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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페미니즘] 오정희의 <유년의 뜰>
가장의 부재와 모성의 부재



<유년의 뜰> 오정희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1998.



1968년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하여 70, 80년대 한국의 여성문학을 대표해왔던 오정희의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을 띤다. 무엇보다 주목해야할 것은 그 양상이 매우 여성적이라는 점이다. 흡사 수많은 인상들과 흔적들이 모여 소설을 이루는 듯, 그의 소설은 삶과 존재의 진실에 관해 나지막한 목소리들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엮어 놓는다.

저자는 많은 부분 ‘기억’과 ‘회상’에 의지하여, 과거의 흔적들과 편린들을 짜기운 이미지들의 배경을 만들어내며, 그 과거는 현재와 교차하면서도 개별적 시간으로 존재한다. 끊임없는 연상에 의해 풀어져 나오는, 결코 전체화하지 않는 끊임없는 환유들이 현재의 진행 속에서 과거를 소생시키는 것이다.

또 한 특징은 ‘감각’으로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점인데, 그리하여 오정희 소설에서는 “뚜렷한 이유 없이”,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등의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성적 사유보다는 주체를 비우고 주체의 감각만을 서술하는 방식, 볼 수 있는 것을 신뢰하기보다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향해있는 시선, 설명이나 해석보다는 암시와 여운이 주요한 점 등이 오정희의 소설을 더욱 여성스럽게 만든다. 그리하여 오정희의 소설은 삶이란 결코 전체화할 수 없는, 수많은 결들의 얽힘과 짜임이라고 말한다. 억압적인 세계에서 존재의 진실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파편화된 개개인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갖은 성적 규범과 억압을 뒤흔들어 놓은 전쟁
그의 초기 대표작인 <유년의 뜰>은 전쟁 중 가장이 부재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고스란히 복원한다. 전쟁은 한 가족의 구조를 파탄시키기에 이르는데, 이 작품에도 오정희의 많은 초기작들에서 볼 수 있는 ‘나쁜 어머니’가 등장한다. 초기의 오정희에게 모성은 미화되어야 할 가치이기보다는 넘어서야 할 ‘신화’였다. 가부장제의 현실을 살아가며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되어야 했던 여러 성적 억압을 오정희는 많은 소설에서 반복한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를 제외하고, 화자인 나 ‘노랑눈이’의 가족은 할머니, 어머니, 큰 오빠, 언니, 작은 오빠, 젖먹이인 남 동생으로 이루어진다. 전쟁은 이 가정에 엄청난 혼란과 고난을 던져주게 되는데, 피난촌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는 읍내 밥집에서 일 하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타 소설에서처럼 자식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모성의 신화를 살아가는 여성이 아니다.

늘 술에 취해 들어오는 그녀는 집을 나갈 때마다 곱게 화장을 하고 가짜 점까지 그리는,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해방된 성적 정체성을 누리는 여성이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반감에 불타는,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큰 오빠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폭력(언니를 심하게 구타하는)으로 푼다. 한때 기생이기도 했고,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 “꽃잎 같다는 인상”과 고운 자태를 지녔던 할머니는 작정을 하고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닭을 훔쳐다 “임자 없는 닭”이라고 우기며, 우리들을 먹인다.

언니는 밤마다 읍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밤거리의 음험하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열기, 끈끈한 정념으로 가득 찬 달착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아직 젖먹이인 막내는 병약해서 곧 죽게 될 것만 같다. “걸귀가 들렸는지 노상 먹을 생각 밖엔 없는” 나는 강박적인 식탐과 도벽에 시달린다.

