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피부에 생긴 물집 소독 고통… 손가락 등 붙을까봐 늘 붕대로 칭칭"고통보다 더 힘든 건 주위의 편견"… 어린이집도 어렵게 입학

“엄마,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울게.”

사소한 외상이나 충격에도 피부가 벗겨지거나 수포(물집)가 생기는 피부 질환을 앓는 주형(5)이는 매일 밤 온몸의 수포를 짜주고 소독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곪아서 부풀어 오른 상처에 소독약을 묻힌 솜이 닿을 때면 아무리 입을 굳게 다물어도 고통스러운 신음이 배어나온다. 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엄마 정조식(42) 씨는 “아픈 애기들은 철이 일찍 나는 것 같다”며 “아파도 엄마가 힘들까봐 울지 않으려고 참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더 아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매일 밤 고통스러운 시간을 되풀이해온 지 벌써 다섯 해째. 조그만 몸에서 붕대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고통은 엄마 아빠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 세상 밖으로 나오던 순간부터 시작됐다. 분만 과정에서 손목과 발목의 피부가 벗겨져 벌겋게 부풀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의원에서는 단순 바이러스성 수포일 수 있다고 지켜보자고 했다.

하지만 이튿날이 되자 증세는 더 심각해졌다. 아기 얼굴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수포가 커다랗게 생기더니 점점 번져갔다. 간호사들이 만질 때마다 온몸이 수포로 뒤덮였다. 뾰족한 치료법이 없었다. 결국 보름 뒤 병원 문을 나설 때는 온몸에 붕대를 동여맨 미이라 같은 모습이 됐다.

대학 병원의 조직 검사에서 수포성 표피 박리증으로 진단 받았다. 그러나 큰 병원에서도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상처가 나면 감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만 했다.

이때부터 주형이의 큰 누나 지혜(18)는 아픈 동생을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혹 외국에는 치료법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근본적인 치료법은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 계속 물집이 생기다 보면 손가락이 서로 달라붙을 수 있다고 해서 손가락 하나하나에 붕대를 감아줬다. 그래서인지 주형이의 손가락은 붙지 않았지만 온몸 곳곳이 상처 투성이다.

아이와 부모의 고통은 하루하루 반복되며 끝없이 이어졌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지만 매일 수포를 터트리고, 항생제와 바셀린을 발라주는 시간의 고통은 무뎌지지 않았다. 한 번 씻기고 치료하는 데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치료 시간이 아니더라도 온몸이 쓰라린 고통으로 어린 아가는 밤새도록 울며 지새는 날이 많았다. 아기 울음 소리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다. 아기 울음 소리는 끊이지 않는데 아기 얼굴은 한 번도 볼 수 없었으니 주변의 의혹이 커질 만도 했다. 엄마는 출산 이후 돌이 넘도록 바깥 외출 일체 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털어놨다. “옛날 어른들이 아픈 아이는 밖으로 돌리지 말라고 해서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돌 잔치도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조금 더 크면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좋아지면 사진을 찍고 잔치도 해야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주형이보다 한 살 많은 누나 주원이만 해도 돌상을 받고 사진도 찍었는데···” 엄마의 얼굴이 붉어진다.

“살면서 그렇게 큰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낫겠거니 했죠. 병원에서는 낫기 어렵다고 해도 그래도 이렇게 오래 고통 받을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엄마는 이제 울지 않는다. “처음 3~4년은 내리 울며 지냈어요. 하지만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아이들은 기가 죽는 것 같더군요.”

가족 모두의 심신이 병들어 갔던 암담한 시간이었다고 엄마는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주형이는 자랄수록 산만해졌고, 주원이는 손을 내리 빠는 버릇이 생겼다. 남편 역시 좀처럼 다친 마음을 추스리지 못했다. “병원에서 임신 8개월쯤에 성별을 알려줬거든요. 그때 아들이라고 해서 남편이 굉장히 좋아했는데, 미이라 같은 모습으로 나왔으니 충격이 컸죠.” 주형이 아빠의 손에서는 담배가 떨어지지 않았다. 바깥 일을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가족들은 주형이의 병마를 받아들이고 함께 아픔을 줄여나가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부터 바깥 일을 시작한 엄마가 직장에 나갈 때면 (교대로 근무하는) 아빠가 주형이의 상처를 치료하고 아이들을 보살핀다.

