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치료 ⑥

통계청이 지난달 18일 발표한 ‘사망 원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암 사망자 수가 6만5,000명에 이르고, 암 사망률도 1995년 인구 10만 명당 110.8명에서 지난해 134.5명으로 10년새 21.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암은 사망 원인 순위에서 22년째 줄곧 1위이다.

미국의 경우 한 해 암 사망자가 60여 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암 사망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인구 수는 한국의 5배이며 사회수준은 한국과 비교하면 10년이나 앞서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10년 후인 2015년께가 되면 한국의 암 사망자 수는 10만 명을 웃돌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보통 연간 암 사망률이 10만 명당 200명꼴이라는 말은 사망자 3명 중 1명이 암으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망자 중 암 원인은 26.7%. 3명 중 1명꼴에 근접한 수치이다. 60세 이상 연령층에서는 40%선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제 유명 인사의 암 사망은 새로운 뉴스거리가 아니다. S그룹 C회장, P그룹 R회장 등 암으로 사망한 재벌 총수들이 많다. 미국에서 최고 권위의 병원에 입원했지만 대부분 장기 생존에는 실패했다. 유독 폐암이 많다는 점도 이채롭다.

한의학에서 폐는 ‘양중지태음(陽太中陰之)으로 금기(金氣)를 생하고, 괘상으로는 태괘(兌卦)’이다. 금기는 백색으로 철기문명의 대표이며, 공격적 성향을 나타낸다. 독선적 카리스마형이라 할 수 있다. 카리스마가 폐기를 상하게 한다는 의학적 가르침이다. 주로 남성형이다. 여성형은 이 공격성향을 참고 살아 발병하게 된다고 한다.

동의보감 내경편(內景篇) 폐병증론(肺病證論)을 보면 ‘크게 마르고 가슴에 기가 통하지 않아 숨쉬기가 어렵고 몸이 들먹거릴 정도로 숨이 불편하면 6개월 만에 사망한다’는 구절이 있다.

‘진장맥(眞贓脈)이 나타나면 180일 만에 필히 죽는다’는 말도 있다. 이는 현대 의학의 관점에선 폐암 4기에 해당한다. 진장맥이란 극심한 공포감을 느낄 때 잡히는 맥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흔히 4기 진단 후 생긴다.

‘폐기가 끊어지면 3일 만에 죽는다’고도 하는데, 이때는 ‘기출이불반(氣出而不返)함을 보고 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흡기가 어려워지는 호기형 호흡을 일컫는다. 의성(醫聖) 허준은 이처럼 폐 치료에 있어서도 가치(可治)와 불치(不治)를 임상적으로 잘 정리해놓았고 음과 양, 즉 보폐(補肺)와 사폐(瀉肺)를 철저하게 구분하여 진료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허준의 가르침대로 암 치료에 음양을 구분한다면 평균 6개월에 머물고 있는 폐암 4기의 생존 기간을 과연 얼마나 연장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최근 한 심포지움이 시사점을 던진다. 지난달 17일 개최된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주관ㆍ세계보건기구(WHO) 후원의 ‘한의학 암 치료 근거중심 심포지움’에서 폐암 환자 4명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가 그것.

소세포 폐암, 비소세포 폐암, 다른 장기서 전이된 원인불명의 폐 말기암, 간 전이성 폐암 등 4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3명은 만 9년째 생존 중이고 1명은 ‘간암 이후 10년간 생존ㆍ전이 후 3년5개월째 생존’ 기록을 세웠다. 최초로 ‘음양 구분에 의한 폐암 치료 성공’ 사례인 셈이다.

폐암치료한 성공한 배강수(64) 씨는 비소세포성 폐암이 뼈까지 전이되었으나 장기 생존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는 화학 항암주사를 단 한 번 맞았을 뿐 2차 항암 치료를 받지 못했다. 패혈증으로 항암주사를 중단하고 다시 방사선 치료를 시도했지만 뼈가 천공되어 포기하고 극심한 통증 때문에 몰핀주사를 맞으며 내원했다.

그는 남성 폐암 환자의 특성을 그대로 지녀 강한 카리스마와 누구의 말도 직접 듣기 전에는 믿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폐음허(肺陰虛) 사례다.

여성 환자도 있었다. 25년간 잡화상을 한 그녀는 평생 자신의 주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전통적 여성상이다. 이 경우는 폐기허(肺氣虛)이다.

소세포 폐암에 대한 수술을 했지만 암 세포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후 내원하여 암을 극복했다. 보통 폐암의 치료 성적은 3기가 7~9개월, 4기가 6개월 생존 정도이다.

고(故) 이주일 선생의 사망 원인은 9대 독자의 죽음 탓이었다고 나는 본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그에게는 사법이 아닌 보법으로 치료를 했어야 했다.

‘세상에 음양의 구분이 있듯 폐암도 음양 구분을 해야 치료가 된다’는 의성 허준의 가르침을 되새겨볼 때이다.


최원철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