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책임’나누며 미래로 나아가야$ 동북아 안보 현안 최대 관심사 부상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이후 뒷얘기가 무성하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던 한반도 안보상황이 극적인 협상국면으로 전환된 지도 일 년이 넘었지만, 비핵화를 위한 결정적인 문턱은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바라는 마음이야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일 테니, 어렵사리 성사된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과 분석만이 최선의 노력이다.

2차 회담 결렬에 북^미 책임 나눠야 미래 있어

정상회담 첫날인 2월 27일 친교만찬(social dinner)이 열리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사이의 최종 조율이 진행될 것이라고 짐작되었지만, 당일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안테나에 두 이인자의 만남은 포착되지 않았다. ‘김혁철-비건’ 라인으로 상징되던 실무협상이 정상회담 합의문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최고 참모들의 손을 거친 정지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돌이켜보면 이런 상황들이 모두 합의문 도출 불발을 암시하는 부정적인 징조였던 것이다. 또 국내 언론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트럼프 대통령이 큰 회담을 앞두고서도 참모들과 줄곧 국내정치 얘기만 나눈다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전언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만을 탓할 수도 없고, 미국 국내정치 사정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미정상회담 결렬이 미국 언론 톱기사를 장식하던 마이클 코언 관련 뉴스를 잠시나마 사라지게 한 건 맞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국내정치와 한반도 문제에 연계성에 대해서는 가능한 선을 그어야 한다.

세상에는 어느 한쪽만이 잘못한 일은 없다. 북한과 미국이 똑같이 협상 결렬의 책임을 나눠져야만 미래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다. ‘완전한 비핵화’를 희망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잘 알면서도, 왜 북한은 ‘부분적 비핵화’ 카드 하나만을 준비해 온 것일까? 핵탄두, ICBM, 농축우라늄 등 이미 확보해 놓은 핵능력을 조금이라도 포기하겠다는 다짐 없이 미국이 북한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2016년 이후의 제재 목록을 해제해 줄 것이라고 정말로 믿었던 것일까? 잘 알려져 있듯이, 영변의 제거는 북한이 향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핵능력을 제거하는 것이지, 이미 보유한 핵탄두 등의 능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향후의 전개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제재 해제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북한의 속내가 완전히 공개되었고, 또 기존에 보유해 놓은 핵무력을 협상의 카드로 삼지 않겠다는 생각 역시 공개되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완성’을 선언한 북한의 입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선중앙TV는 지난 6일 오후 8시 30분부터 약 1시간 15분 동안 ‘김정은 동지께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공식 친선방문하시었다. 주체 108(2019). 2.23~3.5’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내보냈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작별’ 장면. 연합

평생을 협상만 하고 살아온 노회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아직 젊은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절대복종 하는 참모들에 휩싸인 채 국제사회의 리더를 상대로 협상을 해 본 경험이 전무한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 제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협상을 접근하는 북한의 자세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유지해온 생존 방식을 갑자기 바꾸는 일은 어렵다. 70년 가까이 계속된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일종의 ‘일상화’된 위협 의식이 북한 사회 전체에 만연한 점도 잘 이해한다. 거대한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담판을 해야 하는데, 북한이 가진 협상카드라고는 핵무력뿐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서 치켜세워준 ‘북한의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의 구체적인 액션을 주저하는 북한이 매우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 중재 외교 시험대에 올라

우리 정부의 중재 외교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본다. 사실 작년에 진행된 극적인 협상국면에서 우리 정부는 두 차례에 걸친 중재자 역할을 통해 북미간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첫 사례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한참 신경전을 전개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한 바 있다. 내용은 회담을 연기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취소라고 표현해도 무방할만큼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6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전격 회동하여 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 한 차례는 작년 7월 초 소위 ‘빈손 방북’ 논란이 일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직후였다. 김정은과의 면담에서 실패하고 비핵화 관련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하던 상태에서,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문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북한의 진지한 입장을 유도했고, 이를 계기로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유엔정상회담을 통해 북미간 대화의 불씨를 살려낸 적이 있다.

