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사진 연합)
2021년 1월 20일 취임식과 더불어 출범한 조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통상정책의 경우 자유무역주의와 다자주의를 제창함으로써 보호주의 및 미국 일방주의를 기치로 했던 트럼프 정부와는 반대편 입장을 취하는 듯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분별한 관세부과가 미국의 동맹을 잃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한 미국인 다수에게 오히려 해를 끼쳤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규칙에 근거한 정책’을 내세웠을 뿐 구체적인 통상정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실현될 미국의 통상정책은 상당부분 추측의 영역에 속하고 있다.

그의 정책노선은 얼핏 보면 자유무역주의로 보이지만 상당부분 보호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조달 분야를 중심으로 ‘미국산 구매(Buy American)’ 등 트럼프 정부의 미국 제조업 부흥정책을 연상시키는 구호를 내세운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정부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협력주의, 룰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규범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에서와 같이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마구잡이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겠지만 규범에 얽매인다는 점에서는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수도 있다.

다자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볼 때 우선 세계무역기구(WTO)를 재건해 이를 주요한 정책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경선 중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언급한 바 있는 사항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서 미국은 WTO를 약화시키는 방향의 조치를 취해왔다. 중국의 국영기업 불법 보조금, 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등 미국의 입장에서 눈에 거슬리는 문제에 대해 WTO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불만의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2017년부터 미국은 국가간 무역분쟁해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상소기구의 위원선임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WTO를 유명무실화시켰다. 대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 체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 국가 대 국가의 방식으로 미국에게 유리한 방향의 통상협정 개정을 추구해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요 타깃인 중국은 물론이고 동맹인 유럽연합(EU)과 캐나다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의 관세를 매김으로써 상당한 긴장과 함께 동맹국간의 연대에 균열을 가져왔다.

이러한 방식에 비판적인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들을 규합해 WTO를 개혁하고 무역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WTO를 통해 중국 국영기업의 보조금, 지재권, 기술이전 강요 등의 문제를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동맹국들에 대한 일정한 양보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가 ‘미국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자 기반의 통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해왔기 때문에 WTO의 개혁에 있어서도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당히 장기적인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불황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미국의 입장에서 코로나 극복과 경제회복이 최우선적인 과제이므로 당분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신통상규범’ 설정을 급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트럼프 정부에서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복귀할 것인가도 관심사이다. 현재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미국이 체결한 USMCA보다 낮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를 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이 그러한 조건을 붙이면서 CPTPP에 귀환하는 것에 대해 기존 가입국들이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미국의 입장에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 방식의 관세전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 조야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극적으로 되돌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징벌적 관세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1차 무역협정에 따라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할 목표금액에 비해서 실제로 수입한 것은 57%에 불과해 시비의 소지가 충분하다. 비록 코로나로 인한 불가피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은 이를 적당히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시대에서도 화웨이 등 중국기업을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 이니셔티브’와 중국을 배제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바이든 정부는 이에 대해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강조하고 중국이 취약한 분야인 노동·환경·인권을 가미함으로써 중국을 더욱 압박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촘촘하고 치밀한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또한 당장 국내 현안 해결이 시급한 바이든 정부가 갑자기 수위를 높여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처럼 통상문제는 당분간 트럼프 시대에 비해서 수면 아래에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방향은 장기적으로 국내기업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그는 공약으로 자국 내 생산(Made in All of America)과 미국 중심 공급망(Supply America)을 강조했다. 이는 명백히 보호주의적인 색채의 정책으로 보인다. 미국 제품의 우선구매를 통해 미국의 경기회복을 도모하려는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네트워크 수립을 계속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를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한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가 거세질 것이라는 의미다. 압박이 높아질수록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2050 탄소제로’ 정책 및 파리기후조약 재가입, 그린뉴딜 등으로 높은 수준의 환경규제 도입도 예상된다. 이를 위반한 제품에 대해서 높은 관세나 페널티를 부과함으로써 보호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환경규제에 대해 우리 기업이 앞서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처럼 바이든 정부의 출범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을 제외하면 장기적으로 더욱 우리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규범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시대의 방어적인 대응보다는 선제적이며 사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