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노점을 '생업'으로 끌어올린 노점상의 대부

02/10(수) 16:14

“한 켤레 500원, 두 켤레 천원! 여기 양말 좀 보고 가세요 네?” 서울 기온이 영하 12도,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 3일 아침. 경기 용인 H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에는 연신 추위에 떨면서도 목청껏 소리치는 남자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만 벌써 몇 개월째 양말 노점을 펴고 있는 김재국(50)씨다. 워낙 추운 탓인지 지나는 손님도 뜸하고, 김씨가 힘껏 소리쳐봤자 거들떠 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좌판이 더 덩그렇게 보인다. 알루미늄으로 된 간이 접개의자를 펴고 그 위에 베니어판 두 장을 달랑 올려놓은 것이 가판대. 이 위에 양말 약 2,500 켤레가 반듯이 펼쳐져 있다. 전부 다 팔아봐야 매상 12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개시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한 켤레도 안나가는걸 보니, 12만원은 고사하고 오늘은 1만2,000원 벌이도 신통치않을 것 같다.

이런 날은 아예 과감하게 미련을 접고 하루 쉬는 노점상도 있다. 나와봐야 사람만 골병 들고, 매상은 바닥이기때문. 그래도 혹시나 하고 나와 본 김씨 옆에는 붕어빵 장사만 ‘문전성시’ 를 이룬다. 그쪽을 바라보는 김씨에겐 부럽기도 하고, ‘한 사람이라도 잘 되니 다행’ 이다 싶기도 하다. 이곳에 나올때마다 보게되는 붕어빵 장사는 김씨와 절친한 사이.

◆양말공장사장에서 양말노점상으로의 변신

김재국씨는 지난해 3월 이 노점일을 시작했다. IMF사태가 터지기 전까진 그도 수년째 자신의 양말공장을 운영해오던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그러나 97년 12월, 그동안 납품해오던 서울 시내 백화점들이며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주문량이 칼로 두부를 자르듯 뚝 끊어져버렸다. IMF때문이었다. 결국 공장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3개월동안 일체 바깥출입을 끊은 채 고민하다가, 결국 공장에 쌓인 양말재고를 들고 직접 거리로 나섰다. 이것이 그가 피치못하게 노점상으로 전업하게 된 사연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사실은 그 전에도 간혹 계절이 바뀔 때쯤 양말 재고가 남으면 사장이면서도 직접 시장에 갖고 나와 몇번 판 적이 있거든요. 그때는 손뼉도 치고, 장난스럽게 발도 구르면서 팔아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작년 3월 이제 정말 노점상이다 싶으니까 얼굴이 화끈거려서 처음엔 고개도 못들겠더라구요. 그래도 작년 5월까진 사정도 좋았습니다. 갖고 있던 양말재고는 봄에 이미 다 팔았고, 그 다음엔 잠시 아동복을 취급했는데, 어떤 날은 자리를 편지 단 네 시간만에 62만원어치를 판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 12월 들면서부터 지금까지 징그럽게 장사가 안돼요. 그 사이 노점상이 너무 많아진거죠.”

작년들어 부쩍 늘어난 노점상들은 그 처지도 대부분 비슷하다. 김씨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는 증권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후 목숨까지 끊자 혼자 나와 호떡장사를 하는 서른 서넛의 여자도 있고, 1년 내내 차량 장사로 바깥을 떠돌며 숙식까지 차 안에서 해결하는, 초라한 행색의 40대 가장도 있다. 또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실직한 뒤, 부부가 함께 뛰는 생선장사도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단골손님도 금세 확보하고, 정기적인 순회코스도 만든 이들은 언제든 생선 꼬리 한 토막 안 남기고 정확히 다 팔고 손을 터는 실속파. ‘배운 사람들답게 뭘 하더라도 똑 소리나는’ 부부 노점상이다. 또 언젠가는 한 장터에서 다른 양말 노점상을 만났는데 어딘가 낯익다 싶어 알아보니 예전에 양말공장 사장으로 있을 때 다른 양말공장에 있던 사람이었다고. 사람 팔자란건 그렇듯 예측불허인 모양이다.

◆노점에도 엄연한 질서, 같은 업종 ‘겹치기’ 는 금물

워낙 많은 노점상들이 경쟁을 벌이다보니, 이 안에선 뭣보다 중요한 불문률이 있다. 바로 같은 업종으로 남의 장터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 붕어빵 장사 옆에 붕어빵 장사가 올 수 없고, 양말 장사 옆에 다른 양말 좌판이 끼어들 수 없다. 그래도 굳이 밀고 들어온다면 그것은 ‘정면으로 싸움을 신청하는’ 꼴. 노점에도 엄연히 질서가 있고 도덕이 있다.

김씨도 한 번 비슷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 지난 여름, 그가 잘 가는 광명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아동복을 팔고 있었는데, 한창 장사를 하던 중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슬그머니 아동복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부아가 치밀어 ‘아주머니 이러시면 되냐, 같이 죽자는 얘기냐’ 고 한마디 했더니 아주머니의 대답은 ‘아저씨가 원래 여기서 양말 장사를 해오시던 분 맞냐? 그럼 일부러라도 더 해야겠다’ 며 강짜를 부린 것. 알고보니 그녀는 인접한 아파트 상가에서 양말코너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만 ‘뜨면’ 상가에 손님이 끊어지길래 진작부터 별러왔다는 것이었다. 워낙 그녀가 분기탱천한 터라 그날은 일단 양보했지만, 어쨌든 비슷한 남대문 동대문 물건을 가지고도 일반 상점과 가격 차이가 크다보니 이런 일은 왕왕 생겨난다.