물론 작년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당시는 북미간 비핵화에 대한 원칙론적 합의를 목표로 한 회담을 이어가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외교전이었다면, 지금은 미국과 북한이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카드를 확인한 다음에 비롯된 실리싸움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영변 이외 시설에 대한 포기 의사가 없다는 점, 그리고 경제제재가 매우 고통스러우니까 하루라도 빨리 해제를 해달라는 북한의 입장은 모두 공개되었고,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입장도 모두 공개되었다. 미국은 일관되게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면 북한 경제의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재역할이 어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비핵평화’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독창적인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북한 모두를 어느 정도 만족시킬만한 협상안을 만들어서 평양과 워싱턴을 상대로 한 특사 파견 등과 같은 중재를 시도해 봄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기존에 논의가 되는 ‘영변 플러스 알파’라는 접근법에 따라 영변의 완전 폐쇄에 동의하고, ‘플러스 알파’는 핵 리스트 제출 시점을 밝히고 또한 전체 비핵화 로드맵에 동의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단, 한국의 중재외교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과 북한 모두의 속셈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 외교 역량으로 세계 최강대국의 외교전략과 70년의 생존방식을 고수하는 북한의 속내를 정확히 읽는 일이 무척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니고 북한과 미국의 외교전략을 동시에 읽을 줄 아는 당사자가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동시에 가지게 된다.

북^미 상대 협상 재개 과정서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들

다음으로는 정부가 북한과 미국을 상대로 협상의 재개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문제는 물론 동북아 지역안보 질서 등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므로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요구된다. 대체로 ‘미중경쟁과 동북아’, ‘비핵화-평화의 연계성 문제’, 그리고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균형’ 이렇게 세 가지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하는데, 각 사안에 대한 대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핵 문제가 동북아 안보 현안의 최대 관심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동북아 안보질서의 복잡한 국제질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복잡한 ‘외교 체스판’이 되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핵심적으로 미중경쟁과 연동되어 동북아 안보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동맹 전략 변화, 북미 및 북일 수교에 따른 제2의 데탕트, 다자안보대화 출현의 촉진, 미중경쟁 가속화 혹은 완화 등과 같은 문제들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마디로 한반도 평화 정착은 미중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완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예상을 깬 북한의 핵개발 속도전을 돌이켜 보면, ‘미중경쟁’ 시기의 도래를 생존을 위한 적기로 판단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미중경쟁은 향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핵심적인 변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8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다. 연합

미중경쟁이 예상보다 심화되고 두 국가 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불신이 심화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매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면에서 미중 모두 북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지지하는 상황이므로,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자체에 대한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반도 평화체제의 전개 과정이 미중경쟁의 전개 과정과 밀접하게 맞물릴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일종의 미중간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미중간 공감대가 동북아 안보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관련하여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가 미중간 경쟁을 일정 부분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향후 상당한 시점까지 미중관계는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일 것인데, 지금까지 갈등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알려진 한반도가 평화체제 추진으로 인해 협력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전환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남중국해 문제, 에너지 문제, 환경 문제 등 다른 영역에서의 갈등이 보다 구체화되는 반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협력적 모멘텀이 확보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또 다른 관점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미중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분석 역시 가능한데, 이러한 분석은 과거의 경우 북한 문제가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는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존재할 때는 미중간 북한문제 관리의 차원에서 합의가 가능했었다는 설명을 근거로 한다.