“늙은 갈보”가 된 어머니와 “억눌려져 자라지 못하는 욕망”을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으로 풀어내는 오빠
한 장면을 보자. 저녁 무렵 어머니는 화장을 하고, 오빠는 “등뒤의 작은 시위”로, “끝없이 반복되는 단조롭고 긴 소절의 노래”를 부르는 듯이 소리 높여 영어책을 읽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은밀히 조성되어가는 팽팽한 공기”가 감돈다. “나날이 새롭게 번쩍이며 한구석에 버티고 있는” “이물감”을 불러일으키는 “등신대 거울”이 그 좁은 방안을 비추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언니를 때리는 오빠는, 어머니의 “수상쩍은 외박이 잦아지자” “암암리에 아버지?위치를 侈韆臼느습? 공공연히 자행되는 매질로 나타냈다.” 그러나 “오빠는 자신이 가장임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 언제나 침울하고 긴장으로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었다. 그 긴장으로 억눌려져 자라지 못하는 욕망, 자라지 못하는 슬픔, 분노 따위는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어머니는 급기야 사람들에게 “늙은 갈보”라는 말까지 듣지만 태연하고, “읍내 정육점 사내와 정분”이 나 “그 사내의 마누라에게 머리채를 잡혀 읍내를 몇 바퀴 돌기”까지 한다. “어머니와 오빠 사이의 긴장은 베일 듯 날로 위태롭게 팽팽해졌다.” 그러다 언니를 때리던 오빠는 급기야 한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비추던, 저녁마다 화장을 하는 어머니가 들여다보던 등신대 거울을 깨뜨리고야 만다.

이런 가족의 이야기에, 바람이 나 “읍의 미장원에서 머리를 지져붙이고 올망졸망한 다섯 아이를 버려둔 채 도회지로 달아나버린” 순자 엄마의 이야기,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가 아버지에게 끌려들어와 자물쇠 잠긴 골방에 갇혀버린 부네의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소설 중간에 배치된다.

특히, 주인집 맏딸 부네를 생각하면 나는 “이상한 두려움과 가슴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슬픔에 잠기곤 했고”, “물에 잠기듯 잦아드는 부네의 방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방밖으로 나오지 못한 부네는 어느 날 혀를 깨물어 자살을 하고 만다. 성적인 방종에 대한 대가가 그녀에게는 죽음이었던 것이다.

화자인 나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와 부네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해 반감은 갖지 않는 내 모습과, 부네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나를 그려낸 것은, 작가가 가진, 여성이라는 육체에 갇힌 억압적인 삶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이런 가부장제에 대한 거부의식의 기저에는 여성의 의미와 조건이 사회ㆍ역사적인 제도, 조건, 이데올로기와 맞물려서 규정된다는 사실이 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되는 아버지
그러면 아버지는 어떠한가. 나는 이발사의 머릿기름 냄새를 맡고 그것이 “친숙한 냄새”임을 인식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해내지만, “그러나 이 모든 기억 역시 내 상상이 꾸며낸 더 먼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온다는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정다운 기억,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얼마쯤의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임자 없는 닭의 맛에 길들여지듯, 어머니의 지갑을 더듬는 내 손길이 점차 담대해지고 빼내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듯, 할머니가 단말마의 비명도 없는 도살의 비기를 익혀가듯 (…) 아버지 역시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 있던 그 긴 시간의 갈피 짬마다 연기처럼 모호하게 서린 낯섦은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 재연될 것이기에 차라리 그립고 정답게 아버지를 추억하며 희망 없는 기다림으로 우리 모두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거나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나 아니었는지.” 이처럼, 이제 아버지는 그의 돌아옴이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차라리 영영 돌아오지 않아야만 ‘그리움’의 자리에서 온전할 존재, 희망이 없어야 온전히 기다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아버지를 포함해서 가족 개개인 모두는 외면적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적 변화를 겪었고, 그 가족의 구조는 파탄에 이르렀으며, 그것은 회복하거나 복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전쟁은 끝나고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교장실에서도 케이크를 훔쳐먹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이내 케이크를 꾸역꾸역 토해내며 “까닭 모를 서러움으로 눈물이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어두운 똥통 속으로 어디선가 한 줄기 햇빛이 스며들고 눈물이 어려 어룽어룽 퍼져 보이는 눈길에 부옇게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빛 속에서 소리치며 일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 앞에서 나는 기쁘기보다는 서럽고, 그 거부반응으로 구역질까지 한다. 아버지가 부재하는 동안 가족에게 일어난 외적ㆍ내적 변화들은 아버지의 현존을 받아들이기에 결코 수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서 재연될”, 이미 변화된 성 정체성을 갖고 있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공포에 가깝다. 아버지가 부재했던 내 유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유년의 뜰>은 아버지가 귀가하는 지점, 그 폭풍 전야에서 이렇게 마감이 된다. 물론 그 다음은 독자의 몫이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면, 변화된 가치는 ?다른 변화, 새로운 현실을 원한다는 점일 터이다.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


입력시간 : 2005-05-2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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