정당한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바로 당신의 정당한 이름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


입력시간 : 2004-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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