북핵 위기가 일정한 수준에 머무를 때에는 한반도 및 동북아에 급격한 세력관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미중간 협력이 가능했지만, 일단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된다면, 오히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경제성장 전략, 북한사회의 개방 방식, 북미중 관계 등을 놓고서 미중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이러한 전망은 북한 문제에 대한 미중간 갈등의 심화가 북한 핵무력이 과도한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일정한 관리 하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북한 핵문제가 한반도 및 동북아 범위를 넘어서고 북한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미중간 담판이 필요한 상황이 도래하자, 그동안 수면 하에 잠복해 있던(한반도 주도권 쟁탈) 미중갈등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는 분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둘째, ‘핵-평화 연계성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하여 비핵화 추진이 전제가 된 한반도 평화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가지는 사안의 위중함을 고려할 때 대체로 이해할 만한 접근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핵무기가 가지는 억지력 확보라는 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어차피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핵무력의 실제 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한 ‘상호확증파괴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2017년 11월 화성15호 실험을 통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운용 능력 확보 역시 과학적 엄밀성에서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 역시 다수 있었다. 결국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개한 군사력 시위는 다분히 정치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의 핵개발이 가지는 군사위협적 의미는 물론 정치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인정한다면, 핵포기를 시키기 위한 평화의 보장 역시 정치적 고려 차원에서 접근하는 성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 추진 상황에 연동된 평화프로세스의 전개는 정치적 유연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 평화프로세스는 부분적인 대북 제재의 해제는 물론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의 속도 등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다소 지루하게 전개된 북미간 협상의 신경전은 서로에게 유의미한 학습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효용성이 작은 소모전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1차 북미정상회담과 2차 북미정상회담 사이 8개월의 시간동안 북한과 미국의 주장은 결국 북한이 제시하는 비핵화 의지 및 조치들과 등가성을 가지는 미국의 대응조치는 무엇인가의 문제인데, 이것을 쉽게 설명하자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누가 더 많이 양보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2차북미정상회담의 교훈을 발판삼아 향후 협상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누가 얼마나 더 손해를 보느냐의 관점에서 벗어나 ‘비핵화-평화’ 연계의 정치적 자율성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균형’에 대해서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장 대표적인 논쟁의 하나는 비핵화 추진 수준과 남북한 간 교류협력의 추진 수준이 합리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핵화보다는 교류협력을 먼저 추동하여 추후 비핵화 문제로 확산되는 전환효과(spill-over effect)를 노렸던 햇볕정책도, 또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한 행동이 선행되어야 경제협력을 포함한 교류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보수주의적 접근도 모두 정답은 아니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따라서 향후에 전개될 비핵화 과정과 교류협력 과정은 적절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비핵화와 교류협력의 조화로운 병행은 각각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의미한다는 차원에서 ‘한미관계-남북관계’ 조화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핵화를 실행하는 노력은 한미 간 긴밀한 협조체제를 통해서 이뤄져야 하고, 교류협력의 추진은 남북한간 호혜적 이익에 기반한 공동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합의문 도출 실패 이후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과도한 의욕과 조급증으로 인해 무리한 대북사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이럴 때일수록 향후 북미간 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북한문제 해결을 둘러싼 해법은 국내정치와 강하게 연동되어 있다. 향후 정부는 남북관계 사이의 연계성에 더욱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베트남 회담에서의 합의문 도출 실패로 인한 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비핵화 추진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남북협력 추진과의 정교한 균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방향

북미 양국은 최근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통한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비핵화의 경우 영변핵시설 동결 및 궁극적인 폐기가 약속되면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일종의 단계적 비핵화 과정이 본격 시작된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국 이번에도 북미간 불신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북한이 보유한 현 시점의 핵무력 포기가 전제되지 않은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핵무력을 당장 포기하기 어려우면 언제까지 비핵화를 완성하겠다는 로드맵이라도 확인을 해줘야 할텐데 북한에게는 이조차도 쉽지 않은 결정으로 보인다.

비핵화 관련 실질적인 성과가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북한이 만족할만한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게 경제 제재해제를 포함한 평화제공의 실질적인 혜택을 안겨줄 것인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수십년간 지속된 대북정책의 기능주의적 한계가 안고 있는 ‘안보-경제’ 교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안보-안보 교환 모델’을 제시하고 또한 실천하고자 하는 취지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혹시라도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순수한 의도가 ‘핵있는 평화’라는 기형적인 결과로 이어져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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