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여류 최강 루이, 한국에서 나래 편다

04/22(목) 13:43

봄 바둑가에 잔잔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있다. 지난주 한국에 입성한 세계최강 여류 루이나이웨이와 장주주 부부가 이창호 일인체제에 도전할 태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루이 장 부부는 이미 세계최강 부부기사로 정평이 나있다. 둘이 합쳐 18단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최강커플. 그러나 비중은 아내인 루이에게 더 기운다. 그녀는 이미 92년 이창호를 꺾고 응씨배 4강까지 진격한 ‘여류 아닌 여류’기사.

그녀는 ‘천안문사태’때 정부에 반기를 든 남편 장주주를 따라 일종의 망명을 결행하여 바둑가를 들썩거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녀는 당시 정식결혼단계도 아니었던 상태에서 ‘물이 좋은’ 중국을 떠나 일본 미국을 전전하는 고행길을 스스럼없이 떠났던 강단있는 여자다.

루이 9단의 바둑은 상당하다. 여류로서 대단하다는 식이 아니라 남녀를 통틀어도 그녀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앞서 소개한 세계대회 성적은 그녀가 중국국적을 갖고는 있지만 중국정부측에서 그녀의 대회참가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참가할 수 없었던 대회를 감안하면 기대이상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녀가 한국에 정착하게 된 배경은 여러가지다. 첫째 살기좋은 미국에서는 바둑대회가 별로 없고 더욱이 프로들이 설 땅이 없다. 일본에서는 수많은 여류기사들이 그녀가 일본에 정착할 경우 ‘밥그릇’이 작아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일본정착을 방해했다.

사실 한국을 노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5년부터 그래도 덜 배타적이며 바둑이 활성화된 한국에 그들은 안착하려 했으나 역시 정치적인 문제가 걸려 있어서 한국측은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여론도 좋아지고 중국측에서도 대승적인 면에서 그들을 ‘해금’하기로 심정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자 그들의 ‘코리언드림’은 반쯤 실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루이 9단으로서는 한국정착이 곧 꿈을 실현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이창호를 곧 뛰어넘으려는 기세를 지닌 신진기예가 수두룩하다. 그들을 뚫고 소기의 위치에 올라야만 그녀의 꿈은 실현된다.

확률은 아직 희박하다. 수년간의 휴식기간의 실전감각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또 한국이라는 낯선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일정양의 시간이 소모될 터. 여러모로 많은 적과 싸워야하는 루이 9단으로서는 얼마나 빠른 시간내에 한국을 받아들이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루이 9단은 남편 장 9단보다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한다. 바둑가에선 그녀가 일찍부터 한국을 맘에 두고 사전에 정착을 위한 준비를 많이 한 탓이라고 말한다. 그런 치밀한 면을 볼 적에 루이 9단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한국을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여류대회에서는 한국대회든 세계대회든 루이 9단이 석권할 것으로 보인다. 루이의 한국행에서 우리가 득을 볼 수 있다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아직은 취약한 여류바둑이 그녀로 인해 상당부분 발전을 이룰 것이란 얘기다. 어쩌면 루이 9단이 한국에서 가져갈 것보다는 우리가 그녀에게 받을 것이 더 많은지 모른다. 어쨌든 바둑가는 또 한번 볼거리가 생긴 셈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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