노점생활 1년에 단속원 피하는 문제는 웬만큼 도가 트였다. 생계형 노점상은 비교적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크게 안심할 것은 못된다. 그도 이미 자신의 밥줄인 아동복 자판이 무지막지한 단속반원들의 손에 의해 길바닥에 마구 내팽개쳐지는, 쓴 맛을 봤다. 요령은 잘 피하는 수밖에 없다. 단속반원들 휴무일까지 줄줄 꿰고 있는것도 그의 노하우중 하나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그가 들어서기만 하면 어김없이 인근 상가에서 신고전화를 거는 통에, 기습단속을 당하기도 일쑤지만.

◆단속 피하는데 ‘이골’, 터잡을때 화장실 유무도 필수

여름이면 비오는 날이 ‘공치는 날’ 이고, 겨울이면 한파가 적이다. 내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탓에 식수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큰 골칫거리. 자리를 잡을 땐 인근 화장실이 어딘가부터 찾아보는 것이 필수다. 같은 손님이라도, 할머니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은 웬지 불안하다. 무조건 큰 것, 알록달록한 것만 찾아서 살때도 불안하더니 오래지않아 며느리한테 ‘야단을 맞았다’ 며 막무가내로 돈을 되돌려달라며 찾아오는 할머니들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그냥 돌려주기 미안해서 빨았다’ 며 완벽한 중고품을 만들어오는 할머니도 있다. 할머니는 그래서 무섭다.

노점상 김씨가 알고 있는 정보는 일반인들이 ‘정보’ 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 중 하나가 ‘광명시에 있는 모든 부동산은 화요일에 쉰다’ 는 것. 이것이 왜 중요하냐고? 이것은 달리말해 광명시에서는 매주 화요일 부동산중개소 앞자리를 ‘공짜’ 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셔터만 내리면 그곳이 ‘내 자리’ 다.

한 자리에서 얼마동안 ‘치고 빠질지’ 를 정하는것도 나름대로 판단기준이 있다. 양말을 팔기 시작한지 사나흘이 지나면 자신의 양말을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눈앞에 오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때가 ‘전을 접을때’ 다.

◆정보사이트 나우누리 ‘노점토탈정보’ 개설

요즘은 다소 고전중이지만, 김재국씨는 원래 ‘노점계의 대부’ 로 통한다. 경력으로 따지면야 그보다 한참이나 까마득한 고참들이 수두룩 할 터이지만, 어쨌거나 그는 노점업계에선 ‘신세대’ 쯤 된다. 노점상으로는 국내 최초로 컴퓨터 통신에 유료 정보 사이트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양말공장을 운영하기전 잠시 섬유회사에서 봉급쟁이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 연수에서 컴퓨터를 배운게 도움이 됐다. 생각지도 못했던 노점상이 된 뒤 그날그날 일기를 쓰듯이 온갖 경험이며 장사에서 느낀 점들을 컴퓨터로 적다가 마침 이웃에 살던 컴퓨터 학원 원장의 아이디어로 통신 정보사이트까지 열게 된 것이다. 98년 8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나우누리의 ‘노점 토탈정보’ 가 그의 작품이다. 그것이 세간의 주목을 끌자 9월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돈 되는 노점정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큰 수입으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네티즌과 독자들의 문의전화도 받고, 실제로 퇴직, 실직자들의 노점창업을 도와주는 등 노점의 수준을 ‘아르바이트’ 에서 ‘생업’ 으로 끌어올리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고 본인은 자부한다.

어떻게 보면 자기손으로 자신의 경쟁상대를 불려놓은 셈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왕 시작한 일, 이 바닥에서 더 크게 성공하고 싶다. 책에는 요즘처럼 춥고 손님이 끊긴 날에도 매일같이 추운 노점바닥을 지킬수 있는 건 바로 ‘그 때’ 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책에는 써놓지 않은 자신만의 성공비결과 계획도 서 있다.

“앞으로 노점상들의 노점상격인 중간도매로 가려고 합니다. 생산자를 워낙 많이 아니까 뭐든 싼 값에 노점상들에게 바로 물건을 대주면 서로가 다 좋은 일이지요. 실제로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낸 뒤 서울 화곡동에서 그 비슷한 중간도매업을 하고 있는 분도 알구요, 앞으로 사정이 나아지면 적당한때를 봐서 저도 마음먹은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당장은 설만 쇠면 시작할 청바지 장사 생각으로 요즘 머릿속이 분주하다. 그땐 오래전부터 ‘내 자리’ 로 만들어 둔 서울 중계동과 광명시 하안동의 아파트 단지로 옮길 작정이다. 한 켤레 5백원짜리 양말로는 도무지 목돈 만들기가 어려워 청바지로 바꾸기로 했다고. 잡지에 이름도 나고 사진도 실리면 책도 좀더 팔리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모양인데, 말끝에 자신의 노점 장소를 너무 정확히 쓰지 말아달라며 주문해온다. 가장 급하기론 단속반의 방문을 ‘단속’ 하는 것 이상 없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한/국/일/보 인/터/넷/접/속 C*D*롬 무/료/배/포 ☎92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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