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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O이야기6] 금발의 노신사 보스워스

지난해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 의혹시설과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문제가 다시금 국제 관심사가 된 바있다. 미 클린턴 행정부가 외교적 치적으로 자부하여온 미_북한간 제네바 합의에 대한 미의회의 부정적 반응도 점차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당시 북한의 미사일이 자국의 영공을 가로질러 날아간 사실을 빌미로 북한에 대한 강경입장을 고수하는 한편,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하는 경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한 경수로 사업에 대하여 10억달러의 재정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화해와 협력을 대북한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 우리 정부는 금강산 관광사업과 경수로사업을 축으로 하여 북한과의 실질 교류협력관계를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비록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남북한간 직접 사업인데 반해, 총 규모 46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는 경수로 사업은 우리나라가 사업 재원의 70%인 약 32억2,000만달러를 부담한다. 모든 업무는 비록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케도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 이 즈음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남북간 첫 경협의 상징물인 케도라는 기구는 어떤 배경에서 설립되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고, 남북한 관계에서 케도의 ‘존재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절정에 올랐던 북한 핵 문제는, 94년 10월 미국과 북한간 제네바 합의로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도 한반도에서 핵확산 위험을 방지하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미국과 북한간 합의를 환영하였다. 이 결과로 북한에 대해 1,000메가와트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해 국내적으로는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이 설치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케도가 95년 3월 뉴욕에 설립되었다.

당초 한·미·일 세 식구로 단촐하게 출범한 케도는 97년 9월 EU의 가입으로 현재 모두 12개국으로 구성된 기구로 성장하였다. 케도의 주요 정책은 집행이사국인 한국과 미국, 일본, EU 등 4개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경수로 비용의 70%를 책임지게 되어 있는 우리나라가 중심적 역할을 해오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단칸셋방에서 출발 50여명의 조직으로 성장

뉴욕에 있는 케도사무국은 집행이사회에서 이루어진 정책을 실제 집행하는 자그마한 규모의 기구로,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북한의 외무성, 원자력총국 그리고 경수로 대상사업국 (우리나라의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과 유사한 조직으로 경수로 건설지역인 금호지구에 소재하고 있다)과 일상적인 접촉을 갖고 있다. 또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및 한국전력공사와 경수로사업 관련사항을 협의하고있다.

필자는 95년 8월 하순 주인도 대사관에 근무하다가 케도사무국으로 전임되어 98년 4월까지 근무했다. 케도는 95년 3월 설립되었으나 그해 6월 미국과 북한이 경수로 원자로형을 한국 표준형으로 합의하기까지는 이름뿐인 기구에 불과하였고 7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케도사무국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임명됐다. 케도 사무국이 뉴욕에 설치된 것은 뉴욕에 있는 북한과의 연락 업무 필요성 때문이었다. 유명한 치약회사 콜게이트 본사 건물 17층에 사무실을 임대, 수명의 직원으로 개설된 케도 사무국은 그야말로 단칸 셋방으로 생활을 시작한 신혼부부와 같은 처지였다. 케도사무국은 미 국무부로부터 95년 9월 북한과의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 교섭 업무를 정식 인계 받으면서부터 그 면모를 조금씩 갖추게 되었다. 현재 케도 사무국은 맨해튼 3가에 있는 스미토모 건물내 2개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듀크사의 기술자문 인력을 포함하여 50여명이 모여서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케도사무국의 초대 사무총장은 현재 서울주재 미국대사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금발의 노신사 보스워스 대사였는데 97년 11월 주한대사로 부임하기까지 초기 케도와 북한관계를 설정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직업외교관, 필리핀 민주화에도 적극 개입

보스워스 사무총장은 미 국무부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80년대 후반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망명하고 아키노의 People power정권이 출범하는 격동의 시기에 마닐라 주재 미국 대사직을 원만히 수행하여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슐츠 전 국무장관은 그의 회고록 ‘혼란과 승리’ 에서 마르코스 정권이 퇴진하게 되기까지 보스워스 대사의 활동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슐츠는 이 책에서 마르코스 정권말기 필리핀의회는 당시 현직 미국대사인 보스워스 대사에 대해 ‘반마르코스 친아키노 행위’를 하였다고 비난하고 그를 추방 대상 인물로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을 정도로 보스워스 대사는 필리핀의 민주화 과정에 여러모로 관여했다고 적고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보스워스 대사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년 앞당겨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조직적인 전국적 규모의 부정 투표로 재선되자 워싱턴에 보낸 선거 분석 결과 보고서에서 선거부정이 마르코스의 정치 생명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미국정부는 마르코스 퇴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건의하여 그의 예리한 사태 분석력을 보여 주었다.

보스워스 대사는 또한 케도 사무총장 재직시 미국 정보기구의 개편 방안 연구를 위해 설립된 20세기기금특별작업반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이 작업반은 96년 6월 발간한 보고서 ‘음지에서 양지로’ 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미국 정보기구는 특히 경제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여 경제첩보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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