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파괴시대] '엘리트사회'에서 '기술사회'로의 전환

01/28(목) 15:54

자비에르 델라커는 올바니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 학교를 떠난 직후 그는 시간당 6달러를 받고 길거리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팔기 시작했다. 1년뒤 그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를 팔고 있지만 더이상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컴퓨터와 쉽게 친해진 이 젊은이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제법 잘 알려지자 맬브룩의 애튠사가 손을 뻗쳐온 것.

올해 19살인 그는 사무실에서 음악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는다. 애튠사는 이 소프트웨어에 90달러의 가격표를 붙였다. 친구들이 막 대학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그는 연봉 5만달러를 받는 ‘고소득층’ 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데다 애튠사의 지분을 10%나 소유한 대주주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주 빌 게이츠는 델라커보다 조금 학력이 높다. 게이츠는 하버드에서 정확하게 3년동안 수학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컴퓨터에 매달리고 싶었던 그는 기꺼이 학사학위를 포기했다. 그리고 불과 몇년 사이 그는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되었다.

올해 29살인 케네스 존슨은 ‘웨이터를 불러주세요’ 라는 서비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을 자퇴하고 할 일을 찾던 존슨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사람들이 요리하기에도 지친 나머지 음식을 시켜먹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네 음식점 어디에도 밤늦게까지 음식을 배달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존슨은 즉시 요리배달 사업을 시작했다. 존슨은 이제 10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님’ 이다.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만약 내가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았다면 이런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기 쉽지 않았을 것” 이라고.

자비에르나 존슨같은 ‘청년부자’ 들이 늘어남에 따라 많은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는 추세다. 자비에르와 같은 반 친구인 숀 레바티노도 이런 고민을 했었다. 숀은 이전까지 워세스터 공과대학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지만 자비에르의 성공담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숀은 그러나 결국 ‘학위를 위한 4년’ 을 선택했다. 사회에서 대학졸업장이 갖는 위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18살난 인터넷회사 사장 존 마게니스가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회는 아직까지 뭔가 내세울 만한 것을 필요로 한다” 고 마게니스는 말한다.

◆뛰어난 성적 아니면 ‘사회생활이 남는 것’

2차대전 이래 미국의 대학생 수는 7배나 늘었다. 학위는 멋진 장래를 보장해주는 ‘최고의 투자’ 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의 이면에는 고학력을 요구하는 정부와 기업의 고용관행이 그늘져 있다. 71년 그리그스가 듀크파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입사시험에서 IQ테스트를 실시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국의 구직자들은 학위 획득에만 매달리게 됐다. 수천 수만의 입사지원자들을 가릴 수 있는 잣대라곤 학력 뿐이었기 때문이다. 학위란 그러나 ‘이 사람은 읽고 쓸 수 있습니다’ 라는 것 외에는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실제로 학사학위 소지자들의 21%는 고등학교 졸업자들보다도 수입이 적다. “대졸자들의 수입이 평균적으로 높은 것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소수 고소득층 때문” 이라고 교육실기연구소 카네벌 소장은 말한다. 그는 “성적이 B_ 아래인 학생은 대학에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드는게 남는 것” 이라고 솔직하게 충고한다.

학력파괴 현상은 ‘엘리트사회’(meritocracy)에서 ‘기술사회’(technocracy)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아는 것이 힘’ 이라는 오래된 명언에서 ‘학문적인 지식’ 을 지칭했던 ‘아는 것’ 이 하루종일 컴퓨터를 맞대고 사는 오늘날에는 ‘기술’ 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단순한 생활의 도구를 넘어 생활 자체가 돼버린 사회에서 쓸모있는 기술은 엄청난 부를 약속하게 됐다. 종이로 된 책만 읽으면서 보내게 될 4년동안 기술사회는 또 얼마나 눈부시게 앞서 가 있을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당신의 자녀는 무엇을 선택하게 할 것인가.

김지영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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