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무언. 부동의 선수행

01/28(목) 16:31

‘백 개의 예리한 창 끝에 앉고/ 머리 위에 뜨거운 불이 타더라도/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행자는 ‘나’ 라는 독단을 끊어야 하리라’(‘잡아함경’중에서).

새벽 3시, 수행승의 도량석(道場釋)이 전북 남원 지리산의 백장암(百丈庵)에 ‘때 이른’ 아침을 불러온다. 도량석이란 법당을 돌며 큰 목탁을 쳐 아침을 알리는 불교의식. 10분간 계속된 그윽한 목탁소리는 중생에게 미망에서 벗어나라는 부처님 말씀일 것이다. 어느덧 수행처인 큰 방에는 스님 8명이 법당을 향해 가부좌했다. 미닫이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삼배(三拜). 이어 탁,탁,탁. 죽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입선(入禪·선수행에 들어가는 것). 소리도, 움직 임도 없다. 생각의 움직임마저 묶었을까. 무언(無言), 부동(不動)이 선(禪)수행의 기본이다.

◆“깨달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수행이란 행(行)을 닦는 것이지요. 행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몸에 의한 행, 말에 의한 행, 생각에 의한 행, 이 모든 행을 닦는 것, 곧 자기가 행의 중심이 되는 게 수행입니다”

동안거 중에는 외부접촉을 끊는다. 암주 영관스님의 배려로 백장암에서 이틀동안 머물 때 만난 정화(법랍 24년)스님은 깨달음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개구즉착(開口卽錯·입을 열어 말하는 순간 어긋난다)” 이라고 대답한다. 깨달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정화스님은 집요한 질문에 “3개의 행을 닦아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이르는 게 깨달음의 출발점이며 생각을 다스리는 것 뿐 아니라 호흡, 자세도 중요하다” 고 말했다.

한자와 스님들 법명이 쓰여진 표가 방 한 쪽 벽에 붙어 있다. 용상방(龍象榜), 동안거에 든 스님들의 임무표다. 안거를 위해 여기저기서 모여든 수행승들은 법랍(法臘)에 따라 소임이 정해진다. 법랍이 높아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표’ 수행승을 한주(閑住), 예불 담당을 지전(持殿), 물당번을 수두(水頭), 화장실 청소당번을 정통(淨桶), 다방(茶房)담당을 다각(茶角)이라고 한다.

동안거(冬安居)는 음력 10월15일부터 1월15일까지 선방에서 외부접촉을 끊고 하는 선수행을 말한다. 여름 3개월동안 하는 선수행은 하안거(夏安居)이다. 지난 해 12월3일 조계종의 스님 1만1,000여명 가운데 1,500여명이 동안거에 들어갔다. 전국 선방은 100여개. 비구(남자스님)선방이 50여개, 비구니(여자스님)선방이 50여개이다. 규모가 큰 선방으로는 경북 문경 봉암사(80명), 경남 합천 해인사(40~50명), 전남 순천 송광사(50여명), 전북 완주 위봉사(60~70명·비구니사찰)선방 등이 꼽힌다.

◆하루 2시간 자고 14시가 수행하는 ‘용맹전진’

안거를 원하는 스님들은 머물던 곳에 상관없이 100여개 가운데 한 선방을 골라 안거에 들어간다. 안거때는 하루 8, 10, 12, 14시간 선수행을 한다. 선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8시간인 경우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오전 5시까지, 오전 8~10시, 오후 2~4시, 7~9시가 수행시간이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운동을 하거나 휴식한다. 잠은 큰 방에서 함께 잔다. 좌선할 때 사용하는 방석은 두 겹이어서 펴면 바로 요가 된다. 특히 하루 2시간 자며 14시간 수행하는 안거를 용맹정진이라고 한다.

실상사 백장암은 828년(흥덕왕 3년) 통일신라말 선종을 대표하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처음 문을 연 사찰. 개산조(開山祖·사찰을 창립한 사람)는 홍척선사이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선사를 시작으로, 혜가_ 승찬_ 도신_ 홍인_혜능_남악회양_마조도일_서당지장으로 선맥이 이어지는데, 서당지장의 제자가 바로 홍척선사이다. 중국 유학승인 홍척선사는 같은 스승을 모신 법형제 도의선사보다 5년 뒤 귀국하나, 사찰문을 먼저 열었다. 도의선사는 개산을 하지 않고 독거(獨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당을 나서면 천왕봉, 제석봉, 토끼봉, 반야봉…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지리산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실상사 백장암은 풍수지리학자들 사이에서 국운을 좌우하는 명당으로 통한다.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만들고 그 산기운이 백장암터에 모여 천왕봉을 거쳐, 일본 후지(富士)산으로 이어진다는 것. 백장암은 일본 후지산으로 빠져나갈 백두대간의 기운을 막는다나. 실상사나 실상사 백장암에는 그래서 소위 ‘도인’ 들의 발걸음이 잦다.

◆안거횟수는 스님의 수행정도 보여주는 기준

백장암에서는 금오(1895~1968년), 전강(1898~1975)선사 등 큰스님들이 수행했고, 청화(淸華·전 곡성 태안사 조실)스님은 60, 70년대 20여년동안 머물렀다. 지금은 선방에서 조금 떨어진 토굴(土窟)에서 지산스님이 토굴을 나서지 않는 무문관(無門關)수행을 하고 있다. 밥은 교도소의 독방처럼 나무통 안에 넣어두면 꺼내 먹고 빈 그릇을 내놓고 있다.

안거 중 특별히 부과되는 계율은 없다. 삼묵당(三默堂)이라 하여 선방, 화장실, 식당에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에 태만한 수행자가 생기면 선방 스님들이 총회(대중공사)를 열어 추방한다. 그래서 안거횟수는 스님의 수행정도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기준이 된다.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여라”

미망(迷妄), 분별심과 수행승들의 싸움이 치열한 백장암은 스님들끼리 싸우는 조계종 분규현장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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