몇 달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형이도 이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환자 모임에 가면 엄마들이 불안해서 애를 전부 밖에 내보내지 않는데 저는 가능하다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라고 말해줘요. 사회성을 기르고, 엄마나 애기의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들 수 있거든요.”

아이가 다쳐서 올 때는 속상하지만 “부모가 안 볼 때 다친 건 어쩌겠냐”며 담담히 말한다. 사실 주형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과정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전염병이 아니건만, 일부 학부형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때문에 여러 어린이집에서 딱지를 맞다 교회를 매개로 현재의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지금도 종종 주형이는 아이들이 놀린다고 울고 와요. ‘곁에 오지 말라’, ‘냄새 난다’며 따돌려요. 사실 상처가 심하면 냄새도 나거든요.” 이 때문에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누나 주원이는 든든한 동생의 보호자가 다 됐다. “동생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린 마음에도 크게 작용하는 모양이에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주원이가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군요.” 한창 엄마 손길이 그리운 나이에 ‘애어른’으로 통하는 주원이 얘길 듣고 엄마는 또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하나되어 병마와 싸워가고 있지만, 미래가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주형이가 지금은 그래도 어리니까 활달한 편인데, 자라서도 주눅들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까. 사춘기 때 방황하지 않을까. 장성하면 결혼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아빠 김성곤(44)씨는 “주형이가 어른이 됐을 때는 희귀병 환자들이 거리낌없이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발병 원인 및 주요 증상

사소한 외상에서 피부와 점막에 쉽사리 수포가 형성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우리나라에는 환자 통계가 없지만 미국의 경우 대략 2만5,000~5만 명이 이 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병 원인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 생산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피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 유전자와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단순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두 유전자 중 하나만 이상 유전인자를 지녀도 발병하는 우성 유전이며, 경계성은 모두 이상유전인자를 지녀야 발병하는 열성 유전이다. 이영양성은 두 경우가 모두 있다. 자녀가 발병할 확률은 우성 50%, 열성 25%. 이밖에 면역 체계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 증세는 유사하나 유전성이 없고 성인이 된 후 발병하는 후천성 수포성 표피박리증도 있다.

증상이 출생시나 영아기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건강 상태를 최대한 양호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부모가 질환에 대해 이해하고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진단 및 치료

특징적인 임상 및 조직학적 소견과 가족력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좀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면역형광 검사와 전자현미경 검사 등의 특수 검사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이나 약물이 없어 물집의 생성을 최대한 막고, 반흔이나 감염 없이 물집이 잘 아물게 하는 등의 보조 치료만 실시되고 있다. 우선 환자들은 약간의 외상에도 물집이 발생할 수 있어 항상 외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집이 생기면 소독된 가위나 바늘로 터트리고 항생제 연고를 바른 후 소독된 거즈로 덮고 붕대를 감는다.

가려움증이 동반돼 상처부위를 긁기 쉬우므로 가려움증을 줄이기 위해 항히스타민제의 복용도 필요하다. 더울 때 물집이 더 잘 생기므로 실내온도를 서늘하게 해야 하고, 의자 등은 접촉면이 부드러운 것으로 사용하며, 옷 양말 장갑 등도 자극적인 것은 피해야 한다.

이영양성에서는 손가락ㆍ발가락이 물집으로 인한 상처와 반흔 때문에 서로 붙을 수 있으므로 거즈 등을 사이에 끼워 예방해야 하며, 이미 붙었을 때는 수술을 통해 분리시킨다.

환자들 중 일부는 구강과 인두, 식도 등에 물집으로 인한 상처로 음식물을 삼키는 데 고통을 겪기도 하며, 음식을 섭취하기 힘들 정도로 식도가 좁아져 식도